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현장에 울려퍼진 애끓는 외침

2016. 4.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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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월호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23일 오후 세월호 침몰해역인 진도 동거차도 앞다바를 찾아 헌화 하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따뜻한 밥해서 같이 먹을 수 있다면….”

23일 오후 3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현장.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사고해역을 찾은 단원고 2학년 7반 허재강군의 어머니 양옥자(47)씨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들을 잃고 2년을 허위허위 헤쳐온 그의 바람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밥 한 끼였다.

416세월호가족협의회는 이날 새벽길을 달려 10여 시간 만에 상하이샐비지의 인양바지선에 이르렀다. 해경함정에 승선해 노랑 깃발로 뒤덮인 팽목항을 떠난 지도 1시간반이 넘었다. 침몰해역에 이르자 40여명의 유족들은 선실을 박차고 갑판으로 나갔다. 아이들한테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수심 40m 아래 2년째 꿈쩍 않는 선체 위에서 유족들은 아이들을 애타게 불렀다.

“너무 너무 보고 싶다 아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세월호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23일 오후 세월호 침몰해역인 진도 동거차도 앞다바를 찾아 헌화 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인양 작업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유족들은 하얀 국화송이를 거친 바다 한가운데로 던지며 오열했다. 뱃전을 부여잡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가족끼리 얼싸안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양씨는 “아이를 수습한 뒤 팽목항에는 안 올려고 했다. 생각나니까. 힘이 드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 곁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아이도 엄마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씨는 아직도 재강의 방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 아이 방을 없애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죽는 날까지 그대로 두고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

단원고 2학년 8반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46)씨는 바다 위에서 아이들한테 보내는 편지를 띄웠다. 김씨는 지난 17일 방문이 풍랑으로 연기된 뒤 다시 날짜가 잡히자 밤새 뜬 눈으로 편지를 썼다. 그는 “아이들의 꿈이 배와 함께 여기에 가라앉아 있다. 이제 세월호를 꼭 온전하게 인양해 미수습자 9명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아이들의 소중한 꿈을 건져올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같은 반 홍승준군의 가족들은 축구와 권투를 좋아했던 아이와의 헤어짐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머니 양유진(48)씨는 “여행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떠나보내 마음이 더 아프다. 승준이 또래 대학생을 만나면 시도때도 없이 생각이 난다”고 말끝을 흐렸다. 평소 승준이를 아꼈던 누나도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험한 길을 동행해 동생과의 추억을 새록였다.

이들은 739일째 침묵하고 있는 바다 위에서 30여분 동안 머물렀다. 미수습자 9명의 이름도 일일이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이들이 바친 국화 송이도 이름 소리도 파도 속에 이내 묻혔다. 이들은 잿빛 바다 위로 물결처럼 번져가는 국화 송이들을 한동안 바라보다 인양작업 바지선을 한바퀴 돌아 팽목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유족들은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2학년 3반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오늘은 2년 전 예은이가 아빠 품으로 돌아온 날”이라며 각별한 다짐을 했다. 그는 “당연히 살 수 있었던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2년 내내 억울하고 고통스러웠다. 딸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밝히는 것이 아빠의 책무라고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딸이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유족들은 4·13 총선 이후 정국변화에 기대를 내보였다.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는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험한 말들을 들었다. ‘노랑빨갱이’로 손가락질을 당했다. 피해자를 죄인 취급하는 세상이었다. 주현이가 꿈꾸는 세상, 동생 주영이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게 잘못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아이의 죽음 때문에 내가 많이 달라졌다. 우리가 정의로운 길을 간다고 생각한다. 특별법 개정에 찬성하는 국회의원 120여명이 뽑혔고, 젊은 학생들이 ‘4·16세대’와 ‘세월호 세대’라 부르며 연대하는 데서 희망을 본다”고 기대했다.

2학년 8반 장준형군의 아버지 장훈(46)씨는 “오늘만 울고, 오늘만 슬퍼하고, 맘껏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내일부터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 특별법을 개정하고 특검을 도입해 어이없는 세상을 바로잡으려 먼길을 꿋꿋하게 가겠다”고 말했다.

이들을 태운 경비정이 팽목항으로 돌아오는 석양의 바다 위에는 아이들의 합창인 듯 슬픈 노래가 뒤를 따라왔다.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잊지 않을게…”

진도/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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