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으로서 성난 민심을 못 읽었습니다"..'16년 만의 여소야대' 전혀 예측 못한 언론의 반성문
지난 13일 오후 6시 지상파 방송사의 제20대 총선 출구조사가 발표됐을 때 놀랐던 건 당직자만은 아니었다. 민심의 흐름을 훑고 판세를 제법 꿰뚫어본다고 자평했던 언론도 숨이 턱 막히긴 마찬가지였다.
각 언론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여론조사와 현장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총선 판세를 분석했다. 여기에 바닥 민심 취재력, 고급 정보 접근성, 누적된 정치적 자산, 오차 범위를 줄이기 위한 다각도의 취재 방식과 언론 특유의 균형감각 등을 더하면 좀처럼 오판을 하긴 어렵다는 게 과거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언론은 대부분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을 예측하지 못했다. 국회 제1, 2당이 뒤바뀔 것이라고 짐작이라도 한 곳은 더욱 희박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영남 지역 선전, 국민의당의 정당투표 약진, 새누리당의 수도권 몰락은 언론의 예측 범위를 크게 뛰어넘었다. 20대 총선에서 언론은 철저하게 민심과 동떨어진 기사를 썼다. 그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민심 대신 당직자, 현장 대신 인터넷=우선적으로 언론의 취재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이번 총선은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복원된 복잡한 국면으로 치러졌다. 양당 체제에 익숙했던 언론은 취재 대상 선정부터 애를 먹었다.
분열된 야권, 충성 경쟁에 매몰된 여당은 끊임없이 돌발 현상을 생산해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비롯해 야권의 영입 경쟁이 이어졌다. 새누리당에선 ‘옥새 파동’ 등 내분이 격화됐다. 야권 연대, 텃밭 반란 등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언론은 정치공학적 분석을 우선순위에 두고 판세 분석은 각 당 분석을 차용했다. 정당 입장별로 분석 결과가 왜곡될 여지가 있지만 간과했다.
◇정성 분석 없는 여론조사와 받아 쓴 언론= ‘깜깜이’ 여론조사는 이런 추세를 더욱 부채질했다. 언론은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를 정량화하는 데만 매몰돼 잘못된 민심 분석을 확대 재생산했다. 접전지역 현장 취재는 한두 차례 겉핥기식으로 진행하는 데 그쳤다.
‘인터넷 판세’도 오판을 부추겼다. 인터넷 여론은 주로 충성도가 높은 지지층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부동층은 쉽게 인터넷에 노출되지 않으며, 노출되더라도 쉽게 배척되는 경향이 있다. 여론이 왜곡되는 경우가 잦지만 언론 보도에서 인터넷 여론 반영 비중은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편파보도도 문제다. 언론·시민·사회단체가 구성한 ‘2016 총선보도 감시연대’는 지난달 25일∼지난 2일 6개 일간지, 7개 방송의 총선 보도를 조사했다. 신문의 경우 전체 1156건 중 58건(5.0%)이 주관적·비과학적 보도 등 ‘문제 보도’, 29건(2.5%)이 편파보도였다. 방송은 전체 684건 중 64건(9.4%)이 문제 보도, 21건(3.1%)이 편파 보도로 합계가 10%를 넘어섰다.
‘폴리널리스트’(언론인+정치인)의 범람도 보도 객관성을 의심받게 만든다. 편집국장·정치부장이 직업윤리를 외면하고 곧바로 정계에 입문하거나 단기간 공직 경험 후 총선에 직행하는 ‘우회 진출’도 적지 않다. 언론의 정치적 입장 표명이 과격해지면서 ‘플레이어’로서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깊이 있는 분석보다 속보 ‘선호’…언론 외부의 변화=인터넷·모바일 환경 확대로 신문·인터넷 언론은 유력 정치인의 한마디를 ‘실시간’ 보도하는 속도 경쟁을 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대거 등장하면서 속도 경쟁은 방송으로도 옮겨붙었다. 유명 정치인의 출근길을 생중계하거나 “할 말이 없다”는 정치인을 붙잡고 억척스레 소감을 묻는 생방송 연출도 이어진다.
이렇다 보니 상황을 ‘숙고(熟考)’하고 내막을 ‘탐사(探査)’하는 보도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조회수를 의식해 대상을 비하·조롱하는 저품격 기사, 현안을 싸움 중계하듯 보도하는 경마장식 보도가 양산된다.
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사전에 약속된 시간에 ‘백브리핑’(배경을 설명하는 브리핑)과 인터뷰를 했지만 지금은 언론이 화장실까지 쫓아와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는 바람에 깊이 있는 얘기를 하기 어렵다”며 “언젠가부터 언론이 현안 발언만 들으려 하지 정치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언론이 소탐대실(小貪大失)하고 있다는 의미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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