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여인들의 욕망과 한을 포착하다

노철중 2016. 4. 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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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해어화> 가 그린 여인의 회한

[오마이뉴스노철중 기자]

 메인 포스터
ⓒ 더 램프(주)
'해어화'는 본래 말을 이해하는 꽃 이란 뜻으로 당 현종이 양귀비를 일컬은 데서 유래했다. 영화 <해어화>에서는 1940년대 기생학교인 권번 소속으로 가무와 풍류는 물론이고 시조나 서화에도 능통한 기생이자 예인을 가리킨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떠오르는 이미지는 배우 한효주가 슬프게 울고 있는 얼굴 표정의 클로즈업이다. 사랑과 질투 그리고 욕망에 사로잡힌 가련한 여인이 해어화의 또 다른 뜻이 아닐까.
사실 이 영화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즉 모든 게 주인공 소율(한효주 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도대체 왜 그녀는 그토록 슬픈 얼굴로 울고 있었을까?

조선의 마음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

소율은 경성 제일의 대성권번에서 나고 자라면서 최고의 예인이 되기를 꿈꾼다. 그녀의 어머니(장영남 분)는 권번장이자 선생으로 한 때 잘 나가던 기생이었다. 그런 어머니로부터 외모와 재능을 물려받은 소율. 비록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이지만 예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탁월한 노래 실력으로 전통 가곡인 '정가'의 명인으로 불리며 그녀의 꿈에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한편, 그녀는 권번의 둘도 없는 친구인 연희(천우희 분)와 함께 당대 최고의 가수 이난영(차지연 분)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소율과는 달리 연희는 어릴 적 아버지에 의해 권번에 들어왔고 정가보다는 가요에 관심이 있으며 이난영 같은 최고의 대중가수가 되기를 꿈꾼다.

소율과 연희는 그렇게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 둘도 없는 친구로 우정을 쌓아 간다. 그러던 중 유학에서 돌아온 소율의 애인이자 당대의 최고 작곡가 윤우(유연석 분)가 등장하면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둘 사이의 우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화 스틸 컷. 한효주
ⓒ 더 램프(주)
어느 날 소율은 조선총독부의 경무국장(박성웅 분)의 사택에 '놀음'을 가게 된다. 예인으로서 기량을 모두 보여주지만 결국 경무국장과의 잠자리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당당하게 그 앞에서 자신은 예인임을 밝히고 떳떳하게 거절하고 나온다. 자신을 그런 곳에 보낸 어머니에게는 "그게 기생의 숙명"이라는 매정한 말을 듣는다.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에게 웃음과 몸을 팔아야 했던 게 그 시대의 또 다른 아픔이다. 한편으로는 남자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은 기생으로서 최종 목표이고 권력을 가진 남자를 차지하게 된다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다. 권번에서도 남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기생들을 1패, 2패, 3패로 등급을 매겨 마치 상품인 것처럼 관리한다.

모든 것이 급변하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생들도 대중가요 가수가 될 수 있는 시대. 실제로 왕수복과 선우일선은 한국 대중가요사에 기생 출신 가수로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그것은 신분을 뛰어 넘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소율은 기생이 아닌 예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생이라는 신분이 가진 강력한 섹슈얼리티와 여성이 남자의 마음을 얻어 출세한다는 당시의 판타지는 변화로 향하는 아름다운 도전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미치도록 부르고 싶은 노래

윤우는 '조선의 마음'이라는 노래로 식민통치를 받는 국민들의 아픔과 고단함을 어루만져 주고자 한다. 일본인이나 특권층에게만 소비되는 노래가 아니라 많은 민중들이 들으면서 그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런 숭고한 의미를 가진 노래에 소율과 연희는 동시에 끌리게 된다. 

그들은 왜 그토록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어 했고 부르고 싶었을까? 지금은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꿈과 열망, 재능 등을 실현하기 위한 자아실현이며 그런 행위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하지만 1940년대엔 그 시대의 공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고단한 시대에 민중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일종의 매력적인 사명감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그런데 소율의 마음에서는 그것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예술가로서 숭고한 마음, 사랑과 우정 그리고 재능에 대한 자부심.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상실은 인간이 느끼는 아픔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이다. 그래서 흔히 자기 파괴적이며 때로는 분노로서 타인에게 분출하기도 한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될 때 보는 이들에게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 온다.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
 지난 4일 시사회가 끝나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우와 감독들이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좌측부터 유연석, 천우희, 한효주, 박흥식 감독.
ⓒ 노철중
한효주는 이전에 맡아 본 적이 없는 감정의 진폭이 매우 큰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청순하고 발랄한 모습에서 커다란 고통에 몸부림치는 연기까지 그의 연기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연희가 불렀던 조선의 마음을 들으면서 연희의 창법을 흉내 내서 따라 부르며 흐느끼는 장면은 애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천우희가 연기한 연희 캐릭터가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인물이라는 설정에 너무 함몰되었다 점이다. 물론 주인공 소율의 타락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설명은 극희 제한적이다. 따라서 천우희가 가진 연기 역량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는 그 시대의 경성 거리를 완벽한 세트로 잘 구현해 냈고 전통 한복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등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만큼 비중이 큰 음악은 또 다른 약점으로 남는다. 음악이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존재했던 정가 '일각이여삼추'와 실제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과 '봄 아가씨' 그리고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조선의 마음'과 '사랑, 거짓말' 등을 배우들이 직접 부른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긴 하다. 실존 곡을 부를 때 똑같이 부르지 않고 현재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편곡한 것도 영화적인 허용이라는 면에서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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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투데이코리아(www.todaykorea.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 작성 기사에 한해서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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