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딥 러닝' 기술로 비약적 발전.. 국내는 네이버 음성 검색과 클라우드 서비스, 카카오 '루빅스' 등
최근 몇년 사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견뎌야 했던 증권맨들은 그동안 호시탐탐 일자리를 위협하던 불황 대신 인공지능(AI)이 복병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회사에서 속속 도입한 로보어드바이저(인공지능자산관리서비스) 바람이 올해 들어 더욱 거세진 탓이다. 인력 대신 AI를 활용한 투자자문 경쟁은 바다 건너 미국 자산관리시장에서는 업체만 200개를 넘을 정도로 치열하다. 스스로 데이터 조합을 익혀 학습하는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수익률을 키운 덕분에 뉴욕 증권거래소 주식의 70%가 알고리즘에 의해 이뤄질 정도라고 한다. 이렇듯 인간에 도전한 AI는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그 위세를 떨치고 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가 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알파고의 프로 바둑기사 상대 승리를 발표한 네이처 논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알파고까지 인간의 AI 도전 역사
AI라는 용어가 공식 등장한 것은 1956년 ‘다트머스 회의’로 알려진 모임에서였다. 미 다트머스대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존 매커시는 이 자리에서 ‘AI 하계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인공지능학의 개념을 지능적 기계를 만드는 과학과 기술로 정의했다. 기계가 지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AI라는 얘기다. 동석한 인지과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컴퓨터가 체스 세계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AI 역사는 컴퓨터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후 컴퓨터는 연산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1994년에는 체커 게임에서 인간과 어깨를 견줬다. 1997년에는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눌러 파란을 일으켰다. IBM의 다른 슈퍼컴퓨터 ‘왓슨’은 2011년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해 인간 퀴즈왕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다트머스 회의에서 정의된 AI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학자도 풀기 어려운 난해한 수식을 몇초 만에 풀 수 있었지만, 구구단도 모르는 어린이도 분간할 수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허점을 보였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인터넷 기반 데이터의 폭발적 증가로 이를 통한 머신러닝이 가능해진 덕분에 돌파구가 뚫렸다. 인간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인식하듯 기계에도 이런 능력을 심고자 인간 뇌의 신경세포 회로를 모사한 신경망 연구가 본격화됐고, 2006년에는 컴퓨터가 인간처럼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딥 러닝’(강화 또는 심화학습) 기술의 개발로 AI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둔다. 2014∼15년 기계가 사람보다 더 정확히 물체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2015년 2월 구글 딥마인드는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디오게임을 하는 AI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딥마인드는 ‘알파고’(AlphaGo)를 개발해 역대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도 맞바둑을 통해 넘지 못했던 프로기사의 벽을 뛰어넘어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이세돌 9단(가운데)이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맞대결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 참석해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왼쪽),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권욱기자
◆국내 AI 연구는 ‘걸음마’ 수준
구글은 물론이고 페이스북과 IBM,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이 AI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시장 선점에 나섰지만 국내 업체는 기술력 미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가 뉴스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 반응을 조사해 맞춤형 콘텐츠를 자동 추천해 주는 ‘루빅스’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고, 네이버는 음성 검색과 클라우드 서비스에 딥 러닝 기술을 적용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등 게임 업체도 도입했으나 아직 큰 반향은 없다. SK텔레콤은 AI비서 서비스 ‘에고 메이트’를 개발 중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AI 기술은 최고 수준인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75 수준이고 격차는 2년으로 평가됐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중심에서 플랫폼 중심으로 산업구조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AI를 통해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시간 내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경쟁우위에 설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