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세계를 향해 성문을 열다..수원화성

2016. 3.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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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수원화성의 '성곽'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1796년 지어진 수원화성은 4개의 문을 5.7㎞의 성곽이 잇는다. 서쪽으로 팔달산, 동쪽으로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인 화성은 성곽길을 따라 걷기 좋다. 2016.3.12 zorba@yna.co.kr
<길따라 멋따라> 수원화성의 '화서문'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수원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인 화서문. 성문 앞 성문을 보호하는 옹성의 모습이 독특하다. 2016.3.12 zorba@yna.co.kr
<길따라 멋따라> 수원화성의 '북수문'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수원화성의 북수문. 화성의 중심에는 수원천이 흐른다. 수원천은 남북을 가로질러서 화성에는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다. 수문과 수원천은 조화를 이뤄 운치를 뽐낸다. 2016.3.12 zorba@yna.co.kr
<길따라 멋따라> 화성행궁의 '장락당'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화성행궁의 장락당.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침소. 정조는 어머니를 쉽게 보살필 수 있도록 장락당을 자신이 머물던 봉수당과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지었다. 2016.3.12 zorba@yna.co.kr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현대의 도시에서 과거의 성(城)은 애처롭다.

끊어진 성곽은 성의 정기(精氣)를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잇지 못한다. 사대문은 개별로 흩어져 외롭다.

1796년에 지어진 수원화성은 4개의 문을 5.7㎞의 성곽이 잇는다. 문과 성곽은 온전해서 성 안팎은 문으로 연결되고 성곽을 넘을 수는 없다.

화성은 여전히 행궁과 마을을 품고 있다. 인구 120만의 대도시가 화성을 기준으로 안쪽은 구도심, 바깥쪽은 신도심으로 나뉜다. 화성은 실체적·기능적으로 사장(死藏)되지 않았다.

화성은 서쪽으로 팔달산, 동쪽으로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이다. 팔달산도 산세가 험하지 않아 성곽을 따라 걷기 좋다.

성곽길 코스는 다양하다. 화성행궁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행궁 뒤편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서장대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돌아오는 길이 괜찮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화서문, 장안문, 창룡문, 팔달문을 순서대로 지난다.

성곽길 곳곳에는 장대와 공심돈, 적대, 포루, 치, 노대, 봉돈 등의 군사시설이 남아있다. 장대와 공심돈, 적대는 망루이고 포루, 치, 노대는 총포와 활을 쏘는 곳이다. 봉돈은 봉수대이다.

장대와 공심돈, 적대에 오르면 성 밖이 훤히 보인다. 장수 2명과 군졸 4명이 짝을 이뤄 장대에 올라 낮과 밤으로 허허들판을 감시했다. 지금은 빽빽한 수원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적대, 포루, 치, 노대에 서거나 성곽에 뚫린 무수한 총안을 들여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성곽을 기어오르는 적을 겨누기 위해 적대 등은 외부로 돌출돼 있고 총안은 아래로 뚫려 있다. 화성은 지금도 공성전에 대비하고 있다.

팔달문과 장안문은 각각 남북의 정문이다.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이 문을 둘러싼 독특한 형태이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쪽 창룡문의 옹성은 한쪽을 열어놓아 더욱 특이하다.

화성의 중심에는 수원천이 흐른다. 이 수원천은 남북을 가로질러서 화성에는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다. 수문과 수원천은 조화를 이뤄 운치를 뽐낸다. 특히 ㄱ자 형태의 각루인 방화수류정이 있는 북수문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남수문으로 내려오면 성곽길은 끝난다. 남수문에서 평지로 100여m를 걸으면 행궁을 다시 만난다. 행궁은 팔달산 아래 평지에 자리잡아 아늑하고 평안하다.

행궁은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향한 정조의 효심을 간직하고 있다. 정조는 180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금의 화성시에 위치한 사도세자의 묘를 13차례 참배했다. 정조는 그때마다 행궁에 머물렀다.

정문인 신풍루를 지나면 행궁 중심에 위치한 봉수당이 정면에 보인다. 행궁에서 가장 중요한 정당(正堂)인 이곳에서 정조는 1795년 을묘년 참배 때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었다. '만년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이름도 이때 정조가 지었다.

봉수당 옆 장락당은 혜경궁 홍씨의 침소이다. 정조는 어머니를 쉽게 보살필 수 있도록 장락당을 자신이 머물던 봉수당과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지었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시대 다른 건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봉수당의 오른편에는 행궁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낙남헌이 있다. 나머지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파괴됐다가 이후 복원됐다. 정조는 이곳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맞아 과거시험과 양로연 등 각종 행사를 열었다.

매년 10월 행궁 일대에서는 을묘년 참배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재연하는 문화제가 열린다. 행궁의 시공간에는 정조의 효심이 박혀있다.

신풍루로 돌아나오면 수원천 일대를 따라 펼쳐진 구도심이 눈에 들어온다. 전통시장과 통닭골목, 공방거리 등이 늘어서 있다.

팔달문 인근 전통시장은 정조가 화성을 쌓은 뒤 지역 발전을 위해 전국의 상인들을 불러모아 만든 시장으로 알려졌다. 통닭골목에는 40여년 전통의 가게들이 즐비하다. 현재 전통시장과 통닭골목에는 화성을 찾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화성은 축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성 안쪽을 보듬고 있다.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는 축성 220주년이다. 수원시는 이를 기념하고자 올 한해 '수원화성 방문의 해' 사업을 편다. 세계인이 현대의 도시에서 살아숨쉬는 과거의 성을 방문한다.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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