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기다림, 머리카락 한 올까지 그대로 돌아오렴"

2016. 4.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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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월호와 사람들
팽목항서 만난 미수습자 가족들

“내 자식 찾을때까진
매일매일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지만 미수습자 9명이 가족 곁으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머물러 있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숙소 울타리에 노란색 리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진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자꾸만 잊혀가는 게 두렵습니다.”

지난 8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숙소에서 만난 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단원고 2학년 1반)양의 어머니 이금희(46)씨와 허다윤(단원고 2학년 2반)양의 어머니 박은미(46)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2년 동안 이를 악물고 버텨왔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끼게 했다.

“주변에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이들이 더러 있어요. 하지만 우린 2014년 4월16일에 머물러 있지요. 이쁜 내 딸을 아직 못 찾았잖아요. 2주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724일째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을 뿐인데….”

“아이들한테 가장 가까운 이곳에 있으면 그나마 위안이 되죠. 어미니까 뼈 한 조각,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선체 인양이라는 한 줄기 희망이 없었다면 이미 쓰러졌을 거예요.”

이들은 특히 선체를 인양하는 과정에서 배 안의 주검들이 행여 유실될지도 모른다며 조바심을 나타냈다. 이들의 불안은 지난 2월말 목포신항에서 선체 주변 해저에 길이 200m, 너비 160m, 높이 3m 규모로 둘러칠 철제 그물망을 보고 난 뒤 더욱 깊어졌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2.4㎝ 격자로 만들어진 유실 방지용 그물망의 틈이 손가락 마디가 쑥 들어갈 정도로 넓었기 때문이다.

“사람한테는 크고 작은 뼈가 208개나 된대요. 인양할 때 배 안에서 주검이 흘러나온다면 이 그물망으로 과연 유실을 막을 수 있을까요?”

세월호에 올랐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는 단원고 학생 조은화·허다윤양과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씨,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등 9명이다.

“인양과정서 2.4㎝ 그물망 틈으로 주검 유실될까 걱정”

병마 시달리며 세월호 인양에 희망
“우리 아이들은 실종자가 아니라
정부가 아직 수습 못한 사람들”

비탄의 운명으로 묶인 이들은 카카오톡에 토론방을 따로 만들어 연락을 하고 있다. 다달이 안산이나 팽목에서 모임을 열어 안부를 묻고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들은 참사 이후 수차례 눈물의 고비를 함께 넘으며 서로한테 의지를 하고 위안을 받는 사이가 됐다.

“첫째날 아이들이 나온 부모들을 보며 안타까웠어요. 우리 아이들은 어딘가 살아 있을 거라 생각했죠. 사고 후 5일째가 되자 얼굴만이라도 멀쩡하기를 바랐어요. 10일이 지나서는 못 찾을까봐, 마지막이 될까봐 공포와 불안에 떨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피하고만 싶었던 절망이 한발 한발 가까이 다가왔다. “한 달 안에 거의 다 가족을 찾아서 올라갔어요. 떠나는 이들은 ‘미안하다’고 말했고, 남은 이들은 축하를 건네는 상황이 되었죠. 유가족이 되어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기다림은 끝이 없었다. 반년의 수색에도 아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정부는 급기야 수색을 중단했다. 깊고 진한 두려움이 이들을 휘감았다.

팽목항에서 버티던 가족들은 한때 뿔뿔이 흩어졌다. 대부분이 가족을 캄캄한 바닷속에 두고 왔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가족들은 정부가 수색을 중단한 지 석 달 만에 거리로 나섰다. 지난해 2월26일 청와대 앞에서 피케팅을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던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중순 서울 홍익대 앞에서도 피케팅에 들어갔다. ‘아직도 세월호 안에 사람이 있느냐’는 시민의 반응을 보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출발한 홍보활동은 한 해 넘게 오전엔 청와대 앞, 오후엔 홍대 앞을 오가며 진행되고 있다.

가족들은 또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현실을 알리는 데 정성을 쏟아왔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추모회와 간담회에 참여해 상황과 심경을 전하고 있다.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씨는 지난달 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2차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고, 오는 15일엔 서울 명동성당을 찾아가 강연할 예정이다. 다른 가족들도 강연 요청에 응하느라 일정이 빠듯하다.

더욱이 단원고 학생의 가족들은 아직 성장 단계를 지나지 않은 다른 자녀들을 돌봐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은화 오빠는 사고 발생부터 수색 종료까지 볼 거 못 볼 거 다 봤어요. 정부한테 어른한테 너무 많이 실망을 했죠. 이젠 아무도 믿지 못하고 사람을 기피해요. 다윤이 언니도 마찬가지예요.”

이씨와 박씨는 “이들한테 동생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새출발하자고 말할 수는 없어요. 부모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이니까요.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을 수습하고 평범한 엄마로 돌아가고 싶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발 국민들께서 아이들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누구의 아이가 됐든 세월호 속에 사람을 남겨둔 채로는 결코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없으니까요.”

가족들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선체 인양이 결정된 뒤 명칭을 ‘실종자’에서 ‘미수습자’로 바꾸기로 했다. 미수습자는 정부가 수색을 완벽하게 못해 아직 수습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실종자가 중립적인 개념인 반면 미수습자에는 정부의 책임과 의무가 담겼다고 여긴다.

가족들은 안산과 팽목을 오가며 선체의 온전한 인양을 기다리고 있다. 혁규군의 큰아버지 권오복(60)씨는 2년째 팽목을 지키고 있다. 버티는 이들의 고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건강이 차츰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날마다 당뇨·혈압·간장약을 한 움큼씩 먹으며 버티고 있다. 박씨는 신경섬유종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한쪽 청력을 잃었다. 대부분 심리적 외상 탓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혼자서 감내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참사 6개월 이후 이들에 대한 생계·의료 등 지원을 야박하게 끊었다. 트라우마를 치유할 방안도 세우지 않고, 배상과 보상마저 인양 뒤로 미뤄놓았다.

진도/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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