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는 왜?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요

이하늬 기자 2016. 4. 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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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벌금 상한선 없는 영국의 ‘기업살인법’… 글로벌 기업, 한국 불매운동으론 효과 미미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웹툰 송곳의 대사다. 옥시에도 똑같은 말을 적용할 수 있다. 옥시, 정확히는 ‘RB코리아’는 영국 기업 레킷벤키저의 한국법인이다. 한국 옥시레킷벤키저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에 유해한 성분이 있다는 정부 발표 이후 RB코리아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정부가 현재까지 공식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는 146명이다. 이 중 옥시 제품 사용자는 103명이다. 최근 검찰 조사 따르면 옥시 연구진은 2000년초 독일 전문가로부터 살균제 원료성분의 ‘흡입독성’을 경고한 이메일을 받고도 이를 묵살했다. 

영국에 있는 레킷벤키저는 영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물건을 팔까? 그럴 리 없다. 영국에는 ‘기업과실치사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살인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국은 지난 2008년 4월6일부터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시행하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을 사용하다 2011년 4월 7개월된 아기를 강제출산하고 폐이식수술을 받은 후 2012년1월11일 사망한 윤지영씨.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이 법의 핵심은 기업의 형사처벌이다. 그간 기업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여겨졌다. 이 법은 기업이 노동자 및 공중의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의 형사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도록 한다. 

김재윤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의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에 대한 고찰과 시사점’에 따르면 기업과실치사죄의 성립요건이 충족되면 해당 기업은 상한 없는 벌금, 구제명령, 위반사실의 공표명령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벌금의 규모다. 해당 법 제1조 제6항은 벌금에 상한선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벌금의 비용은 보험에 의해 충당할 수 없도록 한다. 따라서 기업에게 부과된 벌금이 큰 액수일 경우 기업은 파산할지도 모른다. 

또 법원은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에게 기업과실치사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 범죄 사실에 대한 상세한 사항, 부과된 벌금액수, 구제명령을 받은 경우 이에 대한 사항 등을 공표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시민단체들은 4월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 제품 불패운동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이치열 기자
실제 지난 2011년 영국 법원은 CGH라는 기업에게 연매출액의 250%인 약 6억7300만원의 벌금을 물게 했다. 27세의 지질학자가 3.8미터 아래 구덩이에서 지반침하로 질식사 한 사건 때문이다. 말뚝 또는 지지대를 사용하지 않았고 지상에서 감시를 하는 사람도 두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다. 

JMW Farms라는 기업도 지난 2012년 기업과실치사죄 유죄를 선고받았다. 돼지사육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지게차에서 떨어진 금속 쓰레기통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다. 법원은 해당 기업이 유죄를 인정했다는 점을 ‘참작’해 연 매출의 19% 수준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를 그대로 옥시에 적용해보자. 옥시가 RB코리아로 전환하기 전 마지막으로 공개한 실적은 매출 2438억원에 영업이익 209억원이었다. 해당 매출의 10%만 적용해도 240억원이다. 영국은 노동자 1명의 사망에 적게는 20% 많게는 250%의 벌금을 물렸다는 점을 기억하자. 

나아가 옥시는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 사용으로 103명이 죽었다는 점을 밝혀야한다. 어쩌면 자신들이 독일 전문가의 ‘독성 흡입’ 이메일을 무시한 점과 서울대 연구팀에 유해성 실험보고서를 2개로 나눠달라고 요구한 뒤 유리한 내용의 보고서만 받아간 점도 밝혀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옥시 불매운동이 시작됐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에서 판매되고 있는 옥시 제품 중 살균, 표백제 매출은 5% 안팎 감소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옥시 섬유유연제는 오히려 전년보다 더 잘 팔린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불매운동 만으로는 ‘살인 기업’을 멈출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의 법이 지금 이대로라면 세월호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으며 옥시 같은 기업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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