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1권씩 年 1400만권.. 세계 최대 '성경 공장'을 가다

난징(중국)/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16. 4.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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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난징아이더 인쇄 공장 공산화·종교 탄압하던 중국.. 개혁개방 후 1987년 공장 설립 각국서 주문.. 90여개 언어 인쇄.. 총 1억4700만권 인쇄, 절반 수출

'147,255,520'

지난 25일 오후 4시쯤 중국 난징아이더(南京愛德) 인쇄유한공사 로비 전광판엔 붉은색 숫자가 거의 1초에 하나씩 올라가고 있었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인쇄한 성경의 숫자를 표시한 누적 집계다. 이곳은 세계에서 성경을 가장 많이 인쇄하는 공장이다.

부지면적 8만5000㎡에 달하는 단층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종이롤 뭉치가 나타났다. 낱장으로 성경을 인쇄하는 공정 다음으로 각 페이지를 묶어 양쪽에서 나무판으로 눌러주는 작업장이 이어진다. 그다음부터는 컨베이어벨트의 연속이었다. 직원 620명인 공장은 상당 부분 자동화돼 있었다. 종이뭉치들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움직이면서 기계에 들어갔다 나오면 옆면에 금박을 가지런히 입었고, 또 다른 기계를 거치면 '책등'이 입혀졌다. 직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기계가 토해내는 성경을 다섯권, 여덟권 단위로 분류해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보냈다.

공장 곳곳에는 '합격(合格)'이란 꼬리표가 붙은 성경 더미가 놓여 있었다.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 스페인어, 히브리어 성경까지 다양했다. 중국 내 소수민족 언어 11개를 포함, 90여개 언어로 성경을 인쇄한다고 했다. 세계 각지로부터 편집된 필름을 받아 주문 생산하는 이 공장은 1년에 성경만 1400만권, '어린왕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일반 서적도 연간 600만권을 인쇄한다. 중국 내 조선족 동포를 위한 한글 성경도 연 10만~20만권 만든다. 주문량이 많을 땐 하루 8만권까지 인쇄한다. 1년에 잉크 9t, 종이 1만t을 쓴다.

이곳이 '세계 최대의 성경 공장'이란 것은 한편으론 아이러니다.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로 종교 탄압이 풀렸지만 아직도 종교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의 수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관리하는 '삼자(三自)교회'의 공식 신자가 3000만명, 당국의 공인을 받지 못한 가정교회(지하교회) 신자 수는 7000만명 정도인 것으로 해외 개신교계는 추산한다.

이 인쇄소가 문을 열게 된 것은 개혁개방 덕분이다. 1980년대 이후 성경 수요가 늘었지만 중국 내에는 성경을 인쇄할 노하우와 기술, 설비가 전혀 없었다. 당시 딩광쉰(丁光勳·2012년 사망) 성공회 주교는 서구 개신교에 도움을 요청했다. "성경 10만권을 인쇄하려는데 종이 100t이 필요하다." 당시 세계성서공회 아시아태평양 총무를 맡고 있던 태국 선교사 출신 최찬영(88) 목사는 760만달러어치 기계와 종이 그리고 건축비를 지원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마침내 첫 성경이 인쇄된 것은 1987년 10월 14일. 이후로는 파죽지세다. 1989년 누적 인쇄 부수 100만권을 돌파했고, 2007년엔 5000만권, 2012년엔 1억권을 넘어서면서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신약성경 10만권을 인쇄해 참가 선수 등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중국 내에 7350만권을 배포했고, 나머지는 해외에 수출했다.

30분여에 걸쳐 공장을 둘러보고 로비에 돌아오자 전광판의 숫자는 '147,256,445'를 지나 줄달음치고 있었다. 그 사이 성경 1000권 정도가 더 인쇄된 것. 중국 종교국 관리가 "미국은 온종일 달러를 찍고, 우리는 24시간 성경을 찍는다"고 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공장을 방문한 한국 개신교 지도자와 신학대 총장·학장 일행을 안내한 이 회사 류쥔민(劉軍民·48) 부사장은 공장 개설 때 공인(工人·노동자)으로 입사해 30년을 근무하며 그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 "함께 성장해온 데 보람을 느낀다"는 그에게 기독교 신자인지 물었더니 그는 얼굴이 빨개졌다. "공장엔 신자 직원들이 있습니다. 저는 신자는 아니지만 기독교 문화는 많이 접하고 있지요."

☞삼자(三自)교회

1949년 공산화 이후 중국 당국이 표방한 개신교 교회. '삼자(三自)'란 문자 그대로는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의 '3-self'를 가리키지만, 내용적으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와 맞는 기독교'를 뜻한다. 삼자교회는 '중국판 가톨릭'인 '애국교회'에 비견된다. 중국은 지금도 가톨릭 교황의 주교 및 사제 임면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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