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銀 리스크 관리 나설 때 産銀, 부실 대기업 지원 늘려
경기 어려워졌다는 반증
#. 2014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경영위기가 현실화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시중은행들은 곧바로 한진중공업에 대한 여신 규모를 줄였다. 대출 채권 100% 회수는 아니지만 기존 대출 채권을 일부 회수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중중공업의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 안았다. 주채권은행이 대출 채권 회수에 나서면 한진중공업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경기 어려워졌다는 반증

지난해 산업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4.55%로 지난 2000년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부실채권 비율이 지난해보다 높지 않았다. 정책금융 역할을 담당하는 산은은 시중은행들이 발빼는 취약 업종 대기업을 지원하면서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산은-시중은행 부실채권 비율 격차 확대
20일 금융감독원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은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가 남아 있던 2000년까지 8%대였다. 외환위기 때는 10%를 훌쩍 넘기도 했다. 당시 시중은행과 산은의 부실채권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시중은행과 산은의 부실채권 비율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2012년까지 비슷하던 산은과 시중은행간 부실채권 비율이 지난 2013년 시중은행이 1.68%, 산은이 3.07%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시중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13%이고 산은은 4.55%를 기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로 대기업 여신을 줄이는 대신 취약업종 내 대기업 지원을 늘렸던 산은의 부실채권 비율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대기업 대출을 줄이는 반면 산은의 대기업 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의 대기업 대출 규모는 2012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정체됐다. 시중은행들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2012년 말 82조 6700억원에서 지난해 9월 82조 9290억원으로 3년 동안 2600억원 가량 늘어나는데 그쳤다. 최근에는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반면 산은의 대기업 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산은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2012년 말 기준 39조 1360억원에서 지난해 9월 56조 2120억원으로 17조원이나 늘었다. 산은 관계자는 "올해 역시 대기업 여신이 줄지 않을 것"이라며 "늘어나거나 소폭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산은, 부실 대기업 전담
산은은 국내 주요 부실 대기업의 주채권은행을 담당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꺼리자 대기업들이 산업은행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부터 국내 대기업 중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기업의 대부분은 산은이 주채권은행이다. 2014년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국내 대기업은 한진, 동국제강, 한라그룹, 현대그룹 등 총 14개 기업이었다. 이중 성동조선, SPP조선, 한라그룹을 제외하고 11개 기업이 산은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으면 주채권은행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채권 회수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채권은행 이외의 금융기관들은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시중은행들의 대기업 대출이 줄고 산은의 대출이 증가하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울 수록 산은의 대기업 대출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특히 올해 시중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주된 사업 목표로 내세우며 대기업 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