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이 만난 사람] 뇌과학자 김대식, 인공지능 혁명을 말하다

장경덕 2016. 3. 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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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파고 정체 몰랐다면 창의적인 사람인줄 알았을 것
김대식 교수
이건 드라마다. 인류의 창의성을 빛나게 하는 바둑 천재, 그리고 인간의 또 다른 천재성을 발현하는 인공지능(AI)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는 비극일까. 그리스 고전 비극에서 영웅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말을 낳을지 알지 못한다. 자신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흔히 자만심 때문에 추락한다.

이세돌과 알파고(또는 알파고를 낳은 데미스 허사비스)는 그런 주인공일까. 아니면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될 진정한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일까.

뇌과학자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 드라마를 지켜봤다. 세기의 대국이 벌어지기 2주일 전과 알파고 실력이 드러난 후 두 차례 그를 인터뷰했다.

―알파고의 실력은.

▷섬뜩한 결론에 이르렀다. 알파고의 진정한 실력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통쾌하게 이기기를 원한다. 하지만 기계는 통쾌함을 모른다. 우사인 볼트가 초등학생과 달릴 때와 세계 챔피언과 겨룰 때 뛰는 속도가 다르다. 딱 이길 만큼만 이긴다. 중국의 바둑 황제가 이기겠다고 나서지만 알파고는 그보다 잘한다. 소름끼친다. 알파고 개발자 데이비드 실버를 만나봤다. 그들도 알파고 실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알았다면 대국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시스템의 한계를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의 직관력과 창의성을 뛰어넘었나.

▷직관이라는 것도 결국 경험으로 얻은 지식이다. 다만 기호로 표시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이다. 이걸 표현하는 순간 기계가 그 데이터를 갖고 학습할 수 있다. 바둑의 창의적인 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알파고의 정체를 몰랐다면 그가 매우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구글은 이번에 뭘 얻어갔나.

▷이세돌이 크게 이겼다면 그는 인류의 창의성을 껌값에 판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더 많이 졌기 때문에 이번 대국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2016년 3월 9일은 기계가 인간의 고유 영역인 지적 노동의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8일 이세돌을 만났다. 혼자 인공지능과 맞서야 하는 그가 애틋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글은 전략적으로 뭘 노리나.

▷딥마인드는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의료 분야 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제대로 학습만 시키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10년 후에는 알파변호사, 알파교수가 나올 것이다. 구글이 뭘 할 거냐가 아니라 뭘 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 게 빠르다. 아직 범용인공지능(AGI)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딥러닝이 더 발전해 마스터 알고리즘이 나오면 차원이 달라진다. 세계의 모든 데이터를 얻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과학을 하고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기에 이를 것이다.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것도 많을 텐데.

▷인공지능의 역사를 보자. 처음 50년 동안 사람들이 시도한 건 기호로 표현할 수 있는 정보를 기계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량화된 데이터는 전체 정보의 10%도 안 된다. 인간의 전문성이 필요한 건 대부분 표현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김연아 씨 피겨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또는 '워런 버핏 씨 투자의 귀재가 되는 비법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계는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이를 데이터화해 학습한다.

―인공지능 과학자가 나올 수 있나.

▷뇌의 정보처리 방식을 본뜬 인공지능의 추상 단계는 10~20개가 된다. 인간의 뇌가 그 정도 된다. 앞으로 컴퓨터는 추상 단계를 100만층으로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추상화가 가능하다. 이 테이블에 개미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내가 개미를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렸다. 개미는 발밑이 부드러운 카펫으로 바뀐 걸 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 아무리 똑똑한 개미라도 더 큰 진실은 알지 못한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우주의 비밀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설명해줘도 우리가 이해를 못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모는 차가 현실이 됐다.

▷완성차업체들은 운이 나쁘다. 100년 만에 사업의 본질을 뒤바꿀 변화 두 가지가 한꺼번에 닥쳤다. 가솔린차가 전기차로, 유인차가 무인차로 바뀌는 것이다. 무인차가 되는 순간 자동차는 소유하는 것에서 이용하는 것으로 바뀐다. 부품업체는 미래가 좋다. 무인차시대에는 거리에 다니는 차가 지금의 10%만 있어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차를 더 많이 운행하면 부품은 더 많이 필요해진다. 콘텐츠 업체도 좋은 기회가 생긴다.

―구글은 왜 자율주행차를 생각했을까.

▷소유에서 이용으로 자동차 개념이 바뀌면 우버나 카카오택시처럼 모빌리티(이동성)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뜨겠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구글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구조화하겠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라이프스타일과 선호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서 사업 기회를 찾는다. 모빌리티는 결국 공짜가 될 것이다. 이는 윈윈이 될 수 있다. 내가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고 하자. 구글이 나를 그곳에 무료로 데려다 준다. 구글은 그 비용 3000원을 부담하고 레스토랑에서 내가 쓴 돈 5만원의 10%(5000원)를 받으면 남는 장사다.

―인공지능시대에 살아남을 직업은.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기존 직업 중 47%가 사라진다고 했다. 인공지능회사들은 먼저 금융과 의료 분야를 공략할 것이다. 이 분야는 노동집약적이면서 전문가를 쓰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금융은 가능할 것 같은데 의료는 인공지능으로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목숨을 온전히 기계에 걸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시대에는 편의점 직원이 더 안전하다. 서둘러 비싼 로봇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보다 그 직업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나는 교수다. 인공지능은 내가 강연한 걸 갖고 학습해서 나보다 훨씬 더 잘할 것이다. 나는 늘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과 신뢰가 필요한 일은 마지막까지 인간 몫으로 남을 것이다.

―지적 노동까지 자동화한 후 나타날 문제는.

▷일자리와 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다. 거의 모두가 일하던 시대의 사회보장제도는 완전히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기업에 법인격을 인정했듯이 기계에 인격을 인정하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무인 회사도 생길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10명을 치어 죽이더라도 차 안의 한 사람을 살려야 하는가 하는 도덕적 딜레마도 있다.

―인공지능은 인류에 존재론적 위협인가.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과 비슷한 지적 노동을 할 수 있는 기계다. 10년 후든 20년 후든 100% 현실화한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만들어낸다. 산업혁명 때처럼 이런 문제들은 충분히 풀 수 있다. '강한 인공지능'은 자유의지와 독립성이 있는 존재다. 이들이 인류에 존재론적 위협이 된다는 데 동의한다. 지적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존재와 인류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옥스퍼드대 닉 보스트롬 교수의 시나리오는 항상 인류 멸망으로 끝난다. 강한 인공지능은 핵무기처럼 금지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singularity·싱귤래리티)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칠면조가 추수감사절 하루 전까지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것처럼.

―인공지능혁명에서 뒤떨어진 한국의 숙제는.

▷무엇보다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게 정부가 풀어줘야 한다. 우리는 알고리즘을 만들 때 늘 외국 데이터만 쓴다. 신기한 건 사생활 보호가 안 되는 한국에서 데이터 공유는 법적으로 틀어막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도요타는 실리콘밸리에 1조원을 투자해 인공지능 연구소를 세우고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로봇 전문가를 영입했다. 국내 기업들은 협업이나 인수·합병(M&A)을 하지 않고 뭐든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고집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있다.

―교육 개혁도 절실하다.

▷한국 사회는 질문을 못하는 사회다. 어린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과학자들은 남들이 다 요리해 먹고 남은 설거지만 하고 있다. 교육체계를 바꾸는 건 의외로 쉽다. 청소년들에게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거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침 일곱 시에 학교 가 공부하고 학원 가고, 또 학원 가고, 또 학원 가고, 집에 와 공부하다 잠드는 게 현실이다. 모든 게 공부를 잘한다 못한다로 압축되고 만다.

―건강한 뇌를 가지려면.

▷부모님을 잘 만나야 된다. 유전이 큰 역할을 한다. 환경도 중요하다. 뇌도 몸의 일부이므로 몸에 좋은 게 뇌에도 좋다.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는 생각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못 자면 뇌 안에 쓰레기가 쌓인다. 나는 적어도 7시간은 잔다.

■ 김대식 교수는…

장경덕 논설위원
▷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47).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뇌과학 박사. 12세 때 독일로 이민 갔다. 미국 MIT에서 박사후과정을 밟고 일본 이화학연구소에도 몸담았다. 미국 미네소타대와 보스턴대에서 가르쳤다. '1.5㎏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인간 뇌는 들여다볼 수 없으므로 뇌과학은 결국 철학이라고 믿는다. 중·고등학교 때 고전을 섭렵했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같은 빅히스토리를 좋아한다. '김대식의 빅 퀘스천'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을 썼다. 우리가 인공지능 혁명을 준비하지 못하면 다시 한 번 긴 비극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이 강소국 네덜란드보다 선진국 문턱에서 추락한 아르헨티나와 같은 길을 걸을까 걱정이다.

[장경덕 논설위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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