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합이 107년, 신구와 손숙의 '명불허전' 앙상블

김슬기 2016. 4. 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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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시한부 아버지 곁 지키는 가족 이야기
신구·손숙씨가 출연하는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가족이 모인 저녁상. 어머니 홍매(손숙)의 재촉에 며느리는 ‘남행열차’ 한 자락을 뽑고, 너나없이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인다. 혹여나 들킬까 아버지(신구)는 극심해지는 통증을 숨기며 몰래 진통제를 주워 삼킨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비추던 조명이 거뭇해지며 무대는 암전(暗轉). 삶의 한 조각은 이처럼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찰나와 같다. 신구의 절절한 연기에 객석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연기인생 54년의 신구와 53년의 손숙. 두 노배우의 만남이 통했다. 9일 개막한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가 객석의 큰 호응을 얻으며 순항중이다. ‘살 냄새 나는 작품이다’ 는 심사 평을 받으며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한 이 연극은 두 배우의 연기로 2013년 초연된 작품. 초연 전회 매진 기록을 세우고 이듬해 앙코르 공연도 객석 점유율 84%를 기록한데 힘입어 세번째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간암 말기의 아버지를 지켜보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묘사하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다. 무대에는 30여년 된 시골 기와집의 너른 마루가 놓여 있다. 볕 좋은 6월 말, 매실이 주렁주렁 달렸고 대추나무 꽃은 흐드러졌다.

신구·손숙씨가 출연하는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시골로 돌아온 부부. 서울대를 나와 해외 법인장으로 나가 있는 장남은 보이지않고, 아버지의 강원도와 서울을 오가며 산 둘째 동하만이 어머니와 함께 곁을 지킨다. 옛집을 둘러보는 동하의 독백이 이어진다. “파란 매실 하나 따보고 냄새 맡아보고 대추나무 꽃 하나 둘 셋 세어보고 녹슨 삼발이 닦아보고 수돗물은 잘 나오는지 여전히 차가운지 손 한번 담가보고.”

반 백 년을 같이 살았어도 생의 마지막 순간엔 늙은 부부는 “당신에게 할 말이 많은데…”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작가 김광탁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극이다. 간암 말기의 아버지가 고통으로 인한 간성혼수 상태에서 ‘굿을 해달라’던 말에 충격을 받아 그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위한 위로의 굿 한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탈고했다고 한다.

“봐라 홍매야, 저기를 봐라. 이 집 지은 햇수 만큼 나이를 먹은 홍매를 봐라. 넘들이 청매가 좋다고 몸에 좋다고 헛소리를 해도 내는 저 나무를 심었다. 이 집 주인인 니 이름을 마당에 심은기라 붉은 빛이 도는 꽃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은게.”

신구·손숙씨가 출연하는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마지막 순간에도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남은 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은 명장면이다. 아버지 신구와 어머니 역 손숙의 연기호흡은 명불허전. 2010년 ‘드라이빙 미스데이지’으로 처음 만나 ‘3월의 눈’ 등을 함께한 두 배우는 대사만이 아닌 눈빛과 몸짓까지 통하는 부부같은 호흡을 보여준다. 초연부터 함께 해온 연기파 배우 정승길과 서은경도 아들과 며느리 역으로 자리를 지킨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하지만 그래서 눈물샘을 더 자극하는 연극이다. 30년이 넘은 고단한 노동 끝에 두 자식과 마당 있는 집을 남기고, 가족의 울타리를 같았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쇠약해진 아버지를 등에 업은 아들의 눈물섞인 독백이 긴 잔상으로 남는다. “나는 좋네요. 언제 한번 아버지와 내가 살을 맞대고 홍매가 어떻고 달밤이 어떻고 고향이 어떤지 얘기해봤나. 나는 좋네요.”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02)577-1987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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