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슬픈 성녀'처럼 다가온 버디
곧 성인이 되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버디의 신작 ‘Beautiful Lies’ 표지.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
가시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에 손발이 못 박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거대한 누군가를 매주 올려다본다는 게 나 같은 꼬맹이들에게 정서적 상흔을 1(하나)도 남기지 않았을 리 없을 거다. 본당 내벽을 둘러 그분의 고난과 부활 이야기를 새긴 십자가의 길 역시도….
집에 와서 본 성인(聖人)들의 전기나 영화도 이상한 기분을 선사했다. 성흔(聖痕)을 몸에 새긴 신비체험이나 밀떡이 신의 몸으로 바뀐 기적에 대한 묘사는 좀 괴상하고 야릇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버디(본명 재스민 반 덴 보가드)가 최근 낸 3집 ‘Beautiful Lies’의 표지를 보자마자 어릴 적 접한 성화(聖畵)들이 떠올랐다.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 구불구불 긴 머리, 몸을 가린 이국적인 의상, 그리고 그 배경이 된 어스름의 황야와 작은 웅덩이. 버디는 기적이나 고난을 전후한 성스러운 여인 같다.
데뷔 초기의 버디를 폄하했었다. 수록 곡 거의 전부를 남의 노래로 채운 그의 데뷔 앨범(2011년 ‘Birdy’)은 그저 노래 좀 하는 열다섯 살짜리의 어른 흉내로 보였으니까. 자작곡들로 채워진 신작은 신비롭고 이국적인 선율의 중독성이 강한 첫 곡 ‘Growing Pains’(성장통)와 둘째 곡 ‘Shadow’부터 고막에 못처럼 박혀 온다.
셋째 곡 ‘Keeping Your Head Up’의 뮤직비디오에서 버디는 죽은 자들처럼 얼굴을 허옇게 칠한 댄서들 앞에서 제사장같이 노래한다. 또 다른 수록 곡 ‘Wild Horses’의 비디오에서 그는 사이렌처럼 치명적인 매력의 인어로 분한다.
움푹 팬 큰 눈과 다갈색 머리, 약간 아래로 처진 짙은 눈썹 때문에 버디는 슬픈 성녀 같다. 어린 나이에 스타가 돼 겪은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노래에 담았다고 했다.
하얀 도화지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크면서 성자, 성녀의 길을 걷는다. 처음 만난 세상의 풍파에 긁히고 깨져 피를 흘린 뒤 자신만의 성흔을 옷자락 안에 감추고 성인이 된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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