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 "서울大, '따라하기 과학'만 한다"

이민석 기자 입력 2016. 3. 9. 03:09 수정 2016. 3. 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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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등 12명 '자연大 평가 11개월 프로젝트' 보고서] 젊은 교수들, 모험 않고 실적 위해 '남이 해놓은 분야' 몰려 신선한 주제 없어.. 이대로면 선구자 아닌 추종자 그칠 것

"젊은 교수들이 정년 보장을 받기 위해 모험적 연구에 도전하기보다 유명 연구지 기고에 목을 매고 있다. 이대로는 '선구자'가 아닌 '추종자'에 그칠 것이다."(팀 헌트·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젊은 교수진이 적어 교수 간에 자극을 얻거나 신선한 연구 주제를 찾기 어렵다."(토니 카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노벨상과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를 포함한 자연과학 분야의 해외 석학 12명이 한국 기초과학의 산실(産室)로 꼽히는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자연대)을 향해 던진 경고다. 이들은 서울대 자연대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2월부터 지난 1월까지 11개월에 걸쳐 서울대 자연대의 연구 경쟁력을 평가해 최근 최종 보고서를 서울대 대학본부에 제출했다. 이번 평가 작업엔 팀 헌트 전(前) 영국 암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에핌 젤마노프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리타 콜웰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전 미국과학재단 총재), 뤄칭화 대만 국가실험연구원장 등이 참여했다. 12명의 해외 석학 평가단은 서울대를 직접 방문해 연구·교육 환경을 살펴보고 교수·학생 등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평가단은 최종 보고서에서 서울대 자연대의 연구 경쟁력에 대해 "세계 대학을 선도하는 일류 명문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평가했다. 평가단은 그 이유로 "경직된 연공서열식 교수 채용·승진 시스템이 연구 역량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들이 테뉴어(tenure·정년 보장)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모험적인 연구를 피하고 대신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적 쌓기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가단은 또 "교수들이 자기 논문이 많이 인용되게 하려고 이미 많은 이들이 연구하는 분야에 뛰어드는 따라 하기('me-too science')를 하고 있다"고 했다.

중견 교수들의 '연구 정체(停滯)'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년 보장을 받고 나서 그 이전까지 보여주던 수준의 연구 성과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데이비드 네스빗 미 콜로라도대 교수)는 것이다. 팀 헌트 전 수석연구위원은 "이들이 은퇴하면서 생긴 빈자리에 자기 전공 분야의 '카피(copy·복사판)' 후배 연구자를 뽑는 관행도 학문의 진화(evolution)를 막고 있다"고 했다.

평가단은 '박사 후(後) 과정(포닥·Post Doctor)' 연구자 등에 대한 열악한 지원도 서울대 자연대의 위기를 자초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최고 대학의 핵심 연구 인력은 포닥 연구자들이고, 실제 이들에겐 학교 지원금 말고도 민간 지원금만 연간 6만~7만달러(7200만~8500만원)가 지원된다. 하지만 서울대 자연대의 포닥 연구자는 학교 지원금은 없고 교육부의 BK21 등 외부에서 연간 3000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는 게 전부다. 평가단은 "이 때문에 포닥 연구자들이 대부분 서울대를 떠나 해외 대학을 찾고 있다"며 "이래서는 대학의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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