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피묻은 캄보디아의 팝과 록
16일 밤 서울 마포구 코스모스에서 신 시사뭇의 손자인 신 세타콜(아래)이 캄보디아 DJ 오로(위)의 음악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신중현, 김정미 같은 우리나라 옛날 팝을 맘껏 들을 수 있어 해외 팝·록 음악인들도 즐겨 찾는 곳. 이날 내가 간 곳은 정확히 말하면 곱창전골의 골방쯤 되는 자매 바(bar) ‘코스모스’다.
거기서 이날 밤 ‘팝스 아시아나 디제잉 파티’가 열렸다. 1960, 70년대 파키스탄과 캄보디아의 팝·록 음악을 실컷 들었다. 곱창전골처럼 야릇하고 등심구이처럼 대담한 그 음악들, 미러볼과 빨간 조명, 다락방 같은 테라스가 풍기는 시대 초월 분위기 덕에 현실을 잊었다.
기타리스트 신윤철(서울전자음악단)이 판을 튼 ‘파키스탄 특급’으로 시작해 하세가와 요헤이(장기하와 얼굴들)가 턴테이블을 잡은 ‘남지나해 연락선’까지…. 오래 묵은 동남아 팝·록은 조악한 음질과 별개로 놀라웠다. 관현악의 호방한 제주(齊奏·동시에 같은 선율을 연주), 헤비메탈처럼 폭발하는 리듬, 거침없는 기타 사운드, 신선한 선율 진행, 예측을 깨는 조 바꿈과 리듬 변화가 마치 매끄러운 현대 팝의 교과서에 불을 싸지르는 듯했다. 쌍자음과 ‘ㅇ’ 받침이 전골처럼 보글대는 독특한 노랫말의 뉘앙스는 또 어떻고. 그 자리에 있던 청중은 ‘와, 이런 곡은 뭘까?’ 하며 들리는 음악의 곡목을 자동으로 찾아주는 스마트폰 앱을 연방 가동했지만 그때마다 화면에 뜬 ‘찾을 수 없음’ 메시지를 확인하며 즐겁게 좌절했다.
시공간이 휘어진 그 밤은 깊었다. 마침내 세 번째 순서. 본토 캄보디아에서 온 오로 씨가 DJ를 맡고 1960년대 캄보디아의 전설적인 음악가 신 시사뭇(1932∼1976)의 손자인 신 세타콜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행사를 기획한 이봉수 비트볼뮤직 대표에 따르면 신 시사뭇은 ‘크메르 팝의 황제’. 크메르 전통음악에 서구의 팝과 사이키델릭 록을 합쳐 독특한 조류를 형성했고 후진 양성에도 힘써 우리로 치면 신중현과 남진을 합친 것 이상의 족적과 위상을 차지했다고 했다. 훌륭한 캄보디아 대중음악의 전통은 그러나 ‘킬링필드’로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에 의해 1970년대부터 말살됐다. 객석에는 피 묻은 자국 음악의 역사를 LP와 함께 보관해 온 옴 로타낙 우돔 캄보디아 빈티지뮤직 아카이브 설립자도 자리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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