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율이 내 몸에 들어온 듯.. 회한 짙은 삶에 흠뻑"

2016. 4. 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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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해어화' 주연 한효주

“‘왜 몰랐을까요 ··· 그렇게 좋은 걸 ···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라는 대사를 뇌까릴 때는 정말로 노파가 된 소율이가 마치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아 신기했어요. 찍고 나서 그 감정을 추스르기가 몹시 어려웠죠. ··· 영화의 클라이막스인데, 마침내 ‘지존 중의 지존’으로 인정 받는 소율이가 회한의 삶을 보상받는 순간이잖아요. ··· 전날 밤 고민도 많이 하면서 쉴 새 없이 연습했는데, 촬영하는 순간 내뱉은 대사가 가장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사진 = 결 고운 품성과 풍부한 감수성, 여유로운 유머까지 두루 갖춘 한효주가 박흥식 감독의 신작 ‘해어화’의 ‘소율’역으로 또다시 남심 싹쓸이에 나선다.
이재문 기자 >>

‘충무로의 차세대 여제’ 한효주는 지난해 두 편의 영화로 남성 팬들에게 골 깊은 ‘가슴앓이’를 안겨주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중장년층을 위한 헌사로, 복고열풍에 방점을 찍었던 ‘쎄시봉’에서 모두가 사랑하는 뮤즈이자 가슴 시린 첫사랑의 아이콘 ‘민자영’역으로, 이어 날마다 겉모습이 달라지는 남자의 연인 ‘홍이수’로 나온 ‘뷰티 인사이드’를 통해서다.

그가 이번에는 보다 어둡고 깊은 극적 요소를 갖춘 멜로 ‘해어화’의 예인 ‘정소율’이 되어 돌아왔다. 올봄 ‘잔인한 4월’이란 말은 그를 ‘여제’로 추종하는 남성 팬들이라면 예외 없이 적용될 법하다. 가슴앓이의 후유증에서 조금 벗어났다 싶었더니, 이제 좀 잊을 만하니, ‘여제’는 이번에도 작심한 듯 필살기인 ‘청순가련’을 앞세워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으로 또다시 남심을 휩쓸어 간다.

<<사진 = 영화 ‘해어화’의 한 장면.>>

“오랜만에 나온, 깊은 감정선을 끌어가는 영화라서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더욱 궁금해지네요.”

‘해어화’는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쯤이면 왈칵 눈물을 한아름 쏟아내고 싶은데, 가슴속 가득 차오르는 여운 때문에 울 수가 없는 영화다.

“그 여운을 기품 있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 두 여자 모두 재능을 갖췄는데, 한 여자가 스스로 자신을 버린다는 것, 독보적인 자기 재능이 그렇게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 본인도 모르게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깊은 회한까지 ··· 곱씹어보며 느낄 거리가 많아요.”

영화는 1943년 비운의 시대, 마지막 남은 경성 제일의 기생학교 ‘대성권번’이 배경이다. 빼어난 미모와 탁월한 창법으로 정가의 명인이자 최고 예인으로 꼽히는 소율(한효주)과 타고난 목소리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연희(천우희)는 ‘하늘 아래 하나뿐인 내 동무’ 사이지만 당대 최고 작곡가 윤우(유연석)와 그가 지은 곡 ‘조선의 마음’을 놓고 갈등한다.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모든 걸 줬는데 ···.”

연희를 향해 털어내는 대사와 함께, 도도히 흐르는 유행의 새물결 앞에서 속절없이 펑펑 목놓아 우는 장면의 연기는 실로 애처롭기 그지없다. 한효주는 극중에서 우리나라 전통 가곡인 정가(正歌)를, 천우희는 당시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직접 불러 연기뿐 아니라 가창 대결도 펼친다.

“노래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가를 실제 수련생처럼 연습했어요. 특히 ‘사랑, 거짓말이’는 제가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라서 애정이 많이 가요. ‘꿈에 와 뵈인다 말/그 더욱 거짓말이/나같이 잠 안오면/어느 꿈에 뵈리오’ ···. 참 슬프지 않나요?”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깊은 박흥식 감독은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주기로 유명하다.

“감독님께서 한 번 더 녹음하자고 요구했는데, 그게 더 구슬프고 처절하게 들려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를 권한 감독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할머니 분장은 생각보다 어렵단다.

“답답해요. 지울 때는 접착제로 붙인 재료들이 한 번에 안 떼어져서 무섭기도 하고 ···. 근데 노인 분장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고, 허리도 굽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해요. 몰입해서 그러는 걸까요? 동일화현상인가?”

머리가 하얀 노파가 될 만큼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노래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를 묻는 방송사 프로듀서에게 “내가 연희예요”라고 거짓으로 답하는 소율이가 가장 슬펐다고 한다. “결국 사랑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소율이에겐 노래가 더 우위에 있었던 셈이죠.”

그는 올해 서른이 됐다.

“20대보다 욕심이 없어지고 단순해진 것 같아서 편해요. 배우로는 정말 후회 없이 달려왔는데, 인간 한효주는 어떻게 살았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율이처럼 경험도 없었고 ···, 그런데도 마치 성숙한 어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나 ···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어리광도 부려볼 것을, 너무 이겨내려고만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요즘 장난 아니게 주변에 어리광 부리고 있어요. 하하하. ··· 지켜가야 할 가치를 잃고 싶지 않는데, 가끔 흔들리기도 하거든요. 자신을 직시할 줄 알고, ‘이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야’라며 자신을 자꾸 바르게 잡아주면서 가는 게 제일 중요할 테죠.”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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