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쇠창살.."스트레스 직장인·주부 많이 찾아온다"

천권필.권혁재 2016. 4. 3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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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신건강센터 병동의 창문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전경. 센터 건물 옥상의 하늘정원에서 환자들이 의료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6·25 전쟁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얻은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1962년 지은 옛 병동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정신건강센터 1층에 마련된 외래진료소.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신응급진료실 내에 흥분한 환자 등을 격리하기 위해 만든 안정실 내부.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창문마다 빼곡하게 쇠창살이 설치된 옛 국립서울병원 병동 건물.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병원 건물 가운데에 만들어진 야외 휴게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신건강센터’로 거듭난 국립정신병원 24시간 체험
#대낮 서울 도심에서 한 여성이 납치된다. 눈을 떠보니 손은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타난다. “강수아씨, 여기 정신병원이에요.” 내보내달라고 소리쳐도 철문은 열리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날 보러 와요’의 한 장면이다. 통상적인 ‘정신병원’ 이미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62년 서울 중곡동에 들어선 국내 최초의 국립정신병원인 ‘국립서울병원’ 역시 주민들의 이전 요구가 끊이지 않던 기피시설이었다. 하지만 27년간의 갈등 끝에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지난달 25일 새로이 문을 열었다. 새 명칭엔 국민의 ‘마음 주치의’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지난 20일 오전부터 24시간 동안 달라진 국립정신건강센터를 체험했다.

| 병동 환경 일반병실과 같게
CCTV 없고 문 잠금장치만 빼놔
“이전 요구하던 주민들 인식 좋아져”

다섯 평(약 16㎡) 남짓한 병실 안. 한쪽 벽에는 TV와 시계, 달력이 걸려 있다. 겉보기엔 일반 병실과 흡사했다. 폐쇄회로TV(CCTV) 같은 감시 장비도 없다. 문을 안에서 잠그지 못하게 잠금장치를 빼놓은 정도만 차이가 났다. 다른 쪽 벽면의 절반을 채운 창문으로 햇살이 한가득 들어왔다. 쇠창살은 없었다. 깨지지 않는 강화유리로 대신했다. “얼마 전에 여성 환자가 도망가려고 의자를 창문에 던졌는데도 멀쩡하더라고요.” 한 간호사가 말했다.

오전 7시. 병실 밖으로 나가 보니 복도가 예상보다 환했고 중앙홀은 제법 넓었다. 이곳은 급성정신질환자 39명을 격리해 놓은 32보호병동이었다.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거나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한 사람 등 중증환자들이 모인 곳이다. 보호자 2명과 정신과 전문의가 동의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이곳에 강제입원시킬 수 있다. 환자들은 병동 밖으로 나갈 순 없지만 안에서는 활동이 자유롭다. 탁구를 치거나 공중전화로 가족과 통화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환자가 난동을 부릴 땐 어떻게 하죠?”라는 질문에 백경숙 간호사는 병동 한쪽에 마련된 ‘안정실’을 보여줬다. 격리된 방 안에선 한 여성 환자가 서서 문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황색의 두툼한 패드가 벽 전체를 감쌌다.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해하는 것을 막는 용도다. “환자가 강한 액팅(행동)을 할 때 이곳에서 안정을 취하도록 하는데 한 시간 정도면 다시 내보내줘요”(백 간호사)

4인 병실에 들어서자 창밖으로 낡은 흰색 벽돌 건물이 보였다. 창문마다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6·25전쟁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얻은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당시 미군과 협력해 만든 옛 병동이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환자를 수용했던 곳이다. 병원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백 간호사는 “선거 때만 되면 주민들이 저 앞에서 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는데 지금은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 나눠졌던 남녀 병동 하나로 합쳐
병실 다르지만 밖에서 자유롭게 만나
공황 발작 등 조치 응급실도 운영

가장 큰 변화는 남자와 여자로 나뉘었던 보호병동을 합친 것이다. 병실은 따로 쓰지만 밖에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병원 설립 이래 첫 시도다. 우울증 분야의 권위자인 하규섭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정신질환 치료의 목적은 환자를 다시 정상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라며 “그동안 병원 편의로 남녀 병동을 나눴지만 가능하면 병동 환경을 정상 사회와 같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외래 환자 증가도 달라진 점 중 하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증질환까지 치료하기 위해 기분장애과·불안스트레스과 등을 신설한 효과다. 치료비는 일반 정신과보다 3분의 1가량 저렴하다.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검사를 받아봤다. 심민영 불안스트레스과장은 “불안 증세가 다소 높은 편이지만 직장인들에게 흔한 증상”이라며 “쉴 때나 자기 전에 복식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심 과장은 “상사와의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회사원이나 중년 주부가 많이 찾아온다”며 “스트레스를 참으면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고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 오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4층 중독병동에선 인터넷중독 치료를 위한 ‘호라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소설 『모모』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호라 박사’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참가자는 대부분 게임에 빠진 중·고생이나 대학 중퇴자였다. 이태경 중독정신과장은 “인터넷·게임에 중독되면 시공간에 대한 개념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2주간 병원에 머물면서 잃어버린 생체 시계를 되찾고, 동물매개치료나 사회극을 통해 현실세계의 대인관계 능력을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병원 응급실처럼 이곳에도 24시간 가동되는 정신응급실이 있다. 이날 새벽 6시쯤엔 술에 취해 자살을 기도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이끌려 왔다. 30분 넘는 실랑이 끝에 의료진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남성을 강박했다. 유빈 응급병동장은 “정신응급실은 갑작스러운 공황 발작이 나타나거나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급성 알코올중독 환자들이 응급조치를 받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 격리보다 재활 치중, 입원기간 줄어
“한국 국민 10% 정신질환 시달려
조기 치료 컨트롤타워 구축 필요”

국립정신건강센터는 폐쇄병동을 줄이고 외래 치료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진료 시스템을 바꿨다. 입원보다는 통학하듯 질환에 맞는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병원 지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직업재활훈련을 받고 있는 A씨도 과거 조현병을 앓았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진료도 받으며 조금씩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격리보다는 재활에 무게를 두면서 입원 기간도 줄어드는 추세다. 옛 병동에선 최대 입원 기간인 6개월을 채우고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하는 ‘회전문’ 환자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석 달을 넘지 않는다. 올해부터는 정신건강 관련 연구와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어려움도 적지 않다. 국가 기관이라는 이유로 필요한 인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의료진의 근무 강도가 만만치 않다. 또 연구 예산도 한 해 66억원으로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하 센터장은 “미국에선 관련 연구 예산만 1조5000억원가량이나 된다”며 “사회 변화가 빠른 우리나라는 국민의 10%가량이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는 만큼 이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치매 고백한 레이건처럼 정신질환 터놓고 얘기해야”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C C 사바시아(뉴욕 양키스)는 지난해 10월 알코올중독 사실을 고백했다.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그는 치료를 위해 등판을 포기했다. 올 시즌 재기에 성공한 그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것은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아웃카운트”라며 “ 술로 인한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것을 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유명인이 정신질환 경험을 고백하는 건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배우 브룩 실즈는 2003년 딸을 낳은 뒤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렸다.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회복한 그는 산후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을 담은 책을 내놓는 등 인식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서호주정부의 제프 갤럽 전 총리는 2006년 자신이 우울증 환자라며 치료를 위해 총리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방송인 이경규, 가수 김장훈씨 등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실을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실을 감추는 경향이 강하다. 하규섭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미국에선 레이건 전 대통령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고백한 것이 치매 연구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며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해 서로 터놓고 얘기하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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