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넥센 신재영과 한화 김재영의 '두 갈래 길'

입력 2016. 4. 29.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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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야구선수도 마찬가지다. 시즌을 물음표로 시작했던 넥센 신재영(왼쪽)이 승승장구하고, 시범경기까지만 해도 특급활약을 예고했던 한화 김재영이 정작 개막 후에는 2군에서도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된 이유도 ‘기다림’의 차이였다. 스포츠동아DB
루키 투수의 가슴 떨리는 1군 무대
만약 감독이 김재영을 믿어줬다면?
반대로 신재영이 퀵후크 당했다면?

기로(岐路). 우리말로는 갈림길이다. 두 갈래 길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인생은 매순간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인생을 닮았다는 야구도 마찬가지다. 고(go)와 스톱(stop)의 두 갈래 길에서, 한 순간의 선택이 선수의 인생과 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넥센 신재영(27). 2012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NC에 입단(신인드래프트 2차지명 8라운드 전체 69순위)하며 프로 물을 먹기 시작했지만, 지난 4년간 1군 등판은 단 1경기도 없었다. 2013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됐고, 곧바로 군복무(경찰야구단)를 했다. 그리고 시작된 2016시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무명의 투수가 신선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선발로테이션 한 자리를 차지하더니, 4연승 무패 가도를 달리고 있다. 26이닝 동안 4실점, 방어율 1.38이다. 볼넷이 단 1개도 없다는 점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만큼 놀라운 기록이다.

그러나 과정마저 순탄하지는 않았다. 첫 등판, 첫 순간부터 돌부리를 만났다. 6일 대전 한화전. 초등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며 꿈꿔왔던 프로 데뷔전이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다. 1회말 시작하자마자 한화 타자들은 신인에게 프로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려는 듯 작심하고 방망이를 돌렸다. 1번타자 정근우 우월 2루타. 2번타자 김경언 희생번트. 3번타자 이성열 1타점 우익선상 적시타. 4번타자 김태균 우월 2루타. 5번타자 윌린 로사리오 중전 적시타. 5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희생번트를 제외하고는 단 1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4안타 2실점했다. 그리고 계속된 1사 1·3루.

신재영은 덕아웃을 쳐다봤다. ‘고’일까 ‘스톱’일까. 넥센 염경엽 감독은 비가 흩날리는 그라운드만 바라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넥센 벤치는 ‘고’를 선택했다. 신재영은 다시 숨을 고르더니 6번 신성현을 3루수 앞 병살타로 유도하면서 위기를 탈출했다. 그리고는 7이닝 3실점, 감격의 데뷔 첫 승을 올렸다. 염 감독은 그날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신재영은 어차피 커리어가 없는 선수다. 얼마나 긴장했겠나. 1회에 공이 가운데로 몰리더라.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거쳐 가능성을 봤고, 그래서 선발 보직을 주기로 결정했다. 선수가 민망해질 정도로 얻어맞지 않은 이상 교체하지 않으려 했다. 우린 신재영에게 기대를 한 게 아니라 기회를 줬을 뿐이다. 그날 점수를 더 주면 타자들이 따라가면 되고, 못 따라가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린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다. 선수도 이런저런 과정을 겪어야 무엇이 잘되고, 잘못됐는지를 깨닫고 성장한다. 이건 나만의 방식이 아닌, 넥센 구단의 방향이고 시스템이다.”

같은 날, 공교롭게도 선발 맞대결한 한화 투수는 루키 김재영(23). 신재영이 중고신인 사이드암투수라면, 김재영은 홍익대를 졸업하면서 2016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지명을 받고 입단한 특급 사이드암투수였다. 스프링캠프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시범경기에서도 4경기에 등판해 15이닝 1실점으로 방어율 0.60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선발 한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이날 김재영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회초를 무실점으로 넘어간 뒤 2-0으로 앞선 2회초 선두타자 채태인을 볼넷으로 내보냈다. 박동원의 중견수 플라이와 김하성의 볼넷으로 1사 1·2루. 여기서 견제로 2루주자 채태인을 잡아냈다. 2사 1루. 그러나 9번타자 임병욱에게 1타점짜리 좌익선상 2루타를 맞고 말았다. 이어 1번타자 서건창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2사 1·2루로 몰렸다. 한화 벤치는 교체를 지시했다. 2-1로 앞선 상황에서의 퀵후크(Quick hook·3실점 이하 투수를 6회 이전에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 것)였다.

김재영은 이전에도 퀵후크를 경험했다. 2선발의 중책을 맡고 개막 이튿날인 2일 잠실 LG전에 프로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2-1로 앞선 2회말 2사 1·3루에서 김용주에게 바통을 넘기고 마운드를 내려와야만 했다. 이어 나온 김용주와 장민재가 연속으로 볼넷 4개(3연속 밀어내기 볼넷)를 내주면서 김재영의 성적은 1.2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 1회부터 한화 벤치는 김재영을 믿지 못하고 불펜에 2명의 투수를 투입해 몸을 풀게 했고, 김재영은 안타나 볼넷을 허용할 때마다 벤치의 눈치를 봤다. ‘눈칫밥’을 먹던 신인은 이후 2차례 구원등판했지만, 타자와 상대하지 못하고 벤치 눈치만 살피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한번 말려버린 팔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퓨처스리그에서 2차례 선발등판해 10이닝 14실점(8자책점)으로 방어율 6.97을 기록 중이다.

아직은 ‘씨앗’에 불과한 신재영과 김재영은 시작부터 돌부리에 직면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두 갈래 길에서, 한 사람은 휘청거리면서 돌부리를 넘어갔고, 한 사람은 비틀거리자마자 끌려나왔다.

만약 신재영이 데뷔전에서 1회에 퀵후크를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믿음’이라는 물과 ‘인내’라는 거름을 만난 신재영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다. 반면 한화는 시범경기에서 김재영에게 기껏 기회를 주더니 정작 시즌 들어서는 퀵후크를 남발했다. 넥센과는 반대로 ‘기회’를 주는 대신 ‘기대’만 한 건 아닐까. 저조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한화에서 퀵후크를 당하지 않고 있는 건 벤치뿐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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