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세기의 대결' 당신이 기대한 것은 무엇인가

김나영기자 2016. 3. 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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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 마련된 특별 대국장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제1국이 열렸다./사진제공=한국기원

제2국도 인간의 패배였다. 10일 대국 초반 전문가들은 70대30으로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이세돌은 제한시간 2시간을 모두 사용한 후 초읽기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211수 끝에 백 불계패하고 말았다. 지난 9일에 이어 차이가 뚜렷해 집 수 계산을 할 필요 없는 ‘완전한 패배’였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인 중국인 판후이에 5대 0 완승을 거머쥔 적 있지만, 바둑계는 판후이의 실력이 ‘아마추어’ 정도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세돌 9단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세돌 역시 지난달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엔지니어들이 바둑을 잘 모른다며 5대0으로 이길 확률이 가장 높다고 자신감을 드러내 왔다.

인간의 창의력 그리고 직관은 대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계산적인 수에서는 앞설 수 있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처럼 기계는 하지 못하는 게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번 경기에 관심을 가진 대다수 사람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견한 사람들조차 설마 설마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가 주는 건 놀라움만은 아닌 듯하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동반한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언론사가 높은 관심을 보였고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존 이벤트와는 방식이 달랐다. 대중들은 이제까지 기사나 편집된 영상처럼 가공된 형태로 콘텐츠를 접했다. 물론 이번에도 속보나 해설 서비스 등이 함께 진행됐지만 ‘Live 중계’라는 새로운 형태가 접목됐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날 것’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바둑이 생소한 사람에게도 별문제는 없었다. ‘알파고의 실수’ ‘놀라운 변칙 수’ 처럼 언론사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졌으니. 이번 대국은 대중들이 머신러닝의 능력, 발전속도, 잠재력을 직접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영역 싸움’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변화는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기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그리고 큰 폭으로 인간의 영역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큰 이벤트는 사실상 처음이다.

기계와의 경쟁에 대한 공포는 앞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동안 숱한 컨설팅 회사, 연구기관이 2020년 이후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해도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정치인이나 관료들도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세돌 9단의 도전으로 인해 우리가 로봇으로 인해 겪게 될 희망과 좌절을 다시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자의 단안(斷案)이다. ‘아무것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는, 우리 모두 알파고 같은 기계가 가리키는 대로만 살게 될 것이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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