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지원금 타는 수단이었습니다"..억울한 장애인

홍화경 2016. 4. 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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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채용은 안 하고 계약직으로 써서 지원금을 타고, 쓸모가 없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또 뽑는 식으로 운영했어요."

김 모(40) 씨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김 씨는 뇌성마비를 앓고,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입니다. 그동안 김 씨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 꼼수 고용, 꼼수 해고…정부지원금 때문?



김 씨는 2014년 6월 한 사회복지법인에 3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했습니다. 하루 3시간씩 경리 업무를 맡았는데, 업무에 능숙해진 김 씨에게 회사는 하루 4시간으로 업무 시간을 늘려줬습니다.

3개월이 지나고 다시 계약의 시간. 회사는 김 씨를 2년 계약직으로 추후 정규직 전환을 염두에 두고 채용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습니다. 대신 3개월마다 계약서를 갱신하자며 김 씨를 설득했고 김 씨는 이에 수긍했습니다.



김 씨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9월부터 3개월 동안 인쇄 업무와 전화 응대, 신사업 부분 등 김 씨는 회사의 요청에 따라 부서를 계속 옮겨 다니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몸이 불편했던 김 씨는 쉽게 업무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인쇄 업무에서는 손이 느리다는 이유로, 전화 응대는 언변이 어눌해서, 신사업 부분에서는 타자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습니다. 회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김 씨에게 그만둘 것을 종용했습니다. 결국 계약이 끝나고 김 씨는 6개월 만에 해고당했습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육소라 직업지원팀장은 이런 방식이 장애인을 해고하기 위해 기업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든지 직원 간 사소한 마찰이라도 일어나면 계약 만료로 잘라버린다는 겁니다. 회사는 정부가 제시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달성하고, 정부지원금까지 받는 혜택을 누리고 말이죠.

씁쓸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렇게 장애인을 이용해 단물을 빤 뒤, 쓴 물은 뱉는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채용에 불리할까 봐 해고를 당해도 선뜻 불만을 제기하거나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 장애인 노동 상담…‘부당해고’ 1위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장애인노동상담센터 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 연속으로 장애인 부당해고 관련 상담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2015년 22.7%, 2014년 24.7%). 지난해 임금체납은 21.3%로 2위, 부당처우가 19.4%로 3위를 차지하는 등 절반 이상의 장애인들이 일터의 부당 노동 행위를 호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50인 미만 영세한 사업장에서 장애인근로자에 대한 권고사직이나 차별 등으로 퇴사한 장애인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일자리를 얻게 됐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많은 장애인은 부당 해고의 그늘 속에서 거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 장애인 채용 대신 ‘부담금’ 내겠다

우리나라 4대 그룹이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못해 정부에 낸 부담금, 얼마나 되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상시 근로자가 100명 이상이면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 같은 공공부문은 정원의 3% 이상을, 민간 기업은 2.7%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고용부담금을 부담해야 하는데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미달한 사업장은 7,700여 곳에 달합니다.

이 중 민간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전체 과징금 규모는 2013년 3,187억 원에서 2014년 3,419억 원, 지난해 4,240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의무 고용해야 하는 장애인 직원 수를 채우지 않은 대신에 거액의 부담금을 선택한 거죠. 결국,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을 외면한 셈입니다.

■ ‘질 높은’ 장애인 일자리, ‘맞춤형 취업’ 고민해야

다국적 기업인 모 커피 업체는 청각 장애인을 바리스타로 대거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 업체에 고용된 장애인 130여 명 전부가 정규직인데요. 그중 한 명은 지난해 최초로 부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장애인은 단순업무만 가능하다는 편견을 깨고 수화로 주문할 수 있는 표지판도 만들었는데, 이 표지판을 이용해 직접 주문을 받을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한 장애인 보조기구를 제작하는 업체에서는 신체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직접 제품 개발과 생산에 나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업무 전반에 배치된 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은 15%나 상승했습니다.

[다시보기]☞ “장애를 경쟁력으로”…편견 깨는 기업들 (2016.04.20)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생산성은 일반인 못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인 좋은 사례들입니다.
의무고용률을 맞추기 위해서 뽑아놓고 단순 업무만 시킬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장애인 '맞춤형 취업'을 기업들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고용보험과 명단 등 서류로만 장애인 고용 여부를 확인해서는 이런 '꼼수 채용'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현장 확인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장애 유형과 특성에 따른 장애인 취업을 유도해 전후 관리를 연계해야 실제 장애인 고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만나 본 장애인들은 그저 평범한 이웃이었습니다. 30대가 돼 갑자기 장애가 나타난 분들을 만났을 때는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그 누구라도 갑자기 장애가 생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장애인 일자리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안고 가야 할 책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다시보기]☞ 지원금만 받고 해고…장애인 고용 ‘악용’ (2016.04.20)

홍화경기자 (vivid@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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