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회계사 관두고 '세월호특조위' 지원한 이 남자의 두려움

박다해 기자 2016. 4. 1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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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국 조사2과 정용욱 조사팀장 "확실한 매듭 못짓고 끝날까 두려워"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국 조사2과 정용욱 조사팀장 "확실한 매듭 못짓고 끝날까 두려워"]

정용욱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2과 조사팀장은 "인력과 시간 부족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사진=이동훈 기자

수학과 경제학 전공. PF(프로젝트파이낸싱)와 IB(투자은행), 기업 M&A(인수합병)를 담당해 온 미국공인회계사(AICPA).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진상규명국의 정용욱 조사팀장 (39)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특조위 다수가 법조계, 시민단체, 언론계 출신임을 고려하면 그렇다. 처음 특조위에 지원했을 때 "(이런 경력으로) 왜 왔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일본 회계법인에서 M&A를 담당했어요. 법적 분쟁도 생기는데 회계사는 재무분석만 하다 보니 어렵더라고요. 법을 배워야겠다 싶어서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땄죠"

그런데 특조위의 별정직공무원 모집공고가 뜨면서 인생의 경로가 바뀌었다.

"이유는 단순해요.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죠. 무엇보다 마음이 동했어요.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답답하고, 화도 나고."

회계사 경력을 살려 청해진해운의 불법·부실 대출 분야를 조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조사2국으로 배정되면서 '구조·구난과 정부대응의 적정성' 조사를 맡았다. 진상규명의 핵심이다. 1차 청문회 당시 기록총괄팀장을 맡았고, 해경 지휘부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특검 요청안 실무를 담당했다.

부족한 시간과 인력, 부처 협조가 아쉬웠다.

"새로 생긴 기관이다 보니 각종 수사 자료가 하나도 없었어요. 공문으로 자료를 요청해도 협조를 안 해주니 일일이 돌아다니며 자료를 받았죠. 광주지검에 가서 한 달 동안 (문서) 스캔만 하고 있는 거에요."

그렇게 확보한 자료도 '기초' 수준이다. 기초 조사를 토대로 추가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인력이 모자라 쪼개서 투입해야 했다. 정 팀장은 "당시 해경 상황실 근무자만 조사한다고 해도 1명이 근무자 11명을 조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체 조사신청 사건만 200건이 넘어가는데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서울 중구의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 한 켠에는 당시 진도 앞바다 일대의 지도가 붙어있다./사진=이동훈 기자

휴지조각이 돼버린 특검요청안도 안타깝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당시 여야는 유가족들이 요구한 수사권·기소권 대신 특검 수사를 2번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 특검을 요청할 경우 유가족이 반대하지 않는 인물을 임명하겠노란 약속도 했다. 지난 2월 해경 지휘부에 대한 특검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총선을 앞둔 여야는 묵묵부답이다.

"대법원도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인 123정장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안된다는 판결이 나왔어요. 특검이 안 되면 또 '꼬리자르기'로 끝납니다."

특조위는 예정대로라면 오는 6월 활동을 마무리한다. 이후 3개월 동안 조사보고서 작성 기간이 주어지지만 사실상 해산이다. 국회에서 특조위 기간 연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정부·여당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세월호 선체조사가 가장 중요한데 인양이 완료되는 7월 말에는 특조위가 없는 거죠. 예산배정도 6월까지예요.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곧 참사 2주기. 그는 "창피하다"고 했다. 참사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미안함이다.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등 대참사가 반복됐는데도 안 했던 일을 늦게나마 세월호 참사 이후 하고 있는 거죠. 특조위라도 생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자식이 희생된 부모님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어영부영 마무리되면 또 과거 수순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요. 단 한 명이 남더라도 유가족들이 궁금한 점이 다 밝혀질 때까지 특조위 같은 공식기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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