"어린이집 짓는데 10억.. 차라리 벌금 2억 낸다"
"직장 어린이집 지으려면 전세비만 10억원 넘게 들어요. 1년 운영비만 5억~7억원 든답니다. 직장 어린이집 안 지으면 물어야 하는 이행강제금(2억원)을 차라리 내고 말자는 말이 나와요."(A기업 간부)
상시 근로자를 500인 이상 두고 있어 직장 어린이집을 꼭 지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학교·지자체 178곳과 직장 어린이집을 지었는지를 묻는 조사에 응하지 않은 146곳 등 총 324개 사업장 명단이 공개됐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어린이집을 짓거나 위탁 보육이라도 맡길 의무가 있는 1280여개 사업장 가운데 미이행·미응답 324곳(25%)의 명단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많은 사업장에서 직장 어린이집을 짓지 않는 것은 정부의 '솜방망이' 처분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부터 직장 어린이집을 짓지 않는 곳에 이행강제금을 2억원(연간)까지 매길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시작했지만, 기업들은 "어린이집 짓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안 짓는 게 이득"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사업장들은 어린이집 설치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장소 확보 어려움'(25.0%), '보육 대상 부족'(24.4%), '사업장 특성상 어려움'(20.5%) 외에 '운영 비용 부담'(13.8%), '설치 비용 부담'(12.9%) 등을 꼽았다. 2억원이란 이행강제금을 내는 것이 기업들 입장에선 직장 어린이집을 짓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명단이 공개된 사업장 가운데에는 기업들이 많았다. 보육 대상 영유아 수(0~5세 사이)가 200명이 넘어 직장 어린이집 필요성이 높은 곳 위주로 따져보니 기아차 소하리공장, 신한카드, 쌍용차, 현대증권 등 51개 기업이 포함됐다. B기업은 본지 취재에서 "어린이집 짓는 초기 비용만 20억원이 넘을 것 같아 엄두가 안 난다"고 했고, C기업은 "어린이집 운영비를 직원들에게 돌릴 수 없어서 솔직히 이행강제금을 내고 어린이집 안 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렇게 직장 어린이집을 짓지 않는 사업장이 늘어나면, 젊은 워킹맘은 보육수당까지 깎이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 정부는 2015년 이전엔 직장 어린이집을 짓거나 위탁 보육을 맡기지 않더라도 사업장에서 보육수당을 주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가 2015년 1월부터 이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기업 부담은 다소 있겠지만 일·가정 양립이란 측면에서 직장 어린이집을 짓도록 하는 정책은 꼭 필요하다"면서 "젊은 부부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를 안 낳고 직장을 포기하면 결국 경제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김미정 근로복지공단 직장보육지원센터장은 "해마다 2억원 이행강제금만 내고 버티는 기업들이 계속 나온다면 이행금을 올리는 것과 같은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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