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스치며 담배연기 "후~"..길거리는 흡연 중

남형도 기자 2016. 3. 2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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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흡연자들-①]금연구역 늘자 길거리 흡연↑..흡연구역·재떨이 없는 일방통행 정책, 흡연자-비흡연자 갈등 부추겨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갈 곳 없는 흡연자들-①]금연구역 늘자 길거리 흡연↑…흡연구역·재떨이 없는 일방통행 정책, 흡연자-비흡연자 갈등 부추겨]

15일 서울시내 거리에서 한 남성이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고 있다./사진=뉴스1

#. 임신 8개월째인 임산부 조모씨(30)는 최근 출근하던 길에 봉변을 당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좁은 길목에서 앞에서 가던 남자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것이다. 곧 담배연기가 얼굴을 확 덮쳤지만 조씨는 몸이 무거워 흡연자를 앞서 가지도 못하고 코를 막은 채 뒤돌아서야 했다. 조씨는 "뱃속 아기한테 안 좋을까봐 약도 안 먹으며 조심하는데 느닷없이 담배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확 상했다"며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뒷사람은 다 맡으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흡연한지 10년이 넘은 직장인 전모씨(34)는 금연구역이 확대된 이후 난감할 때가 많다. 실내는 물론, 실외 금연구역도 늘어나면서 담배를 피울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길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가 손사래를 치고 인상을 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다. 전씨는 "담뱃값도 올랐는데 마음 편히 담배를 피울 장소는 곳곳에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흡연이 범죄도 아닌데 매일 죄짓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금연구역을 늘리고 담뱃값을 올리는 정부의 흡연규제 강경책이 길거리나 아파트 간접흡연 피해 등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공연히 흡연할 곳이 사라진 흡연자들이 규제를 피해 담배를 피우고 있는 탓이다. 아무렇게나 버리는 담배꽁초도 골칫거리다. 금연구역 확대에 따른 흡연구역 등 보완책 없이 추진해 온 일방적 정책이 이 같은 피해를 부추기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서울 광화문역 출구에 금연 표시가 붙어있다. 서울시는 오는 5월부터 지하철역 출입구 10m 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한다./사진=뉴스1

◇올해 서울시내 지하철역·한강공원도 금연…흡연자들 설 곳 점차 사라져=지난해 1월 1일부터 실내 음식점·카페 등이 전면 금연구역으로 확대되고, 비흡연자들이 호응함에 따라 지자체들도 금연구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시의회 조례가 통과됨에 따라 올해 5월 1일부터 지하철역 1662곳 출입구 10m 이내를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키로 했다. 계도기간 4개월을 거친 뒤 흡연자를 적발해 과태료 10만원을 물릴 방침이다. 한강공원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올해 여의도와 이촌 한강공원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연차적으로 11개 한강공원을 금연구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경기도는 지난해 2월 경기도의회가 광역지자체 중 처음으로 아파트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 일부지역을 지정하는 조례안을 발의했다. 거주세대의 60% 이상 동의를 얻으면 공동주택의 계단과 복도, 승강기, 지하주차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토록 하는 내용이다. 공동주택 금연구역에서 흡연시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토록 했다.

부산시도 시의회 조례 발의로 공동주택 복도·계단·승강기 등을 주민 동의로 금연구역으로 지정토록 하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온천천 하천 전역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흡연시 과태료를 부과토록 했다.

◇금연구역 늘렸지만 간접흡연 여전…'길빵' 피해 이어져=금연구역이 늘고 단속도 강화됐지만 하루 아침에 담배를 끊을 수 없는 흡연자들이 규제를 피해 길거리와 아파트 등 곳곳에서 담배연기를 뿜는 탓에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 피해는 여전한 실정이다.

과거에는 간접흡연 피해를 당해도 대다수 침묵하던 비흡연자들도 요즘에는 비흡연의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도 잇따르고 있다.

소위 '길빵'이라 불리는 길거리 흡연이 간접흡연의 대표적 피해사례다. 앞에서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면 아이·임산부 가릴 것 없이 뒤따르는 사람들 모두에게 연기가 갈 뿐 아니라, 쉽게 피할 수도 없는 탓에 비흡연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주부 유모씨(35)는 "임신 초기부터 출산할 때까지 길거리를 다닐 때마다 흡연자이 뿜는 담배연기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결국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지금도 걱정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씨(35)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하다가 길빵을 당하면 앞에 가는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확 난다"고 말했다.

2014년 대구에서는 길거리 간접흡연으로 인한 폭행사건까지 발생했다. 김모씨(40)는 한 커피숍 앞에서 서모씨(41)가 뿜은 담배연기가 자신에게 온다며 얼굴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길거리 흡연 외에도 아파트 창문 밖에서 담배를 피워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담배연기가 올라가거나, 복도에서 담배를 피워 연기가 다른 집에 들어가는 등 간접흡연 피해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흡연자들 "담배피울 곳 마련해달라"하지만…흡연구역 설치 소극적=흡연자들이 길거리 흡연 등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일방통행식의 금연구역 확대 정책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금연구역을 늘리면 일정 부분 흡연구역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사례를 보면 서울시내에 있는 실외 금연구역은 자치구 지정 포함 2012년 3117곳에서 지난해 8월 말 기준 금연거리 29곳 포함 1만2141곳으로 약 4배 늘었다. 하지만 흡연자들이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합법적인 실외 흡연공간은 26곳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자치구가 돈을 들여 설치한 곳은 6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지하철역 출입구 금연구역 확대에 따라 흡연구역도 지정토록 조례가 발의됐지만, 설치시 냄새와 인근 상인들의 반발 등을 우려해 의견이 엇갈리면서 결국 임시회에서 보류됐다. 자치구들도 금연을 추진하는 정부 방침과 엇갈린단 이유 등으로 흡연구역 설치를 주저하는 분위기다.

흡연자들 뿐 아니라 간접흡연을 겪고 싶지 않은 비흡연자들도 흡연구역 별도 설치에 긍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 응답자 79.9%가 '길거리 흡연구역 조성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흡연구역 찬성 비율은 흡연자(77%)보다 비흡연자(80.6%)가 더 높았다.

금연규제를 강하게 하는 선진국들도 흡연구역 설치를 병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싱가포르는 건물 외부에 노란색 흡연구역을 지정하는 대신, 이를 어기고 흡연할 경우 엄격히 처벌한다. 홍콩과 미국, 호주, 일본 등도 흡연자를 위한 공간을 곳곳에 설치하는 분리형 금연정책을 펴고 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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