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체제 희망 없다고 판단..대한민국의 딸로 살고 싶다"

박만원,김성훈,노승환 2016. 4. 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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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13명중 11명 20대초반 여성..출신성분 좋은 중산층해외 北식당 절반이 상납금 못채워..추가탈출 이어질 듯北 내부선 생필품 사재기·석유값 급등 "청년층 불만 고조"

◆ 北 집단탈북 사태 ◆

중국 내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가 근무지를 이탈해 지난주 입국한 종업원 13명은 해외 생활을 통해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다가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통일부가 지난 8일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대북 제재가 심화되면서 북한 체제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서울로 탈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외에 나온 후 자유로운 모습을 동경하게 되면서 북한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생활을 모방했고 이탈을 결심했다"며 "(탈북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친절함에 다시 한번 놀랐고, 노력해 대한민국의 딸로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이들은 통일부와 관계 당국에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며 "이 상황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이번 기회가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탈을 결심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번에 탈북한 종업원 13명 중 11명은 22~25세 여성이며, 1명은 30대 여성, 나머지 1명은 30대 남성 지배인이었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13명 탈북, 北에 상당한 영향"

이날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 탈북은 북한에서 소위 출신 성분도 좋고,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집단 탈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며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불안과 불만 등이 사회 동요로 이어질 수 있는 움직임이 일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핵 실험에 쓸 돈으로 쌀 한 자루씩 공급해주면 절을 하겠다'거나 '배급도 안 주면서 위성은 무슨 위성이냐'는 주민 여론 관련 첩보가 있다"면서 "이번 사례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또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영향으로 일부 북한 해외식당은 폐업하고 있고, 해외식당의 절반 정도는 상납금 조달도 어려운 상황으로 파악된다"며 "일부 국가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의)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각국에 130개 정도 설치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해외식당은 연간 1000만달러 규모의 상납금을 본국에 송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 해외식당들은 대북 제재로 매출이 크게 줄자 무허가 건강식품 판매나 퇴폐영업 등 불법 행위를 하는 사례도 많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한 달여를 맞은 대북 제재 효과와 관련해서는 △해외 주재 북한 은행·상사 활동 △동남아에서 이뤄지는 인편을 통한 현금 수송(벌크캐시) △해외 북한식당 경영 등이 매우 위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금융권, 대북 거래 소극적

외교부 당국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회원국 내 북한 금융기관 활동을 90일 내 전면 금지하도록 한 유엔 대북결의 2270호 조항을 거론하며 "북한과 거래 관계가 있던 해외 금융회사들이 대북 금융거래에 소극적 자세를 보여 북한이 국제 금융거래에서 장애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북한 외교관들은 유엔 대북결의 발표 이후 스리랑카를 통해 현금 15만달러를 옮기다가 현지 공항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탈북민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 집단 탈북 사태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거나 앞으로 더욱 그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김정은 정권 자금줄의 첨병이자 돌격대였다"며 "이들까지 탈북했다는 것은 대북 제재가 북한 해외 조직의 '세포'에 닿아 실효성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2002년 탈북해 국내에서 북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은 대북 제재로 인한 북한식당의 경영난이 이번 탈북 사태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견해를 펼쳤다. 김 소장은 "(대북 제재로) 손님이 줄고 식당 운영이 잘 안 되면 북한 당국은 재정 검열(세무조사) 등의 방법으로 식당을 조이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상납과 횡령 등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北 실세 김원홍 국가보위부장"

매일경제 명예기자인 김영희 통일준비위원회 경제분과 전문위원은 "향후 대북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이번 사태와 유사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의 탈북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제재와 핵·미사일 도발 국면 속에서 북·중 국경을 강력하게 틀어막고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만큼 해외에 파견된 외화벌이 일꾼들의 불안과 불만이 가중돼 탈북이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통일부 관계자는 현재 북한에서 주민 통제와 감시를 주업무로 하는 김원홍 보위부장이 정권의 실세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현재 북한의 실세는 김원홍 보위부장"이라면서 "그는 보위부장이지만 인민보안부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정찰총국 업무도 일부 맡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 대북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 내부에서 제재 강화에 따른 어려움을 예상해 시장 상황이 불안해지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수집한 내부 사정을 전했다. 다만 이들 중에서는 아직 대북 제재가 본격적으로 이행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돼 구체적인 효과를 검증하기엔 이르다는 신중론을 펼치는 이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북·중 국경에서는 북한이 다음달 7차 당대회를 앞두고 경제 성과를 내기 위해 이른바 '70일 전투'를 다그치면서 이에 필요한 석유류 값이 급등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편 중국 베이징 내 한인타운이 있는 왕징의 대표적인 북한식당 '옥류관'은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탈북 소식이 전해진 10일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옥류관에는 한국인 단체관광객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가족 단위 중국인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 종업원은 집단 탈북 뉴스를 들었느냐는 질문에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더니, 요즘 한국 손님들이 줄어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일없습니다(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기자 /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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