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장 최고 맛집] 서울 용문시장 수제 찹쌀 도넛

입력 2016. 4. 2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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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기계 하나 없이 주인장이 직접 반죽겉은 바삭 속은 쫄깃..당일만 파는 100% 수제
찹쌀 도넛을 집에서 만들어보겠다고 괜한 솜씨 부렸다가 부엌을 온통 기름바다로 만든 적이 있다. 포털의 지식서비스에서 시키는 대로 배합하고 튀겼을 뿐이다.

찹쌀 500g에 중력분 200g, 설탕 300g, 소금 10g을 잘 섞어서 끓인 물을 넣고 반죽한 뒤 기름에 튀기기만 하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초간단 레시피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반죽은 묽어져 손에 쩍쩍 달라붙었다. 겨우 동그란 형태로 만든 반죽을 기름에 넣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기름 냄비 밖으로 탈출한 도넛은 찢어진 풍선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찹쌀 도넛을 제대로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냥 제과점에서 사다 먹는다.

찹쌀 도넛을 유달리 좋아하는 걸 알고 여기저기서 자신들만의 맛집이라며 알려준다. 워낙 많이 먹어본 터라 찹쌀 도넛 맛이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다르겠냐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찹쌀 도넛이 아니라 치즈 도넛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따라갔더니 어느새 동그랗고 노란 구슬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이어트 중인데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을 할 틈도 없이 도넛 한 입이 뱃속으로 사라졌다.

괜한 기교 부리지 않고 익숙하게 먹던 그 맛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겉은 아삭하다고 느낄 정도로 바삭바삭하다. 속은 찰떡처럼 쫀득쫀득하다. 한 번 오물거리기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가 없는 맛이다. 일단 이곳의 찹쌀 도넛은 양쪽 손으로 잡고 천천히 찢어 찰기가 얼마나 강한지를 손끝으로 느껴본 다음에야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 도넛이 치즈처럼 길게 늘어나며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씹는 순간 찹쌀의 쫄깃함이 입 속을 옹골차게 채운다. 속이 빈 도넛은 팥소의 달콤한 맛에 기대지 않고 오직 찹쌀로만 승부한다.

한 자리에서 24년! 도넛만 튀겼다. 설탕이 립스틱처럼 묻어나는 꽈배기부터 추억의 야채빵, 씹을수록 더 차진 찹쌀 도넛까지 기계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오직 손으로만 만들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몸이 아파 가끔 가게 문을 닫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3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는 흔한 반죽기도 숙성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기계 좀 넣자고 아내가 말해도 사장님은 "기계가 어떻게 사람을 따라가" 하신다. 많이 만들어서 번듯한 가게를 내려면 기계를 써야 하는데 맛이 달라진다며 고집을 피운다고 아주머니가 푸념을 하셨다.

"이 아저씨가 고집이 엄청 세요. 기계에 넣어서 주물주물하는 거랑 손으로 야무지게 치대는 거랑 완전히 다르다며 자기 몸 상하는 줄 모르고 저렇게 밤낮 없이 오직 손으로만 만들잖아."

찹쌀 도넛은 예민하다. 찹쌀 입자가 조금만 고르지 않아도 모양이 잘 잡히지 않고 바삭함과 쫄깃한 식감을 동시에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빻은 찹쌀가루를 사다 쓰지 않는다. 최고 좋은 찹쌀을 사다가 불린 뒤 체에 걸러서 적당히 물기를 뺀다. 불린 찹쌀을 수레에 실어서 방앗간으로 가져가 직접 빻는다. 방앗간 주인보다 자신의 손이 더 정확하기 때문에 입자가 아주 고와질 때까지 손으로 만져보면서 직접 빻아야 한다.

그렇게 빻아온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넣어서 손으로 반죽을 한다. 뜨거운 물을 견디는 아저씨 손은 경미한 화상을 입은 듯 빨갛다. 자연숙성 과정을 거친 찹쌀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떼어내 동그랗게 빚는다. 180도 기름에 들어간 도넛은 동글동글 구슬처럼 떠오른다. 방부제를 단 1%도 쓰지 않기 때문에 당일 만들어서 당일에만 판매한다. 이 수고스러운 과정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려 24년 동안 해왔다. 한 번쯤은 업소용 가루를 사다 쓸 만도 한데 아주머니 말씀대로 고집이 고래 심줄이다.

"10년쯤 장사했을 무렵에 너무 힘들어서 딱 한 번 만들어놓은 재료를 사봤는데 한여름에도 썩지 않는 반죽을 보면서 사람 먹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어. 그 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가루부터 직접 만들어서 쓰게 되었지."

그런 사장님의 고집스러운 손맛을 아는 손님들은 20년 단골이 되었다. 가격도 적혀 있지 않은데 단골들은 알아서 2개를 먹고 1000원을 내고 간다.

뜨거울 때 먹는 100% 수제 찹쌀 도넛은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이랑주 시장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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