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축내며 주검 수습했더니.."정부는 우릴 버렸다"

2016. 4. 1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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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월호와 사람들 민간잠수사들 2년간 큰 고통

30년 경력 산업잠수사 황병주씨
바닷속에서 겪었던 트라우마와
골괴사·신장질환으로 건강 악화

학생 한명이라도 살린다 생각에
안전 우려에도 하루 4번씩 잠수
정부 이제와서 의상자 인정안해

“눈뜨면 어떻게 죽을지만 생각
배신감 깊지만 명예 찾고 싶어”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활동에 나섰던 민간잠수사 황병주씨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동부시립병원에서 자신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에 대한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황씨는 세월호 현장에서 잠수병의 일종인 골괴사 진단을 받았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침에 눈만 뜨면 어떻게 죽을지만 생각했어요.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집에서 죽을까, 산에서 죽을까.”

2014년 4월20일부터 7월10일까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주검을 수습했던 민간잠수사 황병주(57)씨에게 지난 겨울은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주검을 수습하면서 받았던 트라우마에, 당시 입은 부상 때문에 생계를 이을 수 없게 된 상황이 겹친 스트레스 탓이었다. 황씨는 위기의 순간, 정혜신 박사를 만나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울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굉장히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황씨는 지난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세월호가 내 삶을 이렇게 바꿀지는 몰랐어요.”

황씨는 전국의 수중 토목공사현장 등을 돌며 1년의 3분의 1 이상을 물 속에서 지내던 경력 30년의 산업잠수사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한 그는 장비부터 챙겼다. “내가 가진 기술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정부는 당시 잠수사들이 수백명씩 투입돼 수색구조를 한다고 발표한 상황이었지만, 황씨가 도착한 20일 현장에 투입된 잠수사들은 단 3명뿐이었다. 해양경찰 3009함에서 대기하고 있던 황씨는 당일 도착한 잠수사 3명과 함께 물에 들어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장비와 시설이 모두 갖춰졌을 때 물때도 맞았다. 자청해서 제일 먼저 잠수 수트를 입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황씨는 “이 밑에 300여명이 있다는 생각때문에 중압감이 상당했다. 얼른 들어가서 모셔와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했다.

앞서 잠수했던 이들이 전달해준 대로, 유리창을 깨고 배안으로 들어가 어두운 배 안에서 손으로 앞을 더듬었다. 주검들이 만져졌다. “순간 입에서 욕이 터져나왔어요. ‘야이 개새끼들아’ 라고 소리 지르면서 물속에서 한참을 울었어요. 누구한테 한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게 죽었으니까….” 현장에선 잠수사들 사이 “이빨도 보이지 말라”는 자체 규율이 있었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안전상 하루 1번만 해야하는 잠수를 물때에 맞춰 하루 4번씩 하는 날이 태반이었다.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민간잠수사들이 주검 1구당 500만원씩 받고 일한다”는 말을 해 속을 뒤집어 놨을때도 “저기 지금 당장 들어가면 주검이 있는데 기분 나쁘다고 그만둘 수가 없었”다. 참사가 일어난지 석달이 다 돼가던 그해 7월10일, 희생자 295명 가운데 272구의 주검을 수습했던 민간 잠수사 20여명에게 해양경찰이 모두 철수하라는 통보를 했다. 잠수사들의 피로누적과 잠수방식 변경이 이유였다. “끝까지 모두 수습하고 가겠다”고 유가족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화가 났지만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해경의 안내대로 입원한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골괴사’가 진행중이라는 것이었다. 골괴사는 뼛속 혈관에 혈액이 통하지 않아 뼈가 썩는 증상으로 잠수사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질병이다. 잠수업계에선 골괴사가 발견되는 마지막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처리해 치료를 받고, 휴업급여 등을 받는 것이 관례였지만 세월호 현장에서의 민간잠수사들은 별도 근로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어서 산재대상이 안됐다. 정부가 뒤늦게 내린 ‘수난구호종사명령’에 따라 치료비만 지급될 뿐, 보상은 장애를 입지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황씨는 세월호 현장에서 신장질환이 악화돼 더이상 잠수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해야하는데, 수중공사 현장은 외딴 곳일 수 밖에 없고 정기적으로 투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죄책감,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이 그의 마음의 상처를 더욱 깊게 했다.

황씨는 최근 정부를 상대로 의상자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그는 “다른 것은 다 떠나서 명예라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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