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플러스] 추적, '세월호 48시간'..그들은 뭘 했나?

김태영 2016. 4. 1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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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박근혜 대통령 (2014년 5월) : 특별법은 필요하다고 보고 특검도 해야 합니다.]
[이완구/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4년 5월) : 여당이 먼저 특검을 요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한길/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2014년 5월) : 진상규명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정치권이 한 약속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78회'. 지난 3월 말 세월호 특조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혹은 '모른다'라고 답변한 횟수입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48시간의 골든타임동안 과연 어떤일이 있었던걸까요. 오늘(17일) 탐사플러스는 특조위가 밝히지 못한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48시간, 그 골든타임을 추적했습니다.

김태영 기자입니다.

[기자]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당시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학생들이 촬영한 영상입니다.

[쏠림 장난 아니야. 그냥 그냥 그쪽으로 가.]

급격하게 기울어진 세월호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

경비정은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구조하는데 그칩니다

[김모씨/전 해경 123정장 : 방송 장치로 승객 여러분 총원 바다에 뛰어내려주십쇼, 그리고 퇴선하십시요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새월호 재판과정에서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퇴선 지시를 하지 않았던 김 정장은 오히려 탈출하는 승객들을 촬영하기 바빴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촬영하는 모습을 다른 해경이 촬영하도록 했습니다.

피해 규모를 파악하라는 청와대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록 : 지금 VIP 보고 때문에 그런데 영상으로 받으신 것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취재진은 사고 직후 이틀간 청와대와 해경이 주고받은 핫라인 녹취록을 살펴봤습니다.

174차례. 주로 청와대가 해경에 전화했고, 특히 초기 구조에 집중해야 할 때 사진과 영상을 반복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청와대 요청은 해경뿐만 아니라 일반 선박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예식/둘라에이스호 선장 : 한 사람만 1분만 한다 해도 벌써 업무에 집중이 안돼버리니까 우리한테는 방해라고 봐야지.]

해경이 청와대 보고에 치중하는 사이, 세월호 안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만 계속됐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해경의 구조만을 기다렸습니다.

[와, 기울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 지금 이거 실전이라고. 장난 아니고.]

2년이 지나고 지난 3월 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2차 청문회.

[강모씨/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 : (양대홍 사무장이 증인에게 대기하라는 선사의 지시를 전달받았다고 진술했는데 진짜입니까?) 네.]

청해진해운이 선내 대기 방송을 지시했다는 겁니다.

조타수 조모씨도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조모씨/전 세월호 조타수 : (선사의 지시를 받은 것 같은 강씨가 명령조로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진술하셨죠?) 네,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청문회장을 나선 직후 강씨는 입을 굳게 닫았고

[강모씨/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 : 인터뷰 따로 안 합니다.]

수감 중인 다른 세월호 선원들에게도 아무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교도소 관계자 : 세월호 청문회 참석 안 한 거 아시잖아요. 일체 외부에 이제 가족이나 그런 것 외에는 접견을 안해요.]

침몰 당시 청해진해운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배가 기울어가던 9시 33분과 38분, 청해진해운의 기획관리팀장이었던 김모씨는 국정원 직원에게 두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세월호 침몰 상황을 실시간 보고한 겁니다.

취재진을 만난 김씨는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세월호의 보고 대상이 국정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김모씨/전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장 : 선박(세월호)이 국가보호장비란 말이야.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이 세월호 도입 이전부터 수시로 식사 자리를 가지는 등 관계를 맺었다는 겁니다.

[김모씨/전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장 : 같은 건물에 주변 건물에 있는데 상식적으로 1년에 두세번밖에 안봤겠냐고. 수십 년 전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10년 이상은 (국정원이) 나와 있었던 거.]

김씨 말대로 인천여객터미널에 국정원 직원이 상주하고 있는지 직접 가봤습니다.

[인천여객터미널 관계자 : 여기가 국제터미널이니까 입주해있는 건 당연하고. (국정원 사무실 위치는 못 가르쳐주시죠?) 네. 그건 양해를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청해진해운처럼 연안여객선을 운행하는 선사들은 국정원 존재를 모르거나 만날 일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연안여객선사 관계자 : 모르겠는데요. 처음 듣는 소린데.]

침몰한 세월호에서 발견된 노트북에서도 국정원이 보안점검 등을 통해 세월호를 관리한 정황이 나옵니다.

실제 청해진해운은 국정원 지시로 부두에 CCTV와 철조망을 설치하며 비용을 부담한 것은 물론, 이를 유지하겠다는 각서까지 썼습니다.

청해진해운 직원 이모씨는 자신의 수첩에 당시 국정원의 압박이 상당했다고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모씨/전 청해진해운 직원 : 세월호가 인천에서 그렇게 빨리 검사가 한달 뭐 계속 하니까 이게 뭐 때문에 그런가 해서 감정적으로. (괘씸죄에 걸린 것 같다?) 네.]

실제 세월호 출항 시기는 한달정도 지연됐고, 청해진해운은 수천만원대 손실을 입었습니다.

[전 세월호 선원 : 세월호는 들었어요 얼핏. 국정원 검사 받는 걸 까다롭게 받았다고.]

국정원은 참사 직후 세월호 기관사 손씨를 직접 조사했습니다.

국정원 조사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손씨를 직접 찾아갔지만 만날수는 없었습니다.

[교도소 관계자 : 언론에 노출되고 이런게 세월호 가족에게 누가 되는 게 아니냐.]

입을 닫고 말을 바꾸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 뒤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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