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오름기행] 140만 년 풍파에 깎여 날 선 오름, 추사의 귀양살이 흔적이 ..

손민호 2016. 4. 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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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름기행 ② 바굼지오름(단산)
바굼지오름 북쪽에서 바라본 장면. 오름의 곡선이라고 하기에는 선이 너무 날카롭다.
바굼지오름 왼쪽 봉우리에서 바라본 오른쪽 봉우리. 오름 아래에 대정향교가, 봉우리 너머로 산방산이 보인다.
바굼지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대정들판.
바굼지오름 기슭에 있는 진지동굴.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군이 파놓은 것이다.
바굼지오름 북쪽 탐방로. 유채는 물론이고 제비꽃ㆍ봄까치꽃(큰개불알꽃)ㆍ괴불주머니 등 봄꽃이 길섶에 피었다.
대정향교 대성전 뜰에 서 있는 소나무와 팽나무. 왼쪽의 소나무가 ‘세한도’의 그 소나무와 닮아있다.
추사 유배처는 가시가 날카로운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다. 위리안치(圍籬安置) 형이 이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나왔다.
추사기념관 ‘추사관’에 있는 추사 흉상. 추사관은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고, 흉상은 화가 임옥상의 작품이다.
카페 ‘지오아라’에서 파는 누룩빌레 주먹밥. 화산 분화구 모양이다.

이름도 생김새도 오름 같지 않은 오름이 있다. 바굼지오름. 이름처럼 모양도 별난 이 오름은 제주도 남서쪽 들판 위에 오도카니 서 있다. 날카로이 솟은 바굼지오름을 보고 누구는 설악산을 떠올리고 누구는 월출산을 연상한다. 누이 가슴 같은 몽글몽글한 곡선이 바굼지오름에는 없다. 거칠고 날 선 직선이 유순하고 완만한 곡선을 대신한다. 물론 이 매정한 직선의 오름에도 사람의 숨결이 배어 있다. 누구나 아는 이름이어서 반갑고 안쓰럽다.

직선의 오름

제주도에는 약 368개 오름이 있다. 똑 부러지는 숫자를 밝히지 못하고 ‘약’이라는 애매모호한 낱말을 빌리는 이유는, 아직 그 누구도 제주의 오름을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오름’이라고 불리는 작은 기생화산까지 합하면 제주에는 오름이 500개가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제주 오름을 처음 집대성한 고(故) 김종철(1927∼95)의 『오름 나그네』(총 3권, 1995)에는 오름 320개가 열거되어 있다.

제주 오름이 몇 개이든 간에 오름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다. 산이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아쉽고, 언덕이라고 하면 왠지 서운한 것 같은 화면이 우선 그려진다. 화면을 채우는 오름은 하나같이 독립한 봉우리를 이룬다. 그러나 오름이 그리는 라인은 뭍의 산처럼 각을 세우지 않는다. 오름의 라인은 볼록하고 오목한 곡선으로 하염없이 이어진다. 오름을 보고 누이의 가슴을 연상하는 건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 따위가 없어도 가능한, 말하자면 흔하고 빤한 감상(感想)이다.

그러나 바굼지오름은 직선의 오름이다. 이 두서없고 거침없는 직선은 오름의 라인일 수 없다. 설악산의 거친 암봉이나 월출산의 기묘한 산세이 어울리는 라인이다. 그러나 바굼지오름은 엄연한 소(小)화산체, 제주 방언으로 오름이다. 그것도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오름이다. 지질학자는 바굼지오름을 약 140만 년 전에 형성된 해저화산이라고 소개한다.

바굼지오름의 특이한 모습은 140만 년 세월과 관련이 있다. 오랜 시간 바닷바람에 깎이고 패다 보니 지금처럼 험악한 꼴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럴 만도 하다. 바굼지오름이 내다보는 바다가 대정 모슬포 바다다. 모슬포를 제주에서는 ‘못살포’라 불렀다. 바람이 하도 심해 ‘사람이 못 살 데’라는 뜻이었다. 못살포 모진 바람을 이 화산이 140만 년이나 받아냈다. 누구라도 납작 엎드린 채 제 뼈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바굼지오름은 동서로 길게 누운 오름이다. 약 2㎞ 길이에 이른다. 정상의 해발고도가 158m라지만, 해발 50m 위에 오름이 놓여 있으니 비고는 100m가 조금 넘는다. 그러나 전혀 낮아 보이지 않는다. 양쪽 봉우리가 뾰족 솟아 있거니와 경사가 가팔라 오름을 둘러싼 허허벌판과 직각의 대비를 이룬다. 오름을 에운 들판에는 감자·브로콜리·마늘·무·배추 따위가 빽빽이 심어져 있다.

들판에 길게 누운 모양에서 바굼지오름의 기이한 이름도 나왔다. 북쪽에서 바굼지오름을 바라본 제주사람은 날개를 편 박쥐를 연상했다. 박쥐의 제주지방 고어(古語)가 ‘바구미’다. ‘바구미’가 ‘바구리’를 거쳐 지금의 ‘바굼지’가 됐다는 해석이다. 다른 풀이도 있다. 바굼지오름을 단산(簞山)이라고도 하는데 ‘단’ 자의 뜻이 ‘바구니’다. 옛날 산야가 물에 잠겼을 때 이 오름이 바구니 같이 보였다는 전설에서 비롯한 해설이다. 박쥐든 바구니든, 바굼지오름의 기괴한 생김새를 형용하는 기능은 같다.

추사의 오름

이런 식으로도 말할 수 있겠다. 제주 오름은 두 종류가 있다. 오르는 오름과 바라보는 오름. 이 분류법을 따르면 바굼지오름은 바라보는 오름이다. 물론 바굼지오름은 전망도 빼어나다. 동쪽으로 우람한 덩치의 산방산이 버티고 서 있고 남쪽으로 멀리 송악산이 내다보인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모슬포 앞바다로 해가 떨어지고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라산을 닮은 수월봉이 눈을 맞춘다. 하나 더 있다. 고개를 숙이면 가파른 벼랑 아래로 기하학적 문양의 대정·안덕 들판이 펼쳐진다. 오름 서쪽의 입구에서 정상까지 20분이면 족하니, 비록 험한 구간이 있다고 해도 오를 만하다. 오름은 올라야 오름이라고 믿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바굼지오름은 해질 녘 북쪽 벌판에 서서 바라봐야 한다. 길게 도열한 무와 배추, 유채와 감자 뒤에서 강고히 서 있는 돌산을 응시해야 한다. 길게 서 있는 모습이 벽처럼 먹먹하다. 저 벽 뒤에 전혀 다른 세상이 숨어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50년쯤 전에도 이 자리에 서서 저 벽을 바라본, 아니 저 벽 뒤의 세상을 동경한 사람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1786∼1856). 바굼지오름 뒤편 탱자나무 울타리 두른 초가에서 1840년부터 1848년까지 8년 3개월을 귀양살이했던 죄인의 이름이다.

단언하자면 바굼지오름은 추사의 오름이다. 바굼지오름 북쪽에 추사 유배지가 있고 남쪽에 대정향교가 있다. 추사는 유배시절 향교에 나가 후학을 가르쳤다. 추사가 남겼다는 ‘의문당(疑問堂)’ 현판이 추사 기념관인 ‘제주 추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향교 왼편에 ‘세미물’이라는 샘도 남아 있다. 추사가 이 샘물을 받아다 차를 끓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대정향교 대성전 뜰 한쪽 구석에 노송 한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세한도’의 그 소나무를 쏙 빼닮았다. 추사 유배지와 대정향교는 십 리(4㎞) 길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도 강진 유배시절 후학을 가르쳤다. 다산은 주막 사랑방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후학들과 함께 만덕산 자락 초당에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 수많은 저작을 집필했다. 추사도 유배지에서 제자를 길러냈다. 추사는 공자 위패를 모신 향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만, 추사는 다산과 달리 책을 쓰지 않았다. 대신 글씨를 썼다. 그 유명한 추사체는 추사의 제주 시절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유배지에서 추사의 삶은 남루했다.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자주 아팠다. 아내에게 ‘먹을 것 좀 보내달라’고 부탁(아니 투정)하는 편지를 쓸 때 추사는 척박한 땅에 내팽개쳐진 병약한 노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향교에서는 아니었다. 세상 끝에 떠밀린 죄인이 아니었다. 성리학의 성지에서 추사는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돌아왔다. 우리네 삶은, 추사가 그토록 바굼지오름을 넘었던 것처럼 벽을 넘는 일일지 모른다.

● 여행정보=바굼지오름의 행정구역은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다. 그러나 안덕면과 대정읍이 바굼지오름 정상에서 나뉜다. 오름 면적의 70% 이상은 안덕에 속하지만, 오름 북서쪽 기슭은 대정 땅이다. 오름 서쪽 ‘단산사’ 옆으로 탐방로가 나 있다. 정상까지 20분쯤 걸린다. 내려갈 때는 북쪽 탐방로를 이용한다. 맨 동쪽 봉우리는 험하고 가팔라 탐방로가 없다.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이 종종 절벽에 매달린다고 한다. 사계리는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이른바 ‘지질마을(지오파크)’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지질자원이 사계리 안에 있다. 모두 바굼지 오름과 지척이다. 지오파크는 제주의 지질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이를테면 카페 ‘지오아라’가 화산 분화구 모양의 ‘누룩빌레 주먹밥’을 판다. 커피와 함께 1만원이다.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다. 4인 기준 10만원. 064-794-2892. 지질관광이 가능한 민박집 ‘지오 하우스’도 있다. 대기업 임원 출신 김용래(68)씨와 초등학교 교사 출신 박인숙(64)씨 부부가 이태 전 제주도로 내려와 운영하고 있는 ‘글라라의 집’에서 묵었다. 평일 7만원. 064-900-8222.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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