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3일 지난 우유? 여자는 인간이 아닌가

김혜미 2016. 3. 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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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메디칼 타임즈> 칼럼 논란.. 나이가 차별의 근거 되는 현실
여성은 외모를 가꾸도록 '키워진다'

[오마이뉴스 글:김혜미, 편집:김예지]

▲ 30대 '전문직'보다 20대 '전문대' 여자가 먹힌다? 의사 권아무개씨가 지난해 <메디컬타임즈>에 올린, "30대 '전문직'보다 20대 '전문대' 여자가 먹힌다"라는 칼럼.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 칼럼의 성차별적인 내용이 큰 논란이었다.
ⓒ 메디컬타임즈 갈무리
모든 문장과 내용이 논란인 칼럼이 있다. 지난해 <메디칼 타임즈>에 한 의사가 올린, "30대 '전문직'보다 20대 '전문대' 여자가 먹힌다"라는 글이다. 이 칼럼을 작성한 권아무개씨는 해당 칼럼이 누리꾼 사이에서 뒤늦게 논란이 되자, 14일 오후 <한겨레>와 통화에서 "해당 칼럼은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해왔던 경험상 여성의 나이가 허들(장애물)이 되는 현실을 알게 됐고, 이런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작성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권아무개씨가 말한 '여성의 나이가 허들'임을 나타내는 성차별적 표현은 많다. 논란이 된 칼럼에 쓰였던 '유통기간'뿐만 아니다.

여자 나이를 빗대거나 여자가 일정 나이를 넘기면 연애·결혼을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주식의 상장폐지에 빗댄 '상장폐지녀', 크리스마스인 25일 이후 케이크가 잘 팔리지 않듯 25살 이후의 여자는 연애하기 힘들다는 내용을 담은 '여자의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다'라는 말이 그렇다.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이성애적 시각에서 쓰인 이 말들은, 여자의 나이가 연애·외모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여자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예쁜 외모를 가질 확률이 높은, 즉 나이가 어린 사람이다. 여자가 될 수 있는 여성은 20대 초중반의 특정 연령대라는 뜻이다. 여자는 늙으면 모두 아줌마가 되지만 이 호칭을 들은 사람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일부는 욕으로 받아들인다. 아줌마는 '늙고 예쁘지 않아서' 여자가 아니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존재'하기 위해 외모를 가꾼다. 성형수술, 화장품 등의 소비자 대다수가 여성인 이유는 그들이 원래부터 외모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관심을 가지도록 '키워'지기 때문이다.

남자가 중심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살아남기 힘들다. 남성은 자신이 성취한 '능력'으로 존재를 인정받지만, 여성은 남성이 정해놓은 '외모(어린 나이)'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개 시간과 비례하는 능력, 시간과 반비례하는 외모는 동등한 자원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는 성별로 인한 취업 차별, 유리천장 등 때문에 능력으로 인정받기 힘들다.

극단적인 예시로, 결혼정보회사 업체에서 여성의 등급은 자신의 능력보다 외모 혹은 부모의 자원으로 정해진다. 여자를 여성으로 '인정'하는 범위조차 좁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들은 능력으로 평가 받을 기회조차 희소하다.

그렇기에 결혼정보업체를 운영해왔다던 권아무개씨가 칼럼에 쓴 "본인의 나이를 잊고 나이어린 여자에 매달리는 증상은 능력남 일수록 더욱 심하다"는 말, 즉 남자는 능력이고 여자는 외모라는 차별적 기준은 이렇게 '진실'이 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편견은 '진실'이 된다

▲ 아기를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을 줘야 한다? 저출산의 대책은 조선족 이민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출산이 여성의 선택권임을 인정하고, 출산을 선택했을 때 여성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 연합뉴스TV
여성에게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출산이다. 권아무개씨는 칼럼에서 "...여자들은 건강하면 나이 40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자와 그 부모님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이 생각하는 마지노선은 34세를 본다"고 썼다.

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이성애적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남자와 그 부모님들'이라는 말에서 여자는 남자의 집안에 편입되는 것이며, '마지노선'이라는 단어에서 여자는 남자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생각이며 여자의 선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부장제에서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 지하철에 있는 임산부 배려석 문구인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말에는 주인공을 가져 힘든 여자는 없고 주인공을 위한 자리만 있다. "아기를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을 줘야 하지 않나"라고 말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말에도 인간인 여성은 없다.

▲ 지난해 디자인을 교체한 지하철 임산부석  지난해(2015년) 디자인을 교체한 지하철 임산부석. 이 문구에 따르면 배려의 대상은 태아이지, 임산부가 아니다.
ⓒ 서울시
나라의 저출산이 심각하니 여성은 출산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기계일 뿐이다. 워킹대디는 없고 워킹맘이라는 단어만 있다는 것은, 여자는 원래 아이를 돌보고 가사일을 했던 존재라는 뜻이다. 워킹맘은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 당하고 그녀의 아이는 또 다른 '여자'가 돌본다.

여자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어떤 특정한 집단에서 공통된 현상이 관찰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 공동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특정한 압력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사회 문제'라고 부른다.

여자에게 나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는 현실은, 여성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라는 뜻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 성별, 성적취향, 종교 등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여자도 사람이다. 그렇기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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