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깊이보기] 양평고 전 과목 3주간 융합수업..방과 후엔 맞춤 진도
경기도 비평준화 혁신학교
대학 입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일반고 학생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시골 학교의 경쟁력은 더 취약하다. 상위권 대학의 좁은 문을 뚫으려면 학업 성적뿐 아니라 체계적인 입시 전략이 필요한데, 시골 학교는 정보 싸움에서 불리하니 진학 실적이 좋아지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도 양평고는 국내대뿐 아니라 외국 대학으로도 눈을 돌렸다. 중국 대학과 유학 협정을 맺고 졸업생의 진학 대학 폭을 넓혔다. 허베이(河北)사범대로 2013년 3명의 유학생을 보낸 데 이어 2014년 7명, 지난해 4명이 진학해 공부하고 있다. 이 학교 한동열 교장은 “다양한 대학과 교류를 논의하고 있다”며 “불리한 국내 대학 입시 환경만 바라볼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방법을 학교 스스로 찾아 나설 때”라고 말했다. 일반고의 한계를 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양평고의 교육과정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매년 3월, 교과 벽 허물고 하나의 주제로 분야별 강의
주말엔 서울대생 머물며 영·수 특강…“과외 받는 기분”
중국 대학과 유학 협정, 지방 일반고 기회의 문 넓혀줘
체계적인 학력 향상 커리큘럼
양평고는 경기도 내 혁신고등학교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공교육 모델에서 탈피해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새로운 학교 모델이다. 경기도의 혁신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몇 해 전까지 다수의 언론에 소개됐다.
혁신학교가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학교 문화’와 ‘입시와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해 협력을 통한 배움’ 등을 강조하자 일부 학부모들은 “대다수 고등학생의 지상 과제가 대학 진학인데,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탈피하겠다는 교육 목표는 오히려 현실과 괴리된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양평고 한동열 교장은 “입시 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만 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일 뿐”이라며 “오히려 학생의 다양한 꿈과 진로에 맞춤 지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평고의 학력 향상을 위한 커리큘럼은 매우 탄탄하다. 혁신학교의 특성상 한 학급의 인원은 25명을 안팎이다. 소규모 인원이라 토론 수업을 하기 쉽다. 과목별로 따로 토론 수업을 이끌기도 하지만, 양평고는 과목별 융합 토론 수업도 시행하고 있다. 정문희 연구혁신부장은 “매년 3월 학기가 시작되면 3주간 ‘창의지성융합주간’을 실시한다”며 “이때는 전 과목 교사들이 하나의 공통 주제에 대해 강의한다”고 얘기했다. 일례로 ‘가족’이라는 주제가 정해지면, 과학 교사는 ‘유전자’에 대한 내용을 강의하며 가족의 생물학적 의미를 밝히고, 국어 시간에는 교과서에 수록된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을 읽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토론한다. 사회문화 교과서에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경제 시간에는 ‘산업 발전 시기별 가족의 형태’에 대해 배우는 식이다. 이렇게 3주의 수업이 끝나면 수행평가로 ‘가족’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한 편씩 제출하게 한다.
한동열 교장은 “모든 교과의 교사가 같은 기간에 동일한 주제에 대해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개별 교과의 지식이 실타래를 엮듯 융합이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역시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3학년 임현진양은 “각각 개별적인 교과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동일한 주제가 담겨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하나의 주제에 대해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2주마다 서울대생 강의, 친구와 학습동아리
방과후수업과 주말 프로그램도 학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대 재학생 멘토링’은 양평고에서 격주로 운영되는 주말 학습 프로그램이다. 서울대 학생 3~5명 팀을 이뤄 양평고 학생들의 학습 멘토가 되어 주말에 영어와 수학 수업을 해주는 거다. 정 부장교사는 “멘토 대학생들은 금요일 저녁에 양평고에 도착해 기숙사에서 잠을 잔 뒤,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수학을,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어를 강의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멘토의 수업은 학급당 최대 10명까지 들을 수 있다. 수강 신청 인원이 많아지면 학습 효과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다. 한 교장은 “멘토의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학생이 늘면 대학생 멘토단 숫자도 같이 늘려 수업을 더 개설한다”고 했다. 3학년 장우석군은 “1학년 때부터 대학생 멘토의 수업을 꾸준히 듣고 있다”며 “친한 형에게 과외를 받는 기분이라 공부도 잘되고, 서울대 형들이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면 동기부여도 된다”고 말했다. 멘토단이 기숙사에 머무는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이면 기숙사생들이 소등 시간 이후에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멘토를 찾아온다. 장군은 “보통 진로와 진학에 대한 상담을 많이 한다”며 “모의고사 점수를 밝히고 목표 대학에 가려면 점수를 얼마나, 어떻게 올릴 수 있는지 묻기도 하고, 대학생 형과 누나의 고교 시절 공부 노하우를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3학년 정수정양은 “대학생 멘토와 상담하면 학교 선생님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얘기해준다”고도 했다. “학교 선생님은 우리가 상처받을까 봐 점수가 부족해도 ‘노력해서 올려보자’고 말씀하시는 데 반해, 대학생 멘토는 ‘네 점수로는 목표 대학을 포기해야 할 수준’이라고까지 말해준다”는 것이다. 정양은 “대학생 멘토와 워낙 친하기도 해, 이런 얘기를 듣고 상처를 받기보다는 ‘정말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정신이 번쩍 뜨인다”고 얘기했다.
재학생들이 양평고의 대표적인 학습 프로그램으로 손꼽는 것은 ‘또래학습동아리’다. 마음에 맞는 학생 3~5명이 모여 같이 공부할 과목과 교재를 정해 ‘또래학습동아리’ 신청서를 제출하면 학교에서 교실을 내준다. 학생들은 각자 교재를 공부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교실에 모여 토론과 발표 형태로 협동 학습을 한다. 3학년 조요셉군은 또래학습동아리의 효과에 대해 “선생님에게는 쉽게 묻지 못하는 기본적인 내용도 친구에게는 ‘이해가 잘 안 된다’고 질문할 수 있고, 계속 배우기만 하면 미안한 마음에 나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방과후수업으로 교사의 일대일 지도받기도
특목고나 자사고 등에서 운영하는 R&E(Research and Education·과제연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2학년 학생 중 R&E 신청자 가운데 심사를 거쳐 총 10팀의 참가자를 선발해 교사가 논문 지도를 해준다. 정양은 “2학년 때 ‘양평의 카페 과잉 공급 현상’을 주제로 R&E를 했다”며 “평소 경제와 경영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R&E를 통해 시장조사와 마케팅 전략과 수익 구조 분석 등을 해보니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이 새롭고 생생하게 이해가 됐다”며 “경영학과에 가고 싶은 진로가 좀 더 분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교사가 직접 학생들의 실력을 보완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방과 후에 2시간 동안 운영되는 ‘맞춤형 눈높이 학습’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과의 개별 상담 및 일대일 설명이 이어진다. 교사 1명당 10명의 학생을 지도하는데, 학생마다 교재와 진도가 모두 다르다. 교사는 학생 한 명씩 불러 진도를 확인하고 주요 내용을 설명하거나 질문에 답을 해주는 식이다. 최상인교무부장은 “교사들이 ‘맞춤형 눈높이 학습’ 시간을 가장 힘들어한다”며 “2시간 동안 10명을 과외해 주는 셈이라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얘기다.
학생의 학습 역량을 강화하는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지만, 이는 대학 입시만을 위한 건 아니다. 한 교장은 “학생의 미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게 진로 계획을 함께 고민한다”고 말했다. 중국 대학과의 유학 협정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교장은 “현재 청소년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미래 사회에는 중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우위를 선점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며 “중국 유학을 꿈꾸는 재학생에게 기회의 문을 넓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표 비교과 활동 - 중국 유학반
중국 대학 수업 들어보고 재학생과 만남도
양평고는 2013년부터 중국 허베이사범대와 유학 협정을 맺고 매년 유학생을 보내고 있다. 중국 유학을 꿈꾸는 학생을 위해 주말 프로그램으로 중국 유학반을 운영 중이다. 유학에 필요한 언어 능력,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수업은 허베이사범대 출신 중국어 원어민 강사가 진행한다. HSK(외국인을 위한 중국어능력시험) 대비를 위한 실용 중국어부터, 중국 문화와 역사 전반에 대한 입문 과정까지 이뤄진다. 중국 현지 대학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다.
중국 유학반 학생들은 매년 5~6월 사이에 허베이사범대에 3박4일간 견학도 다녀온다. 한동열 교장은 “단순한 문화 체험이 아니라, 향후 진학할 대학에 대해 꼼꼼히 알아보고 정보를 수집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대학 탐방 기간에 교수의 수업을 직접 듣기도 하고, 전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실제 유학 생활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한 교장은 “중국에서 ‘사범대학’이라는 명칭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우수 대학이라는 의미”라며 “우리나라식으로 ‘교원 양성 대학’이라 해석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평고 학생은 허베이사범대에서 파격적인 혜택도 받는다. 한 교장은 “학생이 1년간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우리나라 돈으로 700만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700만원은 수업료는 물론, 1년간 기숙사비와 교내 식당 식비까지 포함된 액수다.
양평고 졸업 후 허베이사범대에 진학한 박지영(국제무역학과3)씨는 “입학 후 첫해에 어학 코스를 마치고 2학년이 되면 원하는 전공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다”며 “이것도 양평고 출신에게만 주는 혜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평고가 한국의 작은 시골학교지만, 졸업 후에 중국으로 진출해 꿈을 펼칠 기회를 주는 큰 학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중국 유학반 수업을 듣고 있는 3학년 맹예지양은 “국내 대학 진학과 중국 유학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며 “고3이 됐지만 진학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급하거나 긴장된 느낌이 한결 덜하다”고 말했다.
양평고 진학하려면
전기고 모집 후 내신만으로 선발…
인문계·전문계 수준 비슷
양평고는 ‘경기도 비평준화 지역 후기 일반고’이자 인문계와 전문계가 함께 있는 종합고등학교다. 자사고나 특목고가 아니라서 특별한 서류전형이나 면접시험이 없다. 중학교 내신만으로 당락을 결정한다.
인문계와 전문계 모두 중학교 내신 성적만으로 선발한다. 내신 성적 산출 기준은 같다. 교과활동상황 150점, 출결 20점, 봉사활동 20점, 학교활동 10점을 모두 더해 총 200점이 기준이다. 중학교 내신은 전 과목을 반영한다.
한 교장은 “인문계 합격선은 165점, 전문계는 160~165점 사이에 걸쳐있다”며 “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학급 등수가 10위 이내의 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또 “인문계와 전문계는 졸업 후 진로가 다를 뿐 학업 역량과 수준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면접은 지난해에 없앴다. 한 교장은 “면접으로 당락을 결정짓지 않기 때문에 지원자에게 번거로움만 더한다는 생각에 올부터 전형 절차 간소화의 차원에서 없앴다”고 말했다. 후기 일반고는 특목고와 자사고는 물론 전기 고등학교 모집이 완료된 뒤 전형을 시작한다. 보통 12월 10일 이후 원서를 받기 시작해, 20일 이후 합격자를 발표한다.
재학생들은 양평고에 지원한 이유로 기숙사 학교인 데다 비교과 활동이 다양해,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를 들었다. 3학년 박채림양은 “기숙사 생활을 통해 친구 관계가 돈독해졌고,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도 기를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올해는 인문계 5개 학급의 모집 정원은 135명, 전문계는 식품과학과·바이오식품과의 2개 학급 60명을 선발했다.
양평=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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