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정해균, 선과 악의 경계선을 담다 [인터뷰]

한예지 기자 2016. 3. 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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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정해균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순박하고 촌스러운 시골 형사부터, 살 떨리는 살벌한 카리스마와 회한 가득한 눈빛 연기까지. 배우 정해균이 '시그널'에서 보여준 안치수 계장은 거친 듯 하면서도 섬세했다. 극 중 주인공 죽인 비리 경찰임에도 그에게 감정이입 돼 안타까움이 일었던 건 그의 압도적인 연기력 덕분이다. 실제 배우 정해균은 면죄부를 얻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사람 좋게 웃는, 선한 사람이었다.

최근 종영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극본 김은희·연출 김원석)은 정해균의 배우 인생에서도 꼽을만한 인생작이라 했다. "이런 작품을 이런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인생작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사실 연극 배우로 잔뼈가 굵지만, 방송이 적성에 안 맞나 자신감이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시그널'을 통해 얻은 시너지 효과가 어마어마했고 많은 걸 느끼게 한 작품이었단다.

정해균의 '시그널' 출연 계기는 캐스팅 디렉터에게 먼저 연락을 받고 안치수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 '시그널' 1회에서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사건을 멋대로 들쑤시며 사건을 크게 벌인 박해영(이제훈) 차수현(김혜수)에 파일을 집어 던지며 욕설을 내뱉는 신이었다. 며칠 뒤 김원석 감독에게 함께 하잔 연락이 왔다.

김원석PD는 앞서 정해균 캐스팅 이유에 대해 "신선한 인물이면서도 연기력과 커리어가 만개한 배우를 물색 중에 만난 적임자"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해균은 이를 들은 적 없다며 "회식 때 내가 듣기론 '죽는 연기 잘할 것 같아서 캐스팅 했다'고 하더라"며 "감독님이 참 개구쟁이다. 늘 장난칠 게 뭐 있나 생각하는 개구진 눈빛이다. 낯선 배우랑 함께 작업하는 걸 두려워할 수도 있는데 용감하게 즐기더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짓궂음 속에도 디테일을 잡아갈 땐 면도날같은 차가움이 있다고. "아이같은 구석이 많고, 창작자한테 제일 좋은 모델은 젊게 사는 것보다 아이처럼 사는 것 같다. 상상력도 달라지고 에너지도 달라지더라"고 평가했다.

그렇게 안치수를 만난 정해균은 여태껏 해본 적 없던 캐릭터라 조금 고심하기도 했다. 시니컬하고 못된 인상의 형사들 느낌을 캐치하려 했다. 안치수는 딸의 병원비 때문에 결국 권력의 힘에 순응하고, 동료 형사를 죽인 인물이다. 정해균은 안치수가 15년이란 세월, 동료를 죽이고 어떻게 살아왔을지 상상했고 그의 과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아픈 딸이 있고 유혹을 이기지 못해 순박하고 강직했던 사람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지, 폭 넓은 연기가 요구되는 인물이었다. 김은희 작가와 김원석PD가 원하는 것과 일치한 캐릭터 해석이었다.

"안치수는 정말 대본 그대로 연기했다. 거의 말을 바꾼 게 없다. 캐릭터 대사도 핵심이 있었고, 김원석 감독의 디렉션도 정확했다. 선이 잘 잡힌 캐릭터"라고 말한 그는 유별나고 특별한 연기를 하기보다 정말 꼭 나타내야 할 한 가지 감정에 집중하란 디렉팅을 받았다고 했다. 아무리 복잡하게 연기해도 표현해야 할 단순한 감정 하나에 몰입하는 연기다. 이를테면 극 중 안치수가 이재한(조진웅)을 죽인 과거가 드러나기 전, 경찰서 계단을 오르는 그가 복도 창문을 바라보며 과거의 자신을 투영하는 신이다. 이때 안치수의 불안한 듯하면서도 회한이 서린 눈빛 연기는 대사 하나 없이도 수많은 감정을 전달할만큼 가히 압도적인 연기였다.

사실 정해균은 해당 신을 찍으며 몇 번이나 감정이 과잉됐다. 이때 김원석PD는 복잡함보단 필요한 단 한가지 감정을 요구했고, 이에 "딱 눈물을 흘리기 직전까지의 아련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안치수는 머리회전이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김범주(장현성)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지만 결국 이용당했고, 이후 김범주에 불만을 터뜨리며 똑바로 노려보는 연기 또한 포석을 깔아둔 것이었다. 그는 "현성 씨에겐 제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어 고맙다. 안치수가 악당인 줄 알았는데 더한 놈이 있구나 싶으셨을 거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개인적으로야 워낙 좋은 동료지만, 극 중에선 얄밉더라. 참 얄밉게 연기한다. 저런 사람 눈 앞에 있으면 짜증나서 때려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익살이다.

안치수의 '시선강탈' 쫄티 패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저도 옷 보고 깜짝 놀랐다"고 박장대소한 그는 "과거 시골이기도 했고, 형사와 깡패 차이점이 얼굴만 봐선 구분 안 간다더라. 한 놈은 도망가고 한 놈은 잡으러 가면 앞이 도둑이고 뒤가 형사다. 그런 의미 아닐까"라고 짐작한다.

정해균은 안치수가 꽤 외로운 인물이었을거라고 했다. 동료를 죽인 사실을 감추고 살며 현재 위치까지 올랐지만, 늘 외톨이었다. 동료들조차 집안 사정을 모르고 시니컬하고 폭력적이다. 안치수가 죽었을 때 그들이 분노하는 감정 역시 존경심과 애석함보단 동료의식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적어도 인기남은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정해균은 "그래도 다른 이의 생명을 얻고자 누군가를 죽이는 건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직한 방법으로 살리는 게 맞는거다. 물론 이렇게까지 될 줄 모르고 발을 디뎠다가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던 건 이해하지만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고, 결과적으론 못 죽여서 다행이더라"고 했다. 이어 "그래야 저도 면죄부를 받고 죄책감이 덜하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며 "저도 내심 살아나길 바랐다. 결말을 보고 이재한이 살아났을 때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3월 12일 종영된 '시그널'은 이미 지난 2월 21일 촬영이 종료됐고 열린 결말까지 정해진 수순대로였다. 정해균은 "개인적으론 제 취향이다. 모두를 만족시킨 것 같다. '시그널' 시즌2를 기대하게 하고, 이재한이 살았단 건 모두의 소망이었다"고 귀띔했다. 그 역시도 '시그널' 후유증이 꽤 크다. 이는 감사한 후유증이라고 했다. "다들 즐겁게 자부심 갖고 찍었고 대본도 빨리 나왔지만, 여전히 촬영장은 밤샘 촬영도 많고 그런 괴로움들은 누구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끝나니 시원 섭섭하다. 드라마가 계속되는 느낌이다. 그동안 3차례 술 자리가 있었는데 마지막 종방연 땐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에 아릿하고 뭉클한 느낌이 있더라. 그래도 이는 행복한 후유증인 것 같다."

열살 아들도 '시그널' 팬이었다. 잔인한 장면은 아내가 가려주며 봤는데 아들이 아빠 얘긴 안 하고, 차수현 이재한 박해영 얘기만 몰입한데다 서로 안타까워 우는 장면 나오면 같이 울더란다. 감성이 풍부한지 영화 '사도'에서 정조가 춤추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도 울었단다. "얘는 뭐지?" 했다는 아빠 정해균의 반응이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아내는 대본연습할 때 대사를 읽어주는 등 온가족이 '시그널' 팬이었다고.

'시그널' 시즌2에 대한 바람 역시 같지만, 안치수는 아마도 함께할 수 없을 터. "형량이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싶다. 사건도 조작하고, 살인 의도도 있었고, 과거가 바뀌어서 무전기 공유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으니 나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안치수가 아닌 다른 악역으로 출연해볼 법도 한데 "시청자들에 혼란이 일거고, 감독님도 허락 안 할거다. 제가 여장을 하지 않는 한"이라며 껄껄 거리는 호탕한 그다.

다만, 안치수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변심하기 전 정제 같지 않았겠느냐고 상상해보는 그다. "과거 안치수 표정 보면 험한 일 뛰어들진 않았을 것 같고, 커피타고 있을 것 같지만, 이재한 만큼의 우직함은 없더라도 '알겠어, 알겠어' 하면서 함께 움직이고 이재한을 응원해주는 동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그 또한 변심한 정제 캐릭터에 재한이 좌절하는 모습에 공감했다고 했다. "김범주보다도 정제의 변심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세상이 싫어질 것 같더라"며.

무엇보다 '시그널'이 좋았던 건 정의 실현을 강요하지 않아서였단다. "정의 실현 옳은 거다. 이를 위해 나갑시다 하는 독단적 교조주의도 아니었고, 간절함 향해 묵묵히 갔다. 한 편으론 슈퍼맨이 없었다. 재한이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때려눕힐 수도 없고, 박해영이 독심술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며 "소재는 판타지적인데 실제 벌어지는 일은 너무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울림있게 다가오니 좋더라. 오히려 현실성 있으니 '어쩌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개인적 소견으론 작가님이나 감독님이 허황된 꿈을 주지 않아서 좋았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해볼만 하단 생각을 하게 하고, '저런 사람이 한 사람쯤은 더 있어도 좋지 않나'하는 생각이 바로 '시그널'이 바란 메시지 아닐까. 정해균은 "제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지 않고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다. 이왕이면 정의롭고 싶고 올바른 마음과 올바른 행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하고 착한 사람이 올바른 행동을 하면 덕을 받고 복을 받는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이 상식적 사회가 아니기에 이재한의 정의가 간절해지는 것은 씁쓸할 따름이다. 특히 '시그널'의 에피소드 중 그는 홍원동 살인사건의 범인 김진우(이상엽)에 공감했다. "누군가 관심을 가져줬다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어느 순간 어디에서 괴물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며 "만들어진 괴물은 사회적 책임이 아니느냐고 말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고, 이처럼 요소마다 이야기와 메시지들이 좋았다. 같이 작품을 하는 작업자가 아니라,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한 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좋더라"고 예찬했다.

실제 김은희 작가의 실물을 보고는 왠지 허술하고 소녀같은 이미지였는데, 어쩜 이런 이야기를 쓰는지 "알파고 아니느냐"고 감탄했단 그다. 특히 극 중 얼핏보면 상황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살아난 것이 희망이 아니라 또다시 악영향을 받을 수 있고 여러가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여지를 주는 것이 철학적이었다며 다시금 혀를 내두른다.

이처럼 작품에 대한 애정을 쏟아붓는 배우들과 제작진이 있었기에 '시그널'은 시청자들에게도 그 진심이 정해졌고, '인생작'이라 일컫는 수작이 탄생했다. '시그널'을 통해 정해균이란 배우의 진가를 알 수 있던 것도 희대의 발견이다. 그럼에도 정해균은 "아직 갈길이 멀고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다. 연기 잘하는 배우, 그리고 인격을 갖춘 배우라면 더 좋겠다"고 겸손이다. 영웅 역할은 제 몫이 아니라고 자신을 낮추며 "악역도 할 때마다 매력있고 개성도 달라서 배역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옆집 아저씨나 중학생 아들 딸 둔 아버지 같은 소시민 역할도 해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친근하고 사람 냄새 나는데다, 연기할 땐 무서울만큼 돌변하는 매력적인 배우 정해균에게 뭔들 안 어울릴까.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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