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개 부품 떼어내고 색칠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권승준 기자 2016. 3. 24.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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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모델 만들기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골방 '덕후(마니아를 뜻하는 은어)'들만의 취미 생활도 아니다. '어릴 적 꿈을 되찾고 싶은' 어른들의 놀이이자, 장인(匠人)이나 다름없는 솜씨로 빚은 작품을 만드는 활동이다. 바로 플라스틱 모형(프라모델) 로봇 만들기다.

◇"3만~4만원 정도로 즐기는 취미"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건물 5층. 25평 남짓한 공간에 성인 남자 10여 명이 모여 분주하게 뭔가 만들고 있다. 문에는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이란 팻말이 달려 있다. 프라모델 제품을 파는 매장이자 일종의 공방(工房)이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김대영(47)씨가 4년 전 처음 만든 곳이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들러 물건을 살 수 있고, 제대로 만드는 법까지 배울 수 있다. 이 작업실의 전체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이성동씨는 "40~50대 주부나 대기업 간부도 프라모델 만들기를 배우거나 정기적으로 제품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 많은 것은 '건담 프라모델(일본식으로 '건프라'라고 부른다)'이다. 일본의 대표적 로봇 애니메이션인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로봇들을 프라모델로 만들 수 있는 제품군(群)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건담 프라모델이 인기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제품의 질이 좋고, 만들기 편하면서 싸기 때문이다. 프라모델 제품은 크기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싼 것은 1만~2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고, 비싼 것은 20만원을 훌쩍 넘는 것도 있다. 이씨는 "보통 3만~4만원 정도만 투자하면 괜찮은 제품 하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1만원짜리 기본형 건담 프라모델을 하나 사서 그 자리에서 만들어봤다. 플라스틱으로 된 부품을 뜯어내는 니퍼(또는 커터칼) 외에는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다. 이 작업실의 모형 만들기 강사로 일하는 우준희씨는 "부품을 하나하나 떼어내서 손으로 조립만 해도 그럴듯한 완성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건프라' 제품의 질이 좋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고단한 현실 잊고 몰입하면서 찾는 행복

프라모델 만들기를 거의 해보지 않은 사람도 3시간 정도면 큰 무리 없이 기본형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작업실에 즐비하게 늘어선 장인 수준의 작품을 보니 욕심이 생겼다. 도료나 마감재 등 다양한 부가 도구들을 사용해 자신만의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 프라모델 만들기의 핵심이다. 이씨는 "큰돈 대신 본인의 노력을 들이면 들일수록 멋진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취미의 매력"이라고 했다.

조립은 간단하지만, 그 이상의 작업은 나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수십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부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색칠해줘야 하고, 음영을 표현하는 먹선을 넣을 때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부품 하나만 잘못 칠해도 실패다. 우씨는 "온갖 복잡한 작업을 실수 없이 해내기 위해 몰입하면서 완성한 작품을 보는 성취감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때 아이 때나 잠깐 즐기는 것으로 여겨졌던 프라모델 만들기는 이제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즐기는 레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프라모델 제조사인 반다이의 경우 한국 지사를 통해 매장을 운영 중인데, 2005년 딱 한 곳뿐이던 매장이 지금은 부산, 서울 등에 10개로 늘어났다. 온라인에는 회원 수만 수만 명에 달하는 프라모델 동호회가 여럿 있다.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동호회의 회원 수도 4000여 명에 달한다. 미국, 중국,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각자 창의성을 발휘한 작품을 출품해 경연을 벌이는 이른바 '건프라 월드컵'도 매년 열린다.

김대영씨는 "그저 키덜트나 퇴행적 취미가 아니라 어릴 적 잊고 살았던 꿈을 다시 꾸게 해주는 게 바로 프라모델 만들기 같다"며 "돈이나 다른 고민 없이 순수하게 원하는 것을 하고 즐기는 행복이 중요하단 것을 프라모델 만들기를 통해 깨달았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컬러링북이나 필사책의 유행처럼 프라모델 만들기도 고단한 현실을 잠깐 잊고 몰입하기에 좋기 때문에 이를 즐기는 성인들도 점차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취미수첩

■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

프라모델 매장 겸 공방. 기본적인 조립부터 고난도의 색칠 작업까지 가르쳐주는 강좌도 운영한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197-39. 매일 오전 11시~오후 8시. 문의 온라인 홈페이지(cafe.naver.com/gundamstudio)

■ 건담베이스

일본 프라모델 제조회사 반다이의 직영 매장. 전국에 10개 지점이 있다. 제품 구입뿐 아니라 경연대회 같은 이벤트도 주최한다.

매일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매장별 차이 있음). 문의 1544-4607

■ 하비팩토리

건담뿐 아니라 아이언맨, 스타워즈 등 다양한 대중문화에 기반한 프라모델, 피규어 등을 판매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1-12. 매일 정오~오후 9시. 문의 070-5057-2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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