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크노 컬처 연대기](11) 원자시계와 컴퓨터 시간의 탄생

2016. 3. 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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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세슘 원자의 진동과 함께 포착할 수 없고, 수량화, 계량화할 수도 없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착취 장치가 되어버린 컴퓨터 시간이 인간의 시간 지향에 어떤 요구를 하고 있을까?

시간 단위계의 기틀로 세슘133 원자의 진동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은 1967년의 일이었다. 바로 그해에 미국과 소련 간에 핵비확산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합의가 이뤄졌고, 컴퓨터와 맞붙은 인류 최초의 게임 대결에서 인간이 패배했다. 이상의 세 사건은 핵과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현대사회를 장차 어떻게 결정지을지 예시(豫示)한다.

NPT는 1967년 1월 이전에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5개국만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하는 체제다. 이들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비핵무기국가로 규정된다. 새로운 표준시간의 단위가 확정된 원년은 NPT 체제라는 세계 질서의 기제가 형성된 해였다. “당신의 캘린더를 선택하는 것은 곧 당신의 정치체제를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은 무섭도록 정확하게 현실을 반영한다.

세슘133 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할 때마다 1초가 된다는 시간 주기는 컴퓨터와 전자 네트워크가 전 지구로 확장하고 상호 접속하는 과정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중요성은 기억장치나 연산장치의 기술적 발달에 우선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령 데이터를 주고받는 교환장치들이 서로 다른 표준시간으로 작동된다면 통신은 불가능하다. 100만분의 1초에서 어긋나는 미세한 시간차만으로도 데이터는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전화통화를 하다가 잡음이 섞인다거나 팩시밀리에서 글자가 뭉그러져 나오는 것도 ‘부정확한 시간’이 문제의 한 원인이다.

스위스의 시계메이커 라도사가 2년간에 걸쳐 제작하고 뉴샤델천문대에서 한국표준시로 조정한 뒤 서울지하철 2호선에 기증한 세슘 원자시계. /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외되는 인간의 경험적 시간들

오늘날 정보환경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고 정량화될 수 있는 시간으로 엮인 연쇄체계이면서, 지리학자 나이젤 스리프트가 창안한 용어를 빌리자면 ‘컴퓨터 시간(computational time)’의 거대한 보급장치가 되었다.

이에 비해 인간의 경험적 시간은 소외되고 있다. 그 극명한 장면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었다. 이들의 대국은 컴퓨터적 대상과 절차의 시간이 인간의 경험 시간과 대립하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알파고가 1분 1초도 쉬지 않고 하루에 처리하는 바둑 게임 연산은 인간의 35.7년에 해당하는 약 3만 판에 달한다. 4주면 무려 100만 번의 대국을 치를 수 있다. 이런 컴퓨터들이 총력으로 가동되고 있는 정보환경의 흐름을 인간의 경험적 시간은 도무지 쫓을 방법이 없다. 바둑 명인이 일평생을 대국에 쏟아부어도 못 찾아낼 신수(新手)를 10의 170제곱에 달하는 경우의 수에서 찾아내는 것이 컴퓨터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승부에서 곱씹어봐야 할 점은 알파고에게 인간이 지고 말았다는 승부의 결과가 아니다. 이 게임이 벌어진 대한한국에서 컴퓨터 시간이 지난날 어떻게 성립되고 확장되었는가를 되짚어봐야 한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더는 체험할 수 없게 된 ‘시간(들)’에 대한 탐색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에서 세슘 원자시계에 의한 표준시보 제도가 운용된 것은 1980년 8월 15일의 일이었다. 해방 후 처음으로 독자적인 표준시보 제도가 시작되었지만, 공교롭게도 그해는 세대교체된 파시즘 시대가 개막된 때이기도 했다. 1980년에만 22억원의 예산이 표준시보 제도에 투여됐다. 2년 뒤인 1982년 1월에 전두환 정권은 야간 통행금지 제도까지 폐지했다. 대한민국의 시간체제를 36년 4개월이나 제약했던 굴레가 해체된 것이다. 표준시보 제도와 통금 폐지는 대한민국 기계와 국민 모두에게 변화의 기점이 되었다.

1980년 8월 15일 이전에는 표준시보를 일본에서 따와야 했다. 방송국마다 수정발진 시계가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이걸로는 하루에 0.1초씩 오차가 생겼다. 천문 관측시와 비교해도 하루에 0.09초가량 차이가 있었다. 방송국에서 쓰는 수정 시계는 육각형 기둥 결정체를 일정한 각도로 얇게 잘라 수정판자(수정발진기)를 만든 뒤, 여기에 힘을 가해 작동시키는 일종의 전자시계였다. 1억분의 1초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정밀한 장치로 제작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스펙이었다.

방송국 시보는 원자시계로 시보를 발사하는 일본전파연구소 표준전파국(JJY)의 전파를 받아 시간을 교정해야 했다. 이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JJY의 시보 전파는 전리층에 반사돼서 대한민국에 수신되는데, 이때 전파가 지상에 도달하기까지 1000분의 4초가량 지연시간이 생긴다. 수신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오차가 더 컸다.

그래서 방송국 시보에 1~1.5초가량 오차가 생기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 더러는 방송국별로 30초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다. 항공관제나 항해처럼 고도의 정확도가 있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국내 방송국 시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978년 4월 20일 승무원과 승객 110명을 태우고 파리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KAL 707기가 앵커리지로 향하다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했던 것도 시보(時報) 시스템이 원인이었다. 대한민국의 부정확한 표준시 관리 때문에 로란스(LORANS·무선원거리 항행원조시설) 등의 항공관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1초를 가장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시계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KRISS-1다.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변화의 기점이 된 표준시보 제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의 목표와 방침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표준시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다. 이 기간에 기계·전자·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구조 고도화를 달성하고자 했는데, 이 분야 제품의 품질은 표준시보를 비롯해 범국가적인 표준기술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다. 1980년이 되어서야 표준시보가 실시되었다는 것은 산업 발전 속도에 비해 뒤늦은 대응이었다.

예를 들어 시간이 정확하지 않으면 주파수가 어긋나 전자제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교류전기는 주파수 60헤르츠(㎐), 다시 말해 1초에 60번을 발진하게 되어 있다. 1초 단위가 부정확하면 60헤르츠의 주파수를 지킬 수 없게 된다. 시간 표준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주파수 교정이 어렵고, 주파수 난립에 대한 규제도 쉽지 않다. 정밀가공작업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주파수가 바뀌면 전기모터의 회전속도가 바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작업 결과물에 큰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전기 주파수는 전력 공급량 부족과 발진장치의 부정확성 문제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졌다.

철도·선박·트럭·버스·항공기의 표준화된 국제적 교통망, 제시간에 운항하는 선박에 의존하는 지구적인 공급망, 수많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네트워크도 정확하고 정밀하게 산출된 표준시간이 없으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컴퓨터 시간도 대한민국에서 사회 전 영역으로 퍼질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시간이 자본이자 자원으로 관리되는 동안, 인간적 존엄과 더욱 철저한 민주주의를 위해 ‘시간’을 고민하는 사회적 노력은 부족했다. 그런 질문을 왜 해야 하는지 깨닫는 일은 표준시보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일보다 더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도 ‘시간 정확히 맞추기’ 사업은 범국가적인 과제로 꾸준히 추진됐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표준주파수’는 여러 통신망을 통해 24시간 중계되고 있다. 사회 곳곳을 관통하며 기준이 되는 박자와 리듬을 불어넣는 기반시설인 셈이다.

공장, 기업, 관청처럼 거대하고 정치한 시스템이 파탄 없이 온전히 기능하려면 공통의 계량화된 시간을 따라 각종 자원과 사람들의 행위가 배치되고 질서가 잡혀야 한다. 출근, 업무 개시, 휴식, 마감 기한이나 계획 및 종료에 관한 모든 절차뿐 아니라 증권시장에서 도시교통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의 메커니즘은 계량화되어 일차원적으로 변한 시간의 지배를 받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간은 미디어와 컴퓨터적 시간으로 분할되고 있다. 이런 시간화 작업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공간에 봉합시킨다. 자본 흐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추적 감시하는 GPS와 라디오 주파수 식별체계(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그리고 유비쿼터스 컴퓨터 같은 기술은 시간과 공간 봉합의 구체적 사례다.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세계의 사건이 일어나는 모든 장소가 된다. 이제 표준화된 컴퓨터 시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곳은 어디에도 없다. 컴퓨터 시간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그 경제에 휘말려 있는 우리가 모두 그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Y2K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밀레니엄의 길목에서 대단위 컴퓨터 체계의 작동 중단 사태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벌어질 수 있음을 대중적으로 각성한 사건이었다. 서기 0년과 2000년을 컴퓨터 운영체계가 혼동하게 되면 기본적인 작동조차 불가능해질 거라는 예상이었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으나 Y2K를 통해 진단된 우리 시대의 한계는 명확하다. 세상 전부가 컴퓨터 시간에 속박되어 있고, 이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파국에 처한다. Y2K 문제를 겪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자율성을 컴퓨터 체계에 이전시켰는지 명백해졌다.

이세돌 대 알파고의 바둑 대국은 컴퓨터 시간과 인간의 경험 시간이 대립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 한국기원 제공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컴퓨터 체계

우리는 컴퓨터 체계를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컴퓨터 체계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다. 컴퓨터가 없다면 더는 사회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다. Y2K는 십수 년 전에 안전하게 극복했을지 몰라도, 새로운 수준으로 정교화된 기술에 대한 통제력은 그 실상과 문제점을 온전히 각성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다.

지금의 정보환경이 무엇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진단하려면, 컴퓨터 시간이 오늘날 세계 속 경험의 기술적 무의식, 즉 물질적 기반을 이룬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다. 인간적인 인지·이해 방식과 인간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인간은 허겁지겁 이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인간에겐 앞으로도 오랜 시간 다양한 노동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삶의 다양성이 앞으로도 지켜져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노동을 컴퓨터로 자동화했을 때는 완전히 성질이 달라질 시간이다. 인간에겐 세슘 원자의 진동과 함께 포착할 수 없고, 수량화·계량화할 수도 없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착취장치가 되어버린 컴퓨터 시간이 인간의 시간 지향에 어떤 요구를 하고 있을까? 우리가 높이고 줄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숫자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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