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보릿고개 대표 구황작물.. 지금은 웰빙 식품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2016. 3. 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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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시래기

김장철이면 버려지는 배추잎과 무청을 새끼로 엮어 말려 시래기를 만들었다. 겨우내 마른 시래기는 김치가 떨어질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식탁에 올랐다.

바싹 마른 시래기는 수분을 잘 받아들인다. 그래서 주로 된장국에 넣어 먹었다. 시래기는 조선 후기 문신·학자인 이가환(李嘉煥)이 사물의 이름을 한자와 우리말로 함께 적은 '물보(物譜·1802년)'에 '시락이(棲菹)'로 처음 등장한다. 어근인 '실'은 시들다는 뜻이다. 1897년 미국 선교사 제임스 스콧 게일이 편찬한 '한영자전(韓英字典)'에는 시래기를 '고채(沽菜)', 즉 마른 나물로 풀어쓰고 '국물(soup)에 사용된다'고 적었다.

시래기는 오랫동안 구황작물이었고, 1960년대까지 시래기죽은 보릿고개를 넘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동아줄 같은 음식이었다. 시래기가 구황작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1924년 발간된 조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시래기를 나물로 먹는 방법이 나온다. 시래기나물을 순무 줄기나물이란 뜻의 청경채(菁莖菜)로 표기하고, 무청의 속 부분인 속청만을 엮어 음지에 말린 시래기를 콩나물과 함께 넣고 고기를 썰어 양념과 겨자를 쳐서 먹는 어엿한 음식으로 다룬다. 시래기는 전주의 탁배기국에 넣어 먹기도 했고 소주 안주로도 활용됐다.

시인 백석은 시래기에 관한 시(詩)를 여럿 남겼다. 그는 1939년 11월 8일 자 조선일보에 발표한 '구장로(球場路)'란 시에서 '주류판매업(酒類販賣業)이라고 써 붙인 그 뜨스한 구들에서 따끈한 삼십오도 소주나 한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깃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 구수한 술국을 뜨끈히 몇 사발이고 왕사발로 몇 사발이고 먹자'라고 읊고 있다.

짚으로 엮은 시래기는 집집마다 처마에 달렸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우리 식탁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섬유소와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이라는 연구 결과에 힘입어 웰빙 식품으로 그 인기가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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