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희롱 등 노동현장을 여성 시각서 기록했다"

고경석 2016. 3. 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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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3명 비정규직 여성 31인 삶을 책으로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의 안미선씨는 "주류 이데올로기가 다루지 않는 여성의 노동을 직접 여성의 관점에서 쓰려 했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여성의 노동을 여성의 관점으로 생산하는 글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일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 가까운 여성의 노동을 기록하면 더 깊이 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작한 모임입니다.”

최근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라는 부제의 책 ‘기록되지 않은 노동’을 펴낸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들을 대표해 안미선(41)씨는 이렇게 모임을 소개했다. 여성의 노동을 여성노동자가 직접 기록하자는 취지로 2003년 시작한 이 모임은 차곡차곡 써온 글을 모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31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모임이 생긴 지 13년 만에 내놓은 첫 책이다. 온라인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2011년부터 3년간 연재한 글을 모은 것으로 안씨를 비롯해 13인이 나눠 썼다.

모임 회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안씨처럼 르포작가도 있고 여성학 연구자, 희곡 작가, 장애인 학교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도 있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에서 이들은 중증장애 노동자, 산모도우미, 장애인활동보조인, 행사 도우미, 요구르트 판매원, 대리운전 기사, 시각장애 안마사, 이주노동자, 학원강사, 호텔 룸메이드, 급식조리원,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운동강사 등이 노동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기록했다. 모두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직업들이지만 이 여성들은 성희롱ㆍ성차별을 포함해 온갖 부조리 속에서 일한다.

안씨는 “우리가 ‘일다’에 글을 연재할 땐 편집자마저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성희롱은 특정 직종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고 비정규직 여성에게 특히 심하다”며 “2000년대 들어 서비스ㆍ비정규직ㆍ비공식 노동이 확대됐는데 그러한 업종이 여성에게 더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고 부정기적으로 한두 달 가량 글쓰기 강좌를 열기도 한다. 안씨는 “처음 글을 쓰는 분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서 알릴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며 “회원들이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으면서 주고받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에는 여성 노동자가 직접 자신의 노동을 쓴 글도 있다. 윤춘신씨는 하청공장 지하창고에서 일했던 경험을 글로 풀었고, 문세경씨는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요양보호사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최성미씨는 여성 중증장애인이 경제적 활동을 하기에 이 사회의 장벽이 얼마나 두껍고 높은지 전했다. 안씨는 “다른 사람을 인터뷰해서 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당사자가 직접 기록했을 때 굉장히 큰 울림을 주는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모임이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차별과 희롱, 모욕이 만연화되는 노동 현장에서 많은 이가 자신의 노동과 접점을 찾기 바라서다. 환자를 돌보는 노동을 단순히 돈으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고 여기는 것이다.“인터뷰에 응해줬던 분들이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건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필자들이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썼듯 독자들도 그렇게 읽어줬으면 합니다. 체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분노 등 오갈 데 없는 공격성을 이러한 연결을 통해 건강한 에너지로 바꾸게 되길 바랍니다.”

안씨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글로 드러내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표현할 수 있는 수단과 창구가 늘어나는 만큼 가려져 있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기록해야 한다”며 “우리의 시도가 전국적으로 파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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