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봐도 새로운 '레즈비언 드라마'의 교과서

2016. 3. 1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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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더 월 2>

미국 드라마 <더 월 2>

1961년, 심야극장에서 영화 한 편이 상영되고 있다. 주연배우는 무려 셜리 매클레인과 오드리 헵번, 극중 장면은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연기력을 폭발하는 절정의 순간이다. 이 진지한 장면에서 뜻밖에도 극장 안은 웃음과 조롱의 말로 소란스러워진다. 상영 중인 영화는 레즈비언의 고전 <아이의 시간>, 관객들을 흥분케 한 장면은 셜리 매클레인이 연기하는 마사가 친구인 카렌(오드리 헵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클라이맥스 신이었다. 이 와중에 조용히 손을 맞잡는 여성 커플이 있다. 카메라는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빠져나와 나란히 걷는 그들의 모습 뒤로, 일하는 남편과 가정적인 아내의 모습을 담아낸 이상 가족의 계몽 포스터를 오래도록 비춘다.

<더 월 2>(원제 ‘If These Walls Could Talk’)의 도입부는 이것이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살아가는 레즈비언들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세 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각각 1961, 1972, 200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페미니스트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쏟아지는 편견 어린 시선은 시대와 상관없이 여전하다. <더 월 2>는 그럼에도 편견에 맞서며 꿋꿋하게 살아갔던 이들이 조금씩 변화시킨 여성의 역사를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담아낸다.

‘1961년’ 편에서는 노년의 여성커플 에디스(버네사 레드그레이브)와 애비(마리안 셀즈)를 통해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레즈비언의 비극이 전개된다. 30년 넘게 부부처럼 살아왔으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자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함께 산 집에서도 쫓겨나야 하는 모습은 사회에서 배제당한 소수자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972년’ 편에서는 여성인권운동이 불처럼 일어난 시대에 “여성 모두를 위해” 싸우고자 했던 이들이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소외되는 모습을 통해 다층적으로 분화하는 젠더 이슈를 보여준다. ‘2000년’의 마지막 편은 아이를 갖기 원하는 레즈비언 부부 이야기다. 세 편의 이야기는 결국 소수자들의 역사가 추방된 존재에서 평등한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살아가기까지의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더 월 2>는 2000년 <에이치비오>(HBO)에서 방영된 페미니스트 프로젝트 드라마다. 여성의 낙태 이슈를 다뤘던 전작 <더 월>과 마찬가지로 감독, 제작자, 배우 등 주요 스태프가 모두 여성이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여성적 이슈를 교과서처럼 담아내고 있다. 셰어, 버네사 레드그레이브, 데미 무어, 샤론 스톤, 엘런 드제너러스 등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역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지금 보면 백인 중심의 이야기라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이슈가 다시금 급부상하는 이 시기에 다시 꺼내볼 만한 선구적인 작품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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