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순례기 | 하동 구재봉] 섬진강 매화 향기 따라 간 산길

글·사진 | 윤제학 동화작가·월간山 기획위원 2016. 4. 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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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변에 매화가 성개했다. ‘겨울이 갔다’는 심증은 ‘봄이 왔다’는 확증으로 바뀐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람들의 입에 자주 다가오는, 중국 송나라 때 어느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다음 시처럼.

‘종일 봄을 찾았지만 봄을 보지 못했네(盡日尋春不見春) / 짚신 신고 구름 덮인 산마루까지 가 보았거늘(芒鞋踏遍壟頭雲) / 돌아와 웃고 있는 매화향을 맡으니(歸來笑拈梅花嗅) / 이미 봄은 매화나무 가지에 무르익었네(春在枝頭已十分)’.

[월간산]구재봉 동쪽 기슭에서 본 섬진강과 악양.
구재봉이 있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남 광양시 다압면과 마주한다. 다압면은 백운산(1,218m) 동북쪽 자락에 깃든 곳인데 ‘매화마을’로 더 널리 알려졌다. 이곳에서 광양 매화축제가 열린다.
[월간산]구재봉에서 본 악양과 지리산 줄기.
광양 백운산은 상당히 높은 산이지만 정상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억불봉(99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용마루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백운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눈으로 보면서도 그 높이를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등성마루에 쌓인 눈이 그것을 말해 준다. 산 아래 섬진강 물비늘에 매화향이 서리었는데도 산마루의 기운은 결기가 꿋꿋하다. 백운산의 서늘한 기운이 없다면, 다압의 매화는 격조는커녕 오로지 매실을 얻기 위한 생식기관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흔히들 매화를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긴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매화, 하면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세한삼우(歲寒三友), 설중매(雪中梅) 같은 말을 떠올린다. 매화는 눈[雪]과 뗄 수 없는 꽃이다. 설중군자(雪中君子)로도 일컫는다.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 않고 한결같이 우리 곁에 온다 하여 청우(淸友) 또는 청객(淸客)이라 불렀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더욱 다감한지라 고우(古友)라고 했다.

매화를 일러 화괴(花魁)라고도 한다. 으뜸가는 꽃, 꽃의 우두머리라는 뜻이겠다. 같은 의미로 백화형(白花兄) 또는 화형(花兄)이라고도 한다. 모두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라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물론 매화보다 먼저 피는 복수초 같은 꽃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야생화이지 우리 곁에 피는 꽃은 아니다.

황벽(黃糪, 중국 당나라, ?~850) 선사는 해탈의 공부 길을 풍상을 감내하며 피어나는 매화에 빗대어,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不是一番寒徹骨) / 어찌 지극한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라는 시구를 남겼다. 곧은 선비나 은사들은 세한에도 의연한 매화에, 세파에 초연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심정을 가탁했다. 매화는 인간의 감정이 짙게 투영된 꽃이다.

눈에 덮여 신령한 느낌마저 자아내는 지리산 정상

[월간산]먹점마을에서 만난 매화.


[월간산]구재봉 암릉에서 본 악양과 지리산 천왕봉.
설중매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매화의 암향(暗香)에 어울릴 법한 알싸한 바람과 함께 섬진강변을 지나 구재봉이 자리한 악양면으로 흘러든다. 구재봉(767.6m)은 거슬러 오르면 그 뿌리가 지리산 촛대봉 동쪽 능선에 닿는다.

지리산에서부터 짚어 보자면, 촛대봉 동쪽 능선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삼신봉(1,289m)을 일으켜 세운 다음 거사봉(1,100m) 조금 못미처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 줄기는 형제봉(1,116m)과 신선봉을 이루며 섬진강에 발을 담근다. 이 줄기가 악양면의 서쪽을 이룬다. 다른 한 줄기는 거사봉, 칠성봉(899m), 분지봉(628m)을 세우고 역시 섬진강에서 멈추며 악양면의 동쪽을 막아선다.

[월간산]구재봉 정상 북면의 암벽.
선명하고도 우람한 두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그 앞을 강이 흐르는, 마치 산 속의 섬 같은 분지가 악양이다. 거사봉에서 발원해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악양천이 섬진강과 만나며 넉넉한 들판을 이루었다. 이곳이 바로 소설 <토지>로 널리 알려진, 악양 사람들이 ‘무딤이(들)’이라고 부르는 평사리들이다. 너른 들판과 우람한 산 사이에 30개의 자연마을이 하나의 면을 이루었다. 아마도 이런 자연 환경에 깃든 면 단위 지역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악양은 세계에서는 111번째, 한국에서는 5번째로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산, 들, 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자연 환경에서 녹차, 약초, 대봉감 그리고 쌀과 보리를 거두며 산다. 이런 지역 정체성이야말로 ‘슬로시티’의 요건에 부합한다. 악양 사람들은 슬로시티라는 타이틀을 관광 상품화시키려고 ‘악’을 쓰지 않는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악양의 현재 인구는 3,900명 정도이지만 과거 농촌 인구가 줄기 전에는 2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모두가 아주 가난했던 시절, 외부에서 거지가 들어와도 굶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월간산]평사리 들의 (일명) 부부송. 뒤로 형제봉이 보인다.
악양은 산을 오르내리며 지나칠 곳이 아니라 산과 함께 들판도 걸어 봐야 할 곳이다. 그곳을 걸어 보면 김제, 만경평야의 지평선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대지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산과 강과 대지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몸이 먼저 알아본다.

구재봉 산행은 악양의 북쪽 끝 회남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악양과 청학동을 넘나드는 고갯마루인 회남재까지는 승용차로도 오를 수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므로 형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회남재는 악양면과 청암면을 잇는 높이 740m의 고개인데, 1560년경 남명 조식 선생이 악양이 승경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회남재에서 깃대봉(981m)으로 향하는 산길은 조릿대밭 사이로 열려 있다. 조릿대밭 지나 바위를 하나 오르면 조망이 열린다. 남쪽으로 몸을 세우면 형제봉과 구재봉 능선, 그 사이로 악양 그리고 섬진강, 섬진강을 건너 하늘을 버티는 성채 같은 백운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리 말하자면 회남재에서 깃대봉, 칠성봉, 구재봉을 걷는 즐거움은 이런 풍광을 조망하는 데 있다. 몸을 돌려 세울 때 홀연히 시야에 들어오는 지리산 능선 조망은 덤.

깃대봉은 악양의 동쪽 산줄기 가운데 가장 높지만 시야는 열리지 않는다. 깃대봉을 지나면서부터 편안한 소나무 숲길이 열린다. 훤칠한 금강송 숲길은 아니지만 호젓한 느낌은 좋다. 베틀재까지 꾸준히 내려섰다가 또 그만큼 오르면 봉수대 터다. 칠성봉은 봉수대 터를 지나 주릉에서 살짝 벗어난다(200m). 칠성봉에서 다시 주릉으로 내려와 동점재까지 내려섰다가 길게 오르면 구재봉이다.

[월간산]먹점마을 골짜기의 매화.
구재봉은 밋밋한 봉우리이지만 직전 능선에 멋진 바위를 뭉쳐 놓았다. 이 바위 모양이 적량면에서 보면 거북, 악양면에서 보면 비둘기같이 보인다 하여 구재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현재 정상석에는 비둘기 ‘구’ 자가 아닌 거북 ‘구’ 자를 써서 ‘龜在峰’이라고 새겼다. 구재봉 직전(북쪽) 암릉은 벼랑이 소나무를 품은 모습도 일품이지만 빼어난 조망처이기도 하다. 맞은편의 형제봉 능선은 물론 북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높이로 다가온다. 지리산 정상은 마침 눈에 덮여서 신령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사람 사는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 되는 악양 들판

[월간산]구재봉에서 본 남해. 화면 가운데 멀리 흐릿한 섬이 사량도다.

구재봉은 악양 동쪽 산줄기의 봉우리 가운데 최고의 조망처다. 지리산, 형제봉 능선, 백운산, 금오산(하동), 와룡산(사천), 섬진강, 악양 들판 그리고 남해의 다도해가 아득히 펼쳐진다. 이 가운데서도 내게 가장 아름답게 와 닿는 풍경은 악양이다. 악양 사람들이 ‘잘’ 사는 덕분일 것이다.

구재봉서 서쪽(악양 방향 1.6km) 기슭으로 내려서면 활공장이다. 이곳의 조망도 빼어나다. 악양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인데, 이 고을이 지리산 그늘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활공장까지도 임도가 잘 닦여 있어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다. 악양의 남동쪽 입구인 개치로도 갈 수 있고, 하동읍 흥룡마을을 통해서도 섬진강변 19번국도로 연결된다. 아침 일찍 활공장에 자동차를 올려 두었으므로 하산길은 부담 없이 먹점마을을 택했다. 이곳은 요즘 하동의 ‘산골매화마을’로 불린다.

먹점마을은 구재봉 아래 첫동네이다. 구재봉 남쪽 기슭 해발 300m쯤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한적한 산마을이다. 임진왜란 이후 창녕 조씨가 자리를 잡은 집성촌인데, 옛날에 ‘먹’을 만들었던 곳이라 먹점마을로 불린다고 한다.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도 지금 매화꽃으로 환하다. 규모는 광양 매화마을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아취는 윗길이다. 집의 마당 한켠, 산기슭, 비탈밭, 골짜기 가에 자라는 매화 모습이 자연스럽다.

강희안(1418~1465)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라 할 <양화소록>에서 화목을 9가지 품으로 분류했는데 매화를 1품에 넣었다. 이 책에서 그는 (모든 사람이) “매화는 운치가 있고 품격이 있어 고상하다”고 말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줄기가 비틀리고, 가지가 성글고 야위었으며, 늙은 가지가 괴기하게 생긴 것이 더욱 진귀하다”고 했다. 또 매실을 따서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접을 붙여 가지가 곧은 나무는 운치나 품격이 없다고 했다.

요즘 우리가 열광하는 매화는 대부분 ‘매실농장’의 것이다. 매화를 완상의 대상으로 여기며 실용성보다 심미성을 중시한 옛 선비들의 눈으로 요즘 ‘매화축제’의 품격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야단스런 벚꽃놀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매화의 수많은 별칭 가운데 ‘호문목(好文木)’이 있다. 진나라의 무제가 공부할 때, 글을 열심히 읽으면 매화나무에 꽃이 피고 게을리 하면 꽃이 졌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먹점마을에서 이 말을 떠올린 건, 지인 가운데 먹점마을이 고향인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섬진강변 신작로 가의 흥룡초등학교(지금은 폐교)를 다닐 때 잰 걸음으로 왕복 2시간을 걸었다고 한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 모습은, 내가 알 수 없는 진나라 무제의 ‘호문(好文)’보다 더 아름답다. 야단스러운 봄꽃놀이는 매화축제 말고도 많다. 심매(尋梅)의 격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뜻밖에 탐매(探梅)를 겸하게 된 구재봉 산행길. 내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그림이 된, 50여 년 전 산골 아이의 학교 가는 길에서 나는 즐거웠다. 사람 사는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악양 들판 바라보는 일, 또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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