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이세돌을 복기하다

권혁재 2016. 3. 21. 00: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세돌 사범이 천신만고 끝에 1승을 거둔 날, 후배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뒷담화로 이세돌 사범을 써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패배 후 혼자서 온 신경을 집중하여 복기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대단해 보이네요”라고 연이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뒷담화 청탁(?)을 한 후배는 2013년에 이 사범을 인터뷰한 채윤경기자였다.
채 기자가 1승의 의미보다 세 번 연거퍼 질 때마다 복기하던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 이유는 뭘까?

당시 인터뷰에서 채 기자가 복기에 대해 묻고 이 사범이 답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묻고 답한 기억은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정확한 대답이 기억나지 않았다.
당시 기사를 찾아봤다.

그리고 채 기자에게 인터뷰 원문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 복기인 셈이었다.
▶관련 기사 괴짜 이세돌 "상금 10억 주면 구리와…"
“바둑 끝나면 이기든 지든 복기를 하잖아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나요? 진 것도 화나는 데 졌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졌는지 모르는 게 더 답답하죠. 어떻게 이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졌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답 노트 정리와 비슷한 개념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좀 다른 느낌이죠. 바둑이 스포츠가 됐지만, 저는 바둑이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도자기를 구울 때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다음에 좋은 것을 만들 듯, 바둑기사는 더 훌륭한 예술작품을 위해 복기를 하는 겁니다.”
“어떻게 졌는지 모르는 게 더 답답하다”는 그의 답이 아렸다.
이번 알파고와 대국의 복기는 더 답답했을 터이다.
대답을 들려주지 않은 상대, 그래도 그는 답을 구하고 또 구했다.
그렇게 이룬 1승, 그에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예술작품일 게다.인터뷰를 한 날은 2013년 2월 21일이었다.
한국기원에서 두어 시간, 그리고 식사를 하며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인터뷰를 하러 가며 채 기자가 여느 때와 달리 걱정을 많이 했었다.
바둑을 잘 모르기에 걱정, 그간 범상치 않았던 그의 행보를 사전취재 했기에 걱정했었다.

이런저런 걱정, 기우였다.
채 기자는 바둑을 잘 모르기에 시시콜콜 질문했다.
이 사범은 문외한을 가르치듯 상세하게 답했다.
그리고 민감한 질문에도 답을 피해가지 않았다.
범상치 않은 그의 답이 3년이 지난 오늘에도 메시지로 다가왔다.그 질문과 대답을 복기하며 현재의 이세돌 사범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약했다.

Q : 새로 바둑사이트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A : 미국, 유럽 등에 바둑을 보급하는 것에 관심 있다. 일단 홍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Q : 바둑 불모지에 보급을 나서는 건 위험한 일 아닌가?
A : 맞다. 사실상 불모지다. 바둑의 승부처럼 도전이고 개척이다. 경제적으로 벌지 못해도 적자만 아니면 다행이라 생각한다.바둑의 불모지를 개척하겠다고 했다.
주변에서 무모하다고도 했다.
그 스스로 적자만 아니면 다행이라 답했다.
그래도 그가 택한 건 도전과 개척이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주변의 우려 그대로였다.

Q : 뭐하고 노시나?
A : TV한번 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많이 본다. 30~50편 되는 시리즈를 한 번에 몰아서 본다. 하루에 12~13시간, 3~4일 정도면 50편을 본다. 뭐 하나 집중하면 '뽕을 뺀다'.노는 것도 남달랐다.
그의 집중력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이번 알파고와 대국에서 연거푸 졌을 때 주변 지인들이 말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안타까울 정도로 복기와 대국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Q : 구리와 10번기는 생각하고 있나?
A :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작은 액수에 두진 않을 거다. 만일 거기서 지면 굉장한 타격을 받지 않나. 졌을 때는 평생 구리보다 못한 놈이 된다. 바둑 인생을 거는 거다.그 해 말에 극적으로 대국이 성사되고 그 다음해 구리에게 6승 2패로 이겼다.
알파고와 3국에서 진 후 그가 말했다.
“인류가 진 게 아니고 이세돌이 진 거다”며 승복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평생 알파고에 진 이세돌’이 된 게다.
그런데 오히려 뭉클했다.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승복이었다.

Q : 돈 밝힌다는 얘기에 대해 인정하나?
A :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밝힌다. 실생활에서 돈을 너무 밝히면 문제다. 그러나 프로기사의 상금은 자존심이다.그는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었다.
상금이 큰 대회에만 전력을 다하고 상금이 적은 대회에는 설렁설렁 한다는 비판이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피해가지 않고 대놓고 답했다.난 프로다. 상금은 자존심이다”

Q : 초반 포석이 약하단 평가는 인정하나?
A : 근래 좀 심화된 것 같다. 프로기사들이 나의 바둑 연구를 많이 하고 특히 중국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다 보니 초반이 많이 차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초반을 엇비슷하게 짜는 건 어렵지 않다. 요즘 들어서 초반에 계속 두는 것만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럼 좀 재미가 없다. 두는 사람도 그렇고 보는 사람도 그렇다.알파고와 마지막 대국에서 그는 스스로 흑 번을 택했다.
알파고가 흑 번일 경우 약점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었다.
그런데도 흑을 택했다.
그리고 흑으로도 이겨보고 싶다고 했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가 택한 건 두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재미였다.

Q : 술, 담배 많이 하나?
A : 술 안 마시면 반 갑, 술 마시면 한 갑 반이다. 사실 담배는 끊고 있다. 담배를 피우려면 어딜 나가야만 피울 수 있다. 한 번에 3~5분 정도 걸린다 치고 10개라면 그것만으로도 30~50분이다. 어쨌든 하루에 최하 30분은 까먹는 거다. 그럼 더 이상 피울 수가 없는 거지.

Q : 대국 시 중간 중간 간절히 생각나기도 하나?
A : 거의 그런 경우 드문데, 너무 초조하거나 긴장되면 가끔 그렇다.
이번 알파고와 대국 시, 그가 담배를 피우러 오가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되었다.
온 사람의 시선이 그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볼 것은 바둑판뿐이었다.
기댈 곳은 자기 자신 뿐이었다.
피를 말리는 긴장감, 오죽했으랴.

Q : 응씨배 우승 못하지 않았나?
A : 매번 초반에 탈락한다. 4년마다 한 번씩 하니까 우승하기 힘들다. 아마도 다음 대회가 우승을 노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다음에 못하면 영원히 못할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상금은 프로의 자존심이라고 그가 말했다.
상금이 가장 큰 대회인 응씨배 우승을 해 본적 없는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4년 마다 열리는 그 대회, 올해 열린다.
그가 말했던 대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에겐 또 다른 도전일 터다.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바둑을 기대해 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단독] 김종인 "비례2번에 모독, 죽어도 못 참아"

"위자료 2배로 내라"···박원순, 강용석에 '역공'

김부겸·김문수 '박빙'···오세훈·정세균 '격차'

'어글리' 유커···뷔페 싹쓸이 영상 보니

"길거리 방송" 이라더니···여성 특정부위 부각해 생방송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