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명품친구 만들어주자" 수억 대출받아 부촌 이사도

김나영 2016. 4. 27. 1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육 환상에 엇나간 부모들], <1> 뱃속부터 황금인맥

# 임신 5주차에 접어든 김정은(34·가명)씨는 최근 2,000만원을 대출받아 강남구의 최고급 산후조리원 VIP코스에 등록했다. 2주 동안 방값만 2,500만원. 탄력케어나 전신마사지 같은 관리프로그램을 추가하면 3,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김 씨 부부의 연봉을 합치면 1억 남짓이다. 김 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등급이 정해지는 시대 아니냐”며 “내 아이를 위한 최고급 인맥을 위해서 산후조리원만큼은 최고급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소득수준 상위 0.1% 산모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강남 도곡·청담·서초·삼성동 일대 최고급 산후조리원을 중심으로 이른바 ‘황금 인맥’에 편입하기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이러한 인맥 찾기는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현상으로,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받는 부작용까지 빚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교육열과 신분 상승 욕구가 맞물리면서 어떻게 해서든 상위층 네트워크에 소속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 재테크·사업정보 공유

이름을 대면 알만한 S그룹·H그룹 등 재벌 3세, 유명 연예인들이 이용하며 유명세를 탄 서초구의 S산후조리원 관계자는 “한 층을 이용하는 4~8명의 산모가 동기”라며 “어떤 룸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산후조리원) 안에서도 등급이 달라지기 때문에 무리를 하는 고객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산모들이 수천 만원(2주 기준)의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가 정기적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데다 이후 골프나 요가 등을 함께 하면서 교분을 쌓고 더 나아가 재테크나 사업 계획 등 고급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3년째 정기적으로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을 가진다는 최영애(39·가명) 씨는 “결국 중요한 건 인맥 아니냐”며 “엄마가 부지런해야 아이에게 ‘명품 친구’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최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 있는 날은 1순위로 챙긴다고 한다. 지방 대도시에 거주하는 최 씨로서는 일부러 상경을 해야 하는 만큼 엄청난 노력인 셈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씨는 “(강남) 토박이가 아닌 상황에 그 정도 인맥을 아이에게 물려주려면 힘들더라도 (엄마가)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파트 입주민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면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까다로운 온라인 커뮤니티 가입 절차가 완료되고 나면 훨씬 더 까다로운 오프라인 모임 가입 절차가 남아있다.

고급 아파트 커뮤니티는 가업 여부·부모 직업 등 가입 조건도 까다로워

고급 아파트 커뮤니티는 가입하기가 더욱 까다롭다. 최근 고급 아파트 커뮤니티 가입을 위해 수억 원의 대출까지 떠안고 이사를 감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단지에 입성했다고 바로 모임의 멤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되는 입주민 인터넷 카페의 경우 이사가 끝나면 장을 맡는 회원이 온라인 초대장을 발송한다. 신규회원은 비밀유지 동의서를 작성하고 회비 등을 납부한 후 운영진의 별도 확인 절차를 거쳐야 게시물을 남기거나 열람할 수 있는 정회원 자격이 부여된다.

온라인 카페 내에는 별도로 운영되는 소규모 오프라인 모임이 여러 개 있다. 그 중에서도 4~6명 규모로 이뤄진 학부모 모임은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기존 회원들은 가업(家業)이 있는지 남편이 전문직에 종사하는지 고위공무원인지 등을 일일이 따져 가입 승인을 결정한다. 서초구 고급아파트 모임의 회원인 신명희(42·가명)씨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고려하기 때문에 기존 회원과 직업이 겹치는 경우는 선호도가 떨어진다”고 귀띔했다. 신 씨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보다는 고위공무원 선호도가 더 높은 편”이라며 “아이들의 인맥과 부모의 인맥은 100%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모임의 회원인 이지은(38·가명)씨는 “대기업 계열사나 중견 운수회사처럼 대대로 가업이 있는 며느리들끼리 따로 만난다”며 “사업에 도움되는 정보를 얻거나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냐”고 말했다. 이 씨는 “일부에서는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문제라고 하는데, 오히려 남편이 더욱 극성스럽게 모임을 만드는 바짓바람도 만만치 않고,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손주에게 좋은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소득·직업 따라 평가···아이 가치관 왜곡 우려”

전문가들은 예비 부모들의 ‘황금 인맥’ 집착이 ‘인맥이면 다 된다’는 식의 삐뚤어진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명품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부모 자신의 인맥 욕심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더 심각한 것은 부모의 이 같은 사고방식이 자녀에게 소득수준, 부모의 직업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왜곡된 가치관을 형성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발적 봉사활동이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가산점 스펙 중 하나로 변질되기 쉽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교육학 전문가인 이수용 연세대 교육대학원 외래교수는 “인간관계를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득실을 따지는 일종의 도구나 수단으로 치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자 가정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본인이 가진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태도를 형성시키는 건 결국 부모의 몫”이라며 “타인에 대한 이해심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나영·정수현기자 iluvny23@sedaily.com

자료화면 출처= 취재 및 SEN TV·구글·이미지투데이

▶ 교육학 전문가의 생생한 답변을 들으시려면 아래 PLAY버튼을 클릭하세요

이수용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외래교수 인터뷰
Q. 이 같은 부모의 ‘황금인맥’과 ‘명품친구’ 만들어 주기가 교육학적 관점에서 아이에게 미칠 부작용은 뭐라고 보십니까?
A. (모든 교육기관에서)인성교육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부모에게 배운 아이 같은 경우에는)그 인성은 글로 배우는 것 밖에 안돼요. 
그러면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사회적인 봉사를 하더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마음들, 측은한 마음이라던가 배려라기 보단 그런 것 보다는 사회적 위치로서 하나의 과업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기본적인 인류애라던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집단(소득수준 상위권에 해당하는) 내에서만 속한 사람들은 어차피 그 집단 내에서만 만나게 되니 그 외에서 만난 사람들은 관심이 멀어지는거죠. 
그러면 고기없으면 빵 먹으면 되지란 이해밖에 못하는···(그런 아이로 자라게 되는 거죠)

※ 서울경제신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육 환상에 엇나간 부모들을 집중 취재·보도합니다. 자녀의 생애주기에 따라 교육현장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치겠습니다. 다음 편은 기저귀 찬 아이 ‘영어 배워라’ 내모는 엄마들···‘Pre-유치원’ 광풍에 대해 다룹니다.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