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사회' 막으려면..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절실하다

김희래 2016. 3. 10. 17: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계층·세대·이념갈등 원인은 압축성장으로 심화된 양극화매경 '사회갈등' 보도 관심..국민 걱정 심각하다는 방증정파적 대결로 몰고가는 정치권의 구태 반성해야

◆ 내부갈등에 무너지는 한국사회 / ⑩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에게 듣는다 ◆

"갈등의 심화가 '정신적 빈곤'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나친 절망적 심리도 막아야 하지만 누구를 탓하는 식의 '파괴적 사회'가 되지 않도록 전 부문의 개혁이 진행돼야 한다."

최근 매일경제 보도로 조명된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진단' 보고서는 여론의 지대한 관심과 공감을 얻으며 대안 마련 등 사회적 과제를 던졌다. 전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경쟁구도는 피로를 넘어 '탈진'으로, 빈부격차가 가져오는 분노는 '원한'의 감정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경고다. 그러면서 자칫 극단적 갈등 양상이 한국 사회의 기반까지 흔들 수 있다고 염려했다. 연구를 의뢰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74) 역시 "사회 현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두운 면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없다"며 갈등보고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과제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한때 정당 대표를 역임한 정계 거목으로 한국 사회의 비약적 발전을 입법·행정부에서 목도한 그는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이 지금 압축적 갈등 표출로 나타나고 있다"며 "여기에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갈등이 나타나는 부분을 타깃으로 전방위 개혁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이 대안으로 제시한 노동시장의 반(半)정규직 도입 등 경제부문의 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그는 깊이 공감하면서 "무엇보다 기업과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 더 많은 나눔과 법치 존중의 모습을 보여야 서로를 불신하는 계층 갈등이 치유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이 지나친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갈등을 풀어 나갈 수 있도록 대통합위가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용기 있게 조명하고 지혜의 목소리를 내준 매일경제 보도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대통합위 갈등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공감한다. 수많은 댓글을 보면서 사회 갈등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하고 생산적인 담론과 대화, 소통을 갈구하는 국민적 여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가려운 부분을 매일경제가 시원하게 긁어줬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국가 정책 결정의 속도와 질을 떨어뜨려 그 효과를 반감시킨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거래비용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돌아간다.

―심화하는 계층·세대·이념 갈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단연 경제다. 지금 우리 사회는 1960년대 이후 압축성장 과정에서 풀지 못한 갈등이 압축적으로 폭발해 그 세기가 더욱 강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쌓인 부조리와 불만이 제때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대통합위에서 조사를 해보면 계층 간 갈등이 가장 큰 문제다. 바로 양극화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젊은이들의 실망감이 크다. 한번 부를 쌓으면 세습적으로 내려가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진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두꺼웠던 중산층이 취약해진 상황이다.

―이를 두고 청년세대는 '금수저·흙수저' '헬조선' 등으로 절망감을 표출하는데.

▷그런 용어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양극화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절망적 심리에 매몰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삶이 각박하다고 해서 정신적 빈곤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해방 이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6·25 참변을 겪고 고도 성장을 이루며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우리의 뛰어난 DNA는 충분히 갈등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갈등 자체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함께 갈등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있다면.

▷'공유지의 비극'으로 표현되는 이기주의가 문제다.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에서 개인의 이기주의는 집단적인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소에게 더 이상 먹일 풀이 없는 공유지의 황폐화는 우리 사회의 자기 이익 추구와 닿아 있다. 내 이익만 챙기려 하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 갈등 해결을 위해 정부도 최선의 노력을 하겠지만 정부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개인이 이기주의를 버리고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 기업 등이 '협치'를 할 수 있는 구도로 가야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보고서 해법이 반(半)정규직 도입 등 제한적이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오랜 정치생활을 하면서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와 청와대에도 있었다. 건전한 갈등은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지만 문제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갈등이다. 이는 긍정적 기능을 키워서 부정적 면을 제어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부정적 면만 보면 발전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안인 노동개혁과 함께 복지·교육 등 다른 정책 문제도 이 같은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1998년 초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대타협을 이뤄냈다. 당시 노사가 한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경제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조기에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갈등을 단계적으로 푸는 것도 중요하다.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 없다. 작은 것이 모여서 통합이 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의 모럴해저드로 유발되는 사회 갈등도 만만치 않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딸을 낳고 미래 세대를 위해 천문학적인 기부 약정을 했다. 우리 사회지도층과 기업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있어야 계층 간 갈등과 경제적 격차를 함께 해소할 수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은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기업은 국민의 소비활동 등 사회적 영양분을 먹고 성장한다.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성숙한 선순환의 구조가 필요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처럼 사회지도층부터 법과 규범, 약속을 제대로 지켜야 믿음과 신뢰의 문화가 쌓일 수 있다.

―불신과 이념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도 대수술이 필요한데.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이를 정국 대립의 구도로 이끌고 정파적으로 악용하는 게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적 민주화 수준도 크게 올라갔지만 정치권만은 구태를 못 벗어나는 듯해 안타깝다. 정치권에서 파생되는 갈등과 대립에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면서 갈등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할 국회가 신뢰받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 통합까지 가로막고 있다. 나도 정치인 출신이지만 무엇이든 정파적 대결로 몰고 가려는 구습을 버리고 건전한 정책 경쟁을 추구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대통합위 역할은.

▷바닷물이 잔잔한 것 같아도 그 아래에서는 힘차게 물이 돌고 있다. 우리 사회에 어두운 면도 있지만 빛이 되는 생활 속 영웅도 정말 많다. 생활 속 소영웅을 발굴하고 우리 사회에 힘을 주는 것도 대통합위의 중요한 역할이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회 내면의 저력을 끌어내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한번 데워지면 쉽게 식지 않는 구들장처럼 대통합위는 소리 없이 갈등 해소와 국민 통합을 위해 뛸 것이다.

■ 일방적 묶기가 아니다…다양성 존중하며 하나돼야
한광옥 위원장이 말하는 진짜 '국민통합'

"국민 통합은 일방적으로 하나로 묶는 개념이 아니다. 서로 다양성을 그대로 존중하면서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게 진짜 통합이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 자문기구인 대통합위의 존재 이유이자 목표인 '국민 통합' 개념을 설명하면서 '다양성'과 '개성'을 각별히 강조했다. 결코 추상적이고 거창한 개념이 아닌,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추구하는 작은 배려와 소통 노력이 바로 국민 통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미래 통일한국을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인프라스트럭처 역시 국민 통합이 될 것이라고 거침없이 얘기했다.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인데.

▷절박하다.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바로 신뢰다. 토지·자본·노동 등 생산의 3요소로 국가 발전을 이루는 시대는 끝났다. 사회적 신뢰가 부족해 갈등으로 소모되는 비용이 연간 82조원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다. 국가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동 목표를 향해 작은 부분에서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 지난해 매일경제의 '선(線)지키는 선(先)진사회' 캠페인처럼 작은 선을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통합도 작은 부분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게 조화를 이뤄야 진정한 통합이 된다. 거대한 면을 중시할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작은 실천을 해 나가는 게 진짜 '큰 통합'이다.

―평소 국민 통합의 가치를 미래 통일한국과 연결 지어 강조해 왔는데.

▷중요한 문제다. 현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긴 하지만 통일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미래 비전이다. 인구학자들 분석을 보면 국가 경제가 자급자족하며 안정적인 상태를 이룰 수 있는 인구 규모가 '1억명'이라고 한다. 저출산·고령 국가인 일본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구축하기 위해 2050년까지 인구 1억명 경제권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나. 통일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진 국민 통합이야말로 미래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인프라스트럭처이자 경제 번영의 길이 될 것이다.

■ He is…

△1942년 전주 출생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중퇴 △제11·13·14·15대 국회의원 △초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초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제22대 대통령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장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현재)

[대담 = 박기효 사회부장 / 정리 = 김희래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