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보고받고도 제품 승인?..檢, 英본사 수사

김윤진 2016. 4. 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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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입증할 결정적 증거 포착신현우 전 대표 등 구속영장 청구 검토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2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검찰이 지난 2월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본사 압수수색에서 독일 화학물질 전문가인 볼프 교수의 이메일을 발견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동안 2001년 옥시 측이 살균제 신제품 개발 전 '흡입독성을 알고도 흡입실험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숨지게 됐다'는 혐의를 입증할 마땅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이 옥시에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판매하면서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도 흡입독성란에 '실험 자료 없다'는 표기만 있다. MSDS에는 '경구(섭취할 경우) 독성 있음, 흡입(들이마실 경우) 독성 실험 데이터 없음'이라는 사용·관리상 주의 사항만 적혀 있다. 이처럼 2001년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독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에 "살균제에 독성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옥시 측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볼프 교수의 이메일을 통해 제품 개발 단계에서 연구진이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독성 경고를 분명히 받았고, 유해성을 인지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업무상 과실'이 없었다는 옥시 측 주장은 믿기 어렵게 됐다. 볼프 교수는 원료 성분의 독성이 PHMG보다 약한 경우라도 '물에 타서 사용하지 않고 물때를 닦는 데 사용되는'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하면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연구진이 PHMG의 유해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소환 조사를 받은 옥시 선임연구원 최 모씨는 2000년께 살균제 성분의 동물 흡입독성 실험을 생략한 데 대해 처음부터 볼프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최씨는 1998년 또 다른 살균제 원료인 '프리벤톨 r80' 성분 제품을 출시할 때는 볼프 교수의 자문을 거쳐 동물 흡입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검찰은 이 밖에도 최씨가 2001년 '가습기 살균제' 주성분을 바꾸면서 동물 실험을 건너뛸 때 불안해했다는 정황을 여러 증거를 통해 확인했다. 옥시는 '프리벤톨 r80'에서 하얀색 가루가 계속 발생하고 소비자 민원이 빗발치자 주성분을 PHMG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볼프 교수의 이메일과 관련한 조사를 통해 최씨와 옥시 연구소장을 지낸 김 모씨, 신현우 전 대표 등 3명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이메일이 어디까지 보고됐는지, 누가 최종적으로 실험을 안 거친 제품을 승인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2001년 4월 영국계 다국적 기업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영국 본사가 개입해 이 같은 경고가 묵살된 건 아닌지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영국 본사가 옥시 지분을 100% 보유한 점 등에 비춰 경영 사항 전반을 구체적으로 보고받고도 제품을 승인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영국 본사의 개입 정황이 확인되면 수사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은 신 전 대표 등 제품 개발 핵심 관계자 3명의 조사가 끝나면 이들에 대해 먼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6일 오전 검찰에 출석한 신 전 대표는 "피해자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제품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걸 알았느냐는 질문에는 "제품 유해성은 사전에 몰랐다"고 말했다. 검찰은 27일 최 전 연구원만 전날에 이어 다시 소환하고, 옥시의 현 연구소장 조 모씨와 도매업체 CDI 대표 이 모씨를 새로 불러들일 계획이다. 검찰은 SK케미칼이 1996년부터 PHMG를 생산한 것은 맞지만 CDI를 거쳐 옥시에 판매했고, 이 원료가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것을 알았다고 볼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용어 설명>

▷ 흡입 독성(inhalation toxicity) : 호흡할 때 가루나 가스가 몸 안으로 들어가 인체에 유해한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작용을 말한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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