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에 대한 시청자들의 각별한 관심이 의미하는 것

김교석 입력 2016. 4. 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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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 국민임을 공중파로 확인하는데 2년이나 걸렸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방영된 SBS 시사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특집편이 7.8%(이하 닐슨코리아 기준)의 성적으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얼마 전 치러진 20대 총선 결과와 묘하게 대비된다. 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일여다야 구도에서 예상을 뒤엎고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과 정반대다. 예능 격전지에서 유일한 시사프로그램이 시청률 수위를 차지한 것이다.

토요일 11시는 공중파와 종편 예능의 힘겨루기가 팽팽한 험지다. 이경규, 김구라, 강호동 등 거물급 예능인이 이끄는 MBC <마리텔>(6.3%), JTBC <아는 형님들>(1.2%), 종편의 간판예능인 MBN <동치미>(4.8%), TV조선 <모란봉클럽>(3.2%)이 텃밭을 꾸린 땅이다. 여기에 새로운 바람을 염원하는 신예 KBS2 <배틀트립>(4.5%)과 채널A <오늘부터 대학생>(0.78%)이 가세했다. 거물급부터 신생 프로그램까지 자웅을 겨뤘지만 그 어떤 예능도 시사 프로그램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충격적인 결과가 나옴에 따라 예능 칼럼에서 안 다룰 수 없게 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간 진보 매체를 통해서만 간간이 들려오던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파고들수록 나타나는 수상하고도 명백한 연관성과 국정원의 거듭된 거짓 해명과 은폐를 쫓았다. 김상중의 말대로 진실까지는 여전히 수심 44M의 거리만큼 좁혀가야 할 의문과 걷어내야 할 어두움이 남았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어쩌다 전복됐나?’와 ‘왜 구조하지 않았나?’라는 두 축의 의혹을 남겼다. 이번 방송은 그 두 번째 의혹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공중파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이제야 꽤나 긴 골든타임을 놓친 이유를 짐작하게 됐다.

배가 시시각각 침몰해가는 순간, 청와대 안보상황실장은 인명구조보다 일선에 VIP에게 올라갈 보고서를 위한 인원파악을 강력하게 지시했다. 그에게는 침몰하는 배 안의 승객들이 완벽한 보고서를 위한 ‘숫자’일 뿐이었지만 그 숫자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자식이었고, 국민이었다. 지시는커녕 사건 당시 현장조차 제대로 나가지 않았던 해경 고위 관계자는 청문회장에서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했다. 그 보고의 주인공인 VIP의 당일 행방은 여전히 빈칸이다.

우리가 이런 국가의 국민임을 공중파 방송을 통해 확인하는데 2년이나 걸렸다. 세월호가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다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고 뿌린 프레임에 대해 제동을 걸고, 과정이 투명하게 공유될 때 결과도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정부 당국에 대한 충고가 공중파에서 흘러나오자 예능은 밀려났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글은 TV 예능에 대한 이야기다. 선거 국면을 맞아 JTBC의 정치예능 <썰전> 시청률이 올라갔다. 선거 당일 촬영한 성실함은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무겁고 외면하고 싶은, 그동안 쉬쉬했던 이야기를 자극적이지 않게 담으며 모든 예능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무한도전>에서 젝스키스가 뭉치고 일요예능들도 대체로 선방했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이슈 지분은 주말을 넘기고도 확고하다.

오늘날 예능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을 닮는 것을 넘어서 담으려는 노력이다. 즐겁고 재밌는 다채로운 예능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에 더 많이 모인 관심은 TV와 일상이 점점 더 가까워진 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모습이 드러난 사례다. 한때 예능은 현실세계와 완벽하게 분리되는 게 미덕이었지만 오늘날은 일상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루게 될 일상은 의식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삶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웃음의 재미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오늘날 대중 정서와 기존 성공 가이드 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예능과 시사는 전혀 다른 세계였지만 이제는 일상이란 틀 안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문제적 남자>에 출연한 방년의 클레이 모레츠는 당당히 지지하는 대선 후보와 그 이유를 밝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방송에서 다룰 수 있는 일상의 범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예능만 놓고 보면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네버랜드도 필요하지만 그 상위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방송사의 브랜드를 놓고 봤을 때 현실을 쉬쉬하고 눈감는 모습은 일상성의 몰입과 신뢰를 떨어트리게 된다.

그 독하던 종편들도 전향적으로 논조를 전환했다. 우리사회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족쇄처럼 여기던 노란리본이 어느새 발목에서 가슴에 와 있다. 너무 급하게 틀어서 침몰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가다 처박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런데 공중파에서는 지난 16일 지상파 프로그램 중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제작되거나 관련한 특집 프로그램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유일했다. 세월호 참사 의혹을 정면으로 다룬 방식도 유일했다. 언론으로서 공중파 방송사의 분발과 시대에 맞는 변화가 촉구되는 대목이다. 선거 결과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이 방송도 못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내는 시청자들과 예능을 즐기는 시청자는 결코 다르지 않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 연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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