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20대 대학생이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사건이 벌어졌다. ‘시험공화국’ 한국에서 시험지·답안지 유출 등 각종 부정행위가 화두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육은 곧 시험”이라는 전제 하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 풍토가 이 같은 ‘참극’을 반복하게 하고 있다. 시험공화국의 민낯을 드러낸 부정시험 사건들을 정리했다.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7급 공무원 시험 성적을 조작한 송모씨(26)가 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이준헌 기자
■1992년·2010년 대입 시험지 도난
1992년에는 후기 대입 학력고사 문제지 도난 사건이 있었다. 후기 시험을 하루 앞둔 1월 21일 경기 부천 소재 서울신학대학 보관 창고에서 문제지 일부가 도난돼 20일이나 시험이 미뤄졌다. 도난당한 문제지는 1교시 국어·국사 1부와 2교시 사회Ⅰ·Ⅱ, 지리Ⅰ·Ⅱ, 세계사(인문계열) 1부씩, 3교시 영어 실업 1부, 4교시 국어Ⅱ, 국민윤리, 물리Ⅰ, 생물Ⅰ, 화학Ⅰ, 지학Ⅰ(인문계열) 1부씩이었다.
사건 발생 하루만에 이 대학 경비원 정모씨(당시 45세)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당초 정씨는 “친지의 딸을 대학에 합격시키기위해 시험지를 훔쳤다”고 자백했다가 이후 진술을 번복, 결백을 주장했다. 정씨는 문제지 도난과 별개인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사상 초유의 시험 연기라는 파문을 일으켰지만 진범이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다.

1992년 1월21일 92학년도 후기대입시문제지 도난사건이 발생한 서울신학대학의 전산실에서 한 수사관이 파손된 문제지 보관상자를 조사하고 있다. | 경향신문 1992년 1월22일자 1면
1993년에는 교육부의 대입 시험 출제관리담당 장학사가 4년 간 학력고사 모범답안을 빼내 수험생들에게 넘긴 사건이 발생했다. 미리 정답을 알고 시험을 치른 한 학생은 내신성적이 최하 등급이었지만 본 시험에서 전국 1등인 339점(340점 만점)을 받았다. 2010년 11월에는 수능 시험지 인쇄공장에 들어가 문제지를 훔치려고 한 검정고시 출신의 삼수생 김모씨(당시 20세)가 경찰에 붙잡혔다.
■면허·자격시험에서도 부정행위
대입뿐 아니라 각종 면허·자격시험에서도 문제지가 유출될 뻔 한 적이 있다. 1997년도 치과의사 면허시험 문제지를 빼돌리려고 시도한 인쇄업자 이모씨(64)와 제본공 김모씨(59) 등 2명이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김씨는 그해 1월 9일 문제 출제위원이 합숙하고 있던 서울 모 호텔 객실에서 13개 과목의 문제지 3묶음을 훔쳤다. 김씨는 훔친 문제지를 양말 속에 넣은 뒤 호텔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씨에게 전달하려고 했으나 약속시간이 어긋나 유출에 실패했다. 2005년에는 국가공인자격증인 정책분석평가사와 빌딩경영관리사 시험에서도 문제지 유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토익 ‘대리시험’ ·SAT ‘족보 강의’도 도마에
만국 공통으로 치러지는 시험에서 국내에만 있는 ‘족보 강의’로 망신을 자초한 일도 있었다. 2004년 10월 영어능력 평가시험인 토익(TOEIC) 문제지가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유명 학원에서 사전에 수강생들에게 제공된 사실이 드러났다. 외국에서 주관하는 시험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돼 기출 문제의 외부 유출이 금지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어기는 게 빈번하다. 미국에 유학 중인 한인 학생들은 방학 때가 되면 한국에 들어와 미국 대학입학시험 에스에이티(SAT)를 대비해 사교육을 받는다. 이 시험에서도 족보를 공부해 얻은 한국 학생들의 고득점을 두고 윤리성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토익답안지 찍는 데 사용한 깁스 속 휴대전화. 부산경찰청 제공
2013년에는 토익 대리시험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토익 고득점자인 한 수험생이 팔을 다친 것처럼 깁스를 하고 토익시험장에 들어가 문제를 풀고, 깁스 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답안지를 찍어 외부로 전송했다. 시험장 밖에서 이 답안을 전송받은 이모씨와 허모씨 등은 이를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 응시생 12명에게 전파했다. 응시생들은 귓속에 지름 2㎜ 크기의 초소형 음향수신장치를 부착하고 있었다. 응시생들은 토익 평균 점수가 500~600점이었으나 이 시험에서 800~900점으로 상승했고 990점 만점을 받은 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