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다고? 대체 뭐가?

2016. 3. 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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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참신한 저예산·독립 영화들

염전노예 다룬 3억5천만원 저예산
미스터리 스릴러 ‘섬, 사라진 사람들’
알콜 중독자 내면 파고든 ‘설행…’

개인 이야기 털어놓은 사적 다큐
‘소꿉놀이’ ‘트윈스터즈’도 경쾌

사진 각 배급사 제공

제작비 1억4000만 달러짜리 영화 <갓 오브 이집트>가 고대 이집트의 도시 위를 날아다니는 경험을 제공하고 <런던 해즈 폴른>이 템즈강의 첼시교,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 등을 사정없이 폭파시켜 버리는 때, 한편에는 이 거대한 영화산업 자체에 균열을 내는 작고 참신한 영화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3일 개봉한 <설행-눈길을 걷다>와 <섬, 사라진 사람들>, 다큐멘터리 <소꿉놀이>(2월25일 개봉)와 <트윈스터즈>(3일 개봉) 등 조근조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영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의 창조력을 떠받치는 힘은 종의 다양성에서 나온다.

■ 스크린 속 마음의 오지들 인천 비봉도 등에서 촬영한 <섬, 사라진 사람들>과 전남 나주에서 찍은 <설행-눈길을 걷다>는 외롭고 고립된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각각 염전노예와 알콜 중독자라는 소재는 또 얼마나 주변적인가. 호기심으로 눈길을 끌고 보편적인 것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의 두 영화는 장르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길을 택했다.

2014년 2월 섬을 탈출한 한 장애인의 이야기가 알려졌다. 14년 동안 한 염전에 붙들려 하루 19시간 동안 노역해온 그의 이야기는 사회의 공분을 샀다. <섬, 사라진 사람들>은 염전 노예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전혀 다른 결말을 담고 있다.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소재는 두 가지 아이디어 덕분에 새로운 옷을 입었다. 하나는 영화 전반부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촬영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의외의 결말이다. 영화에서 염전 노예 사건을 취재하는 <공정뉴스> 이혜리 기자(박효주)는 다른 염전 노예들을 찾기 위해 카메라 맨과 함께 한 외딴 섬으로 들어간다. 관객들은 실제 기자를 따라다니며 찍은 듯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바깥에 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느라 긴장하게 된다. 카메라 자체가 위협받을 때 스릴이 높아지는 페이크 다큐의 효과다. 게다가 영화에선 일찌감치 염전 인부들과 카메라맨이 죽고 기자는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들의 정의로운 취재가 참극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제작비 3억5천만원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에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중첩시킨 영화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공정사회>를 연출하고 <소셜포비아> <수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작을 맡기도 했던 이지승 감독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이 사고에서 재빨리 시선을 돌려 유병언-유대균-미녀 경호원 등 선정적 주제로 관심이 옮아가는 것을 보며 영화를 기획했다. 어떤 사건의 본질을 기억하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행-눈길을 걷다>는 개인 내면 속으로 깊이 파고 든 영화다. 그러나 그 속도 들여다볼 수록 컴컴한 미궁이기는 마찬가지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원 ‘테레사의 집’에 머물게 된 정우(김태훈)와 그곳에서 만난 수녀 마리아(박소담) 모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고질적인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환상에 시달리는 섬망 증상을 겪는다. 인간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듯도 하고 이 모든 것이 정우의 섬망인 듯도 한 이야기는 하얀 눈밭에 피가 뿌려지는 독특한 이미지와 공명한다. <열세살, 수아> <청포도 사탕> 을 만든 김희정 감독의 3번째 연출작이다.

■ 밝고 경쾌한 사적 다큐 극화가 깊어지는데 비해 자신의 속에 감춰뒀던 이야기를 꺼내는 두편의 다큐멘터리는 한없이 밝고 가볍다. 연애하다가 아이가 생겨 덜컥 결혼하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김수빈 감독의 <소꿉놀이>는 출산과 육아, 결혼생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소꿉놀이처럼, 또는 인형놀이 하듯 그려냈다. 상황은 전혀 가볍지 않다. 뮤지컬을 만들고 싶던 한 대학생은 졸지에 시집살이에 육아, 생계 책임까지 떠맡는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남편과 시댁, 친정어머니의 입장은 또 얼마나 다른가.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감독은 가벼운 음악과 애니메이션 기법을 섞어가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중계방송한다. 지난달 기자시사회에서 김수빈 감독은 “독립다큐가 주는 무거운 느낌을 최대한 덜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며 “핵심에 꽂아둔 이야기를 무리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신테스터를 보는 날부터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살았다. 아이 엄마말고도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레코딩 버튼을 눌러왔다”는 감독의 말은 사적 다큐를 만드는 새로운 태도를 보여준다. 촬영이 일상이 된 세대들의 그것이다.

헤어져 입양됐다가 에스엔에스(SNS)로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된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트윈스터즈>에서도 카메라는 늘 돌아간다. 그들이 각기 복잡하고 애틋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카메라 앞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쌍둥이 자매를 만나는 그들은 눈물바다를 만드는 대신 눈물을 닦고 다시 웃으며 우린 행복하다고 속삭인다. 담론과 상황에 눌리지 않는 밝은 사적 다큐는 이렇게 태어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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