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역사 속 '100년의 타향살이' 전면 보수 후에 '귀향'할 수 있을까

심진용 기자 2016. 3. 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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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원주 등 “제자리인 법천사터로 반환돼야”
ㆍ다른 문화재와 형평성 고려 쉽지 않을 듯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역사 속에 지난 100년 동안 떠돌아야 했던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문화재청이 지광국사현모탑을 전면 해체, 보존처리에 들어가겠다고 9일 밝히면서 보존작업 이후 현묘탑이 지금의 경복궁에서 원래 자리인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갈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날 “지광국사현묘탑을 완전 해체, 해체된 부재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2019년까지 과학적 보존처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고려시대 ‘왕사’와 ‘국사’ 칭호를 받은 지광국사의 사리탑이다. 높이 6.1m의 화강암탑으로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빼어난 걸작이다보니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 탑은 연이어 수난을 겪었다. 원래 이 탑은 강원 원주의 법천사터에 탑의 조성내용 등을 적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1911년 일본인의 손에 해체돼 서울로 옮겨진 뒤 이듬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우여곡절 끝에 1915년 다시 국내로 되돌아왔지만 제자리인 법천사지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탑은 1990년 현재 자리인 경복궁으로 오기 까지 최소 9차례 이전됐다. 또 한국전쟁 때는 폭격으로 상부가 산산조각나 1957년 복원 공사, 1981년 전면 해체공사로 몸체 곳곳을 땜질하기도 했다.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할 때도 이 탑은 보존상태가 나쁘다는 이유로 이전 대상에서 빠졌다.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문화재청 제공

문제는 보존처리 이후 탑의 행선지다. 현재 탑은 국가 소유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관리권이 있다. 문화재청은 “보존처리를 마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탑을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원도, 원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해당 지역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원래 자리인 법천사터로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광국사탑은 본래 탑비와 한 쌍이며, 당연히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탑의 보존상태가 워낙 나빠 이전이 어렵다는 논리도 보존처리가 끝나고 나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광국사탑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타향살이’ 중인 다른 문화재들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광국사탑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여러 석탑들을 비롯한 유물들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실에 있는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쌍탑’(보물 제358호)은 원래 원주 영전사터에 있었으나, 일제가 1915년 서울로 옮겨온 것이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보물 제365호)도 원주 흥법사터에 있던 것이 1931년 경복궁으로 반출돼 지금은 중앙박물관에 있다.

‘불교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은 지난해 공식 출범하면서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매월당 김시습 사리 1점과 동아대 소장 수종사 불상을 각각 제자리인 충남 부여 무량사와 경기 남양주 수종사로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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