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세 벌, 구두 두 켤레..검소했던 '미원의 아버지'

전지현,서진우,이새봄 2016. 4. 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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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홍 대상 창업주 별세..식품산업 발전에 큰 족적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 평소 자신을 위해 그 이상을 지닌 적이 없을 만큼 검소하기로 유명했던 '미원의 아버지'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회장이 지난 5일 밤 8시 57분께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1956년 한국 최초 조미료 '미원'을 출시해 국민 식탁을 풍성하게 만든 그는 '은둔의 경영자'였다. 회사를 운영할 때도 대외 활동을 극도로 꺼리며 주로 연구실에서 개발에 전념했던 그는 부고를 철저히 막고 조문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족들은 창업주의 뜻에 따라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고 대상 임직원에 한해 조문을 받기로 했다.

고인은 조용하게 떠나기를 원했지만 그가 한국 식생활과 식품산업 발전에 남긴 족적은 기념비적이다. 쌀의 수십 배 값에 밀수되던 일본 조미료를 국산화해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했다. 일제강점기 일본 조미료 감칠맛에 길들여져 있던 국민은 미원에 열광했다. '1가구 1미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1955년 조미료 제조공법을 직접 익히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1년간 연구 끝에 부산으로 돌아와 495㎡(150평) 규모 국내 첫 조미료 공장을 세우고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를 창업했다. 야심 차게 출시한 글루탐산나트륨(MSG) 조미료 '미원'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963년 삼성그룹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미풍'을 출시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미원 열풍을 꺾지 못했다. 당시 미원·미풍의 사은품 경쟁은 업계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미풍이 무채칼과 고무장갑 등으로 구성한 미풍 김장세트를 출시하면 미원이 고급 비치볼과 미원병을 경품으로 내놓았다.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은 식품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1962년 사명을 미원으로 변경한 고인은 발효법에 의한 글루탐산 생산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한국 바이오산업의 첫 장을 열었다. 그는 제조 설비 설계에까지 직접 참여하면서 페닐알라닌 등 아미노산 20여 종과 핵산 등의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1990년대 말에는 MSG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결국 근거 없는 사실로 판명됐다. 현재 미원은 10여 개국으로 나가는 수출 효자 상품이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딸 임경화 씨와 아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이 있다. 딸 임경화 씨 남편은 김종의 백광산업 회장이며 임 명예회장은 임세령·임상민 상무 등 두 딸을 뒀다.

[전지현 기자 / 서진우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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