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감독 감싸기, 대한체육회 또 시대역행

정재용 2016. 3. 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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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가 또 한 번 우리 사회의 일반적 상식과 거리가 먼 결정을 내렸다. 성추행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까지 받은 지도자에 대한 징계를 대폭 감경시켰다.

성추행으로 영구제명을 받았던 쇼트트랙 감독은 이제 3년 자격 정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다. 피해 선수를 보호하기는커녕 2차 피해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더구나 이 결정을 내린 주체가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라는 점에서 많은 체육계 관계자들은 절망하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2013년 훈련 중에 발생했다. 가해자인 쇼트트랙 감독 A씨는 훈련 중 자세를 교정해 준다며 피해 선수들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졌고 11살 여자 선수의 속옷을 무릎까지 내리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가해자는 피해자들과 합의했고 최종적으로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벌금 2천만 원이었다.

유죄가 확정되자 빙상 연맹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영구제명을 결정했다. A씨는 재심을 신청했고 대한체육회가 3년 자격정지로 징계를 감경해 준 것이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관계자의 답변은 더욱 황당하다. "(유죄 판결) 그건 법적인 판단이고 우리 판단은 다릅니다. 우리는 억울한 선수나 지도자들을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쇼트트랙 관계자들조차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다. "법적으로 형을 안 받은 사람도 영구제명을 받은 경우가 있거든요. 선수위원회에서 왜 3년으로 줄였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의아해 하는 것 같아요"



비록 성추행으로 유죄 판결은 받았지만, 가해자에게 억울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징계를 감경해 줬다는 것이 대한체육회의 설명이다. 당연히 지나친 온정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한체육회의 상황인식은 여전히 일반 시민 사회와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의 재심 결과를 분석해 보면 지난 6년간 징계를 낮춰준 비율이 무려 80%를 넘는다. 일부에서는 대한체육회에 재심만 신청하면 자동으로 징계가 낮아진다며 '자동문 재심(?)'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다.



일부 결정문은 피해자인 선수의 입장보다 가해자인 지도자의 입장이 더 반영된 듯한 느낌이다.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징계를 감경"한다든지 "가해자의 잘못도 있으나 관련 협회의 행정착오도 있어 징계를 감경"한다는 판단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는 빙상연맹에서 내린 영구제명 조치를 3년 자격정지로 완화시켰다. 이 결정을 하위단체인 빙상연맹에서 거부할 권한은 없다.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는 지난 2008년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 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스포츠계 성폭력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 결과 스포츠계의 폭력이나 성폭력 문제는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연관 기사]☞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

그러나 이번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의 시대 역행은 한국 체육계의 불편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체육계 내부의 인식은 여전히 승리를 위해서 또는 금메달을 위해서 어느 정도 권위주의적이거나 폭력적인 상황은 어쩔 수 없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스포츠계의 폭력이나 성폭력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제도와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구조적인 문제다. 따라서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재용기자 (spoy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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