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다닌 회사를 '고발'한 전 포스코 간부

정희상 전문기자 2016. 3. 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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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 중간 간부 출신인 한 40대 여성이 ‘철강 왕국’ 포스코를 흔들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포스코그룹 대외협력실 팀장을 지낸 정민우씨는 2월29일 '대통령님 포스코를 살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 섰다.

2월5일부터 시작된 그녀의 나 홀로 시위는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그간 청와대 앞과 포항제철소 앞에서 벌이던 1인 시위를 서울중앙지검 앞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 그녀는 '포스코에 너무 많은 비리가 있는데,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이를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낸 데 대한 항의 표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의 포스코 수사는 무려 11개월을 끌고도 정준양 전 회장은 물론 정동화 사장, 배성로 <영남일보> 대표 등 비리 혐의를 산 핵심 인물들에 대한 구속 수사에 실패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명박(MB) 정권 실세들이 개입해 포스코를 사금고화한 정황이 드러나자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지만,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포항 출신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연루된 개인 비리 차원으로 국한해 관련 정치인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시사IN 이명익 : 2월29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정민우 전 포스코 대외협력실 팀장.

'1993년 공채 3기로 포스코에 입사해 23년째 철강만을 사랑했다'라고 말하는 정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주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포스코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했다. 그만큼 회사와 관련된 민감한 정보를 많이 알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 그녀가 피켓을 들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포스코 수사가 마무리된 지난해 11월쯤 경찰 정보관을 사칭하는 한 브로커가 전화해 내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친하다는 정보 보고를 올리겠다는 식으로 협박해왔다. 내가 대관 업무를 맡으면서 포스코 경영진의 비리를 3인방에 알렸다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만나자고 하니까 회피하면서 욕설과 협박을 계속했다. 이를 녹음한 뒤 그 브로커의 배후에 황은연 포스코 경영인프라본부장(현 포스코 사장)이 있다고 보고 황 본부장을 만나서 항의했다. 그 뒤 협박이 끊겼지만 회사에서는 나에게 보직 이동과 강등 등의 인사 조처를 취했다.'

이런 정씨의 주장에 대해 황은연 사장 측은 '황 사장과 브로커는 관련이 없다'라고 밝혔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씨가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브로커는 후에 국정원 직원으로 확인되었다. 정 전 팀장은 대관 업무라는 본분을 벗어나 외부에 회사의 비위를 알리고, 직위를 뛰어넘어 권오준 회장을 면담한 뒤 용퇴를 요구하는 등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위는 포스코엠텍 직원들의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 후원 자료.

포스코는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지난 1월 말 포스코는 정 전 팀장에 대해 ‘회사 경영층에 대한 음해성 정보를 외부로 전달했다’는 등의 사유로 면직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정씨는 포스코 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며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일종의 ‘공익적 내부고발자’를 자처한 그녀에 대한 포스코의 대응은 신속했다. 2월15일 포스코는 그녀를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했다.

정 전 팀장은 '포스코를 살리려면 외부의 신망 있는 인사가 경영 수술의 총대를 메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포스코가) 결국 중국으로 넘어가는 ‘제2의 쌍용차’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포스코 측은 '회사가 지난해부터 부정 비리의 근원을 뿌리 뽑기 위해 청탁 배제를 강조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도 정 전 팀장은 근거 없는 음해로 현 경영진을 부정 비리 세력으로 몰아가고 여기에 외부 세력까지 편승해 현 경영진을 흔들어대는 사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팀장 출신 직원의 1인 시위로 포스코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 수사 종결 이후 포스코 안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2월 포스코 비리에 연루된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를 끝으로 11개월에 걸친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자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어수선함을 털고 ‘혁신 포스코’를 기치로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다. 아울러 권 회장 재임 1년여간 구조조정 목표 149건 중 68건을 추진해 4조6000억원대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달성했고, 철강 가격 하락 속에서도 수익성이 향상돼 포스코 단독 영업이익률이 2013년 7.3%에서 지난해에는 8.7%로 향상됐다고 홍보했다. 권오준 회장은 2월 들어 설 연휴도 반납한 채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돌며 현지 투자 유치에 안간힘을 썼다.

ⓒ철강협회 제공 : 2월23일 회원사 대표들이 참석한 철강협회 총회에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왼쪽 세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오준 체제’가 무너지는 포스코그룹을 되살려낼 수 있는 적임자인가 하는 회의론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다. 지난해 포스코는 창사(1968년)이래 47년 만에 최초로 적자(연결재무제표상)를 기록했다. 때맞춰 2월 초 양대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는 포스코에 대한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권 회장이 ‘혁신 포스코’를 기치로 내걸고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전임 정준양 회장 아래서 포스코 사장을 지낸 그 역시 포스코 몰락을 부른 정경 유착과 경영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적 시각 때문이다. 포스코 경영진의 부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22일 권오준 회장은 과거와 단절하겠다며 경영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당시 인사에서 정준양 전 회장 시절 무분별한 국내외 투자를 통해 포스코를 망친 주범으로 꼽히던 M&A 총괄 책임자 전 아무개 전무에게는 면직 대신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이를 두고 전 전무에게 '검찰에 불려가면 입 다물라'는 뜻이 전달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권오준 회장의 한 측근은 검찰 수사에서 '실무진에서는 전 전무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올렸지만 권 회장이 면직 기준을 세분화시키라고 지시했고, 이를 통해 전 전무는 정직으로 처리됐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양 전 회장 시절 포스코 사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권오준 회장이 포스코 비리 단절과 개혁보다 핵심 비리 세력을 비호하는 인사를 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시사IN 조남진 : 2015년 9월3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그뿐이 아니다. 포스코는 지난해 뇌물 공여와 배임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정준양 전 회장의 변호사 비용까지 댄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샀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회사 공식 제도로 경영진이 업무상 잘못으로 수사나 재판을 받을 때 기소 전까지는 회사에서 변호사 수임료를 대주기로 돼 있다. 유죄가 확정되면 반환해야 하는데 정준양 전 회장도 ‘유죄판결 시 반환한다’는 서류에 서명했다'라고 해명했다.

검찰 수사가 끝난 뒤 권오준 회장은 2월1일 신임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 황은연 경영인프라본부장이 포스코 사장으로 발탁되면서 임기 1년을 남긴 권오준 현 회장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다. 그런데 다음 날 권오준 회장과 김진일 총괄사장, 황은연 신임 사장이 대구에 내려가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정경 유착이 아니냐는 잡음이 불거졌다. 황은연 신임 사장은 이에 앞서 대구 서구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도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포스코 경영 수뇌부가 4월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진박 인사들’을 찾아 나선 행위를 두고 여전히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한 부적절한 행위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그날 포스코 경영진이 최경환 의원과 지역 단체장들을 함께 만난 것은 신년 초부터 포스코의 숙원 사업이던 석탄 산업과 관련해 ‘밥이나 한끼 하자’고 약속이 잡혀 있어서다. 황 사장이 윤두현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찾은 것도 윤 후보가 YTN 보도국장이던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라 개소식이 끝날 무렵 인사차 들른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민우 팀장의 고발성 폭로가 잇따라서인지 2월19일 열린 포스코 이사회에서 당연직으로 예상되던 황은연 신임 사장의 사내 등기이사 선임이 불발했다.

포스코에서는 정치권의 개입과 유착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꼬리를 문다. 포스코가 되살아나려면 무엇보다 정경 유착의 고리부터 끊는 게 급선무라는 게 전직 임원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정경 유착은 옛말이다. 권오준 회장은 지난해 경영쇄신안을 통해 거래·납품·인사 등과 관련한 내·외부 청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3대 100% 원칙(경쟁·공개·기록)’을 적용하고, 모든 청탁 내용을 기록함으로써 투명한 거래를 실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포스코엠텍 직원들의 ‘여당 의원’ 몰아주기 후원

하지만 권 회장 체제에서도 포스코가 계열사 등을 통해 유력 정치인과 유착한 정황이 확인된다. <시사IN>이 입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5년 2월2일자 정치후원금 회계자료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의 글로벌 소재 부문 계열사인 포스코엠텍 직원 371명이 2014년 12월29일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포항 남구·울릉) 후원금 계좌에 3740만원을 몰아주기 입금한 사실이 확인됐다(32쪽 사진 참조). 권오준 회장 체제에서 일어난 일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에서 몰아주기 후원을 지시한 바 없다. 그랬다면 금방 인터넷을 통해 까발려지는 시대 아닌가'라고 말했다. 포스코엠텍 측은 '당시 임직원이 박 의원 정치후원금 기부 행사에 동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직원 식당 게시판에 공고해 원하는 사람만 자발적으로 기부한 것이어서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법적인 문제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국세청은 포스코엠텍에 대해 10개월간 세무조사를 실시해 435억원을 추징했고, 포스코엠텍은 이에 불복해 2014년 8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한 상태였다. 포스코엠텍은 지난해 12월 435억원의 추징금을 전액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지난해 검찰 수사에 맞서 ‘선방’한 권오준 회장 체제는 남은 임기 동안 ‘혁신 포스코’를 내걸고 개혁 작업에 나서겠다고 천명했지만 한 전직 중간 간부의 ‘고발’이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곤욕을 치르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포스코 안팎에서는 '권오준 체제가 개혁 작업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정준양 전 회장 및 정치권과의 거리두기를 믿음직스럽게 보여주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라는 평이 나온다.

정민우 전 팀장은 '3월 중순부터는 현 경영진이 퇴진할 때까지 단식 투쟁에 돌입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포스코 경영권을 흔들어 이익을 보려는 외부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본다. 정 전 팀장이 주장하는 회사의 문제점은 이미 내부에서도 알고 있고 개혁 노력에 착수했다. ‘정민우 변수’가 포스코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외부 세력 등이 개입하는 사태로 연결돼 모처럼 마련된 포스코 경영 정상화 조처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정희상 전문기자 /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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