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출산은 2천만원짜리 교육보험..犯法 아닌데 뭐가 문제냐"

이은아,홍장원,안정훈,홍성윤,정순우,배미정,백상경,연규욱,홍성용,박윤구 2016. 3. 3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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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쉽게 연결된 브로커 "해외유학이나 취업에 유리해..강남 부유층 상당수가 내 고객"괌·사이판으로 年2500명 원정..'0세 미국인' 안고 7주후 귀국 "자식에 정당하게 기회 주는 것"

◆ 우리 마음속 10敵 / ⑤ 실종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

"사회지도층이라 한들 원정출산이 뭐가 문제입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국내 유명 사립대 로스쿨 교수는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원정출산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기자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다. 그는 "범법행위도 아니고 자식에게 정당한 방법으로 기회를 주는 것인데 비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지도층들이 자식들에게는 미국 국적을 물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저명한 교수조차 이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도덕적인 문제뿐 아니라) 원정출산은 인력 국외 유출이라는 측면에서 국익에 해가 되는 행위"라며 "한국에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 원정출산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정출산을 도와주는 브로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원정출산을 검색하는 것만으로 여러 업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브로커들도 당당했다. 취재진이 접촉한 원정출산 브로커 4명 모두 "아는 사람은 다 한다"며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이 아니니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차규근 법무법인 공존 변호사는 "현행법상으로 원정출산은 불법이 아니다"면서도 "미국 국민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법적 허점을 이용한다는 차원에서는 분명 비난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 '태교여행' 가장한 원정출산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에서 임신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노약자, 환자, 임신부를 위한 탑승 수속 게이트인 패스트트랙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김호영 기자]
괌, 사이판, 하와이 등 휴양지에서 주로 원정출산이 이뤄지고 있었다. 임신부들이 '태교여행'을 가장해 쉽게 입국할 수 있고, 휴양지라 산후조리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브로커들은 현지에 대형 산후 조리원을 운영하며, 현지 병원과 연계해 원정출산을 유치하고 있었다. 사이판에 대규모 산후조리원을 설립하고 있다는 브로커 B씨는 "갈수록 수요가 늘어서 사이판 현지에 조리원 건물을 신규로 세우고 있다"며 "점점 수요자 눈높이도 높아져 서비스도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정출산에는 6~7주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분만 예정일 4주가 되기 전 외국으로 나가고, 분만 후 3주간 조리기간을 거쳐 '0세 미국인'이 된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식이다. 0세 외국인이 실제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관광 통과 목적으로 입국하는 0세 외국인은 대부분 '원정출산'으로 추정된다.

출산 시 드는 비용은 1500만~2000만원(괌 기준) 정도였다. 개인 전담 산후 조리사를 사용하거나 1인 1실 산후조리원을 사용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 판검사, 의사 그리고 공무원까지…

아는 사람만 한다는 게 원정출산이다. 미국에 거주하거나 유학했던 경험이 있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미국 국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브로커들에게 물어보니 원정출산 고객들은 주로 공무원, 교수, 판검사 등 사회지도층이었다. 브로커 C씨는 "대놓고 얘기를 못해서 그렇지 서울 강남 등에 거주하는 부유층 중 상당수가 원정출산을 한다"며 "우리 회사에서 10여 년간 2000명 넘게 원정출산을 보냈는데 대부분이 저명인사 자제들"이라고 말했다.

◆ 내 자식은 '헬조선'에서 탈출시키자

왜 원정출산을 하는 것일까. 브로커 D씨는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좋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아이가 미국 국적을 가지게 되면 그만큼 기회가 많아진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 학교에 입학할 때도 미국 국적자가 우선이고, 미국에서 취업할 때도 미국 국적이 있어야 잘된다"고 말했다. 원정출산 혜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적법상 원정출산자가 병역을 기피할 방법은 없다.

2005년 정부가 '유승준 파동'을 계기로 편법적인 병역 기피와 원정출산을 막기 위해 국적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병역 의무를 다해야만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고, 이중국적자는 만 22세가 되기 전까지 반드시 한 개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원정출산은 계속 늘고 있다. 비자 없이 '관광 통과' 목적으로 한국으로 입국하는 0세 외국인은 2005년 1654명에서 2014년에는 2454명까지 늘었다. 과거 원정출산이 병역 기피를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 원정출산은 교육을 위한 것이다. 미국 국적이 있다면 외국 유학이나 취업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2010년에는 일부 이중국적자에게 '대한민국 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만 22세 이후에도 이중국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적법이 개정됐다. 병역 의무 등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한다면 이중국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원정출산일 때는 만 22세 이후 한 나라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특별취재팀 = 이은아 부장(팀장) / 홍장원 기자 / 안정훈 기자 / 홍성윤 기자 / 정순우 기자 / 배미정 기자 / 백상경 기자 / 연규욱 기자 / 홍성용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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