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상업회의소·싱가포르 중재센터 상하이로 .. 한국은 뒷짐

김세웅 2016. 3. 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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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국제중재 콘퍼런스 50개국 변호사 참석중국 중재사건 年11만건 달해..한국은 중재진흥법 국회 계류

◆ 레이더L / 中 중재시장 급부상 ◆

세계변호사협회(IBA·International Bar Association)가 지난 3,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연례 국제중재 콘퍼런스를 열었다. 국제중재 전문가들과 중국 정부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도 서울국제중재센터(SIDRC·이사장 신희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관계자들과 법무부, 대형 로펌 국제중재 전문가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 콘퍼런스에 앞서 열린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상하이사무소 개소식도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 행사들을 통해 중국 정부와 상하이는 "국제중재의 중심을 차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에 19회째를 맞은 법조·법률 전문 섹션 레이더L은 국제중재 미래에 전례 없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하이의 생생한 분위기와 국제중재 전문가들 목소리를 담았다. 레이더L은 평소 국제중재에 대한 높은 관심 덕분에 한국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이 행사에 초청받았다.

지난 2일 오후 6시, 중국 상하이 리츠칼턴상하이푸둥호텔 3층 베이지룸은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세계 각국 중재(仲裁) 변호사 200여 명과 싱가포르, 중국 정부 당국자들이 SIAC의 상하이사무소 개소식에 모인 것. 소피아 펑 SIAC 중국수석대표는 "예상했던 참석자보다 더 많은 인원이 행사에 와 놀랐다"고 밝혔다. 이틀 뒤인 4일 오후 2시, 중국 상하이 진링로드 상하이국제중재센터(SHIAC) 1층 사건접수 창구. 한국인 사업가라고 밝힌 중년 남성 두 명이 서류가방을 들고 자신들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중국인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더니 사건을 신청하고 떠났다. 한국인 사업가들이 계약 분쟁을 국제중재로 풀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 이 센터의 장유에 부사무국장은 "한국 기업이 당사자인 사건을 연평균 20건 정도 접수한다"며 "한국 기업들이나 개인투자자들로 주로 무역이나 투자 관련 다툼이 많다"고 설명했다.

◆ 상하이, 국제중재 중심 노린다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가 아시아의 국제중재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하이는 중국의 팽창하는 경제 규모와 그에 비례해 늘어나는 상사분쟁 덕분에 해외 중재전문기관을 속속 유치하고 있다. SIAC가 해외 기관으로는 가장 먼저 이곳에 진출했다. 프랑스 파리의 국제상업회의소(ICC)와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도 곧 상하이에 사무소를 연다. 대한상사중재원(KCAB)도 지난 2일 상하이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사무소 개소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상하이가 해외 중재전문기관들에 관심을 받게 된 건 지난해 4월부터다. 상하이 지방정부는 세계 각국 중재기관들에 '해외 분쟁해결기관들이 상하이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돌렸다. 응답은 빨랐다. SIDRC 사무총장 자격으로 상하이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윤병철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54·사법연수원 16기)는 "중국 대법원이 홍콩 이외의 중국 도시에서도 국제 중재를 허용해 주면서 상하이가 해외 중재전문기관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SIAC 중재사건 관리책임자인 유지연 변호사(45·36기)도 "중재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자는 생각에서 중국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발달한 상하이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이달 말 싱가포르 일을 정리하고 귀국해 법무법인 태평양(대표 김성진)에 합류한다.

◆ 국제중재, 유럽에서 아시아로

IBA는 지난 3일부터 이틀간 상하이에서 '국제중재의 미래'를 주제로 연차 콘퍼런스를 열었다. 중국에서 열린 첫 IBA 행사다. 50여 개 국에서 500여 명의 중재전문 변호사가 참석했다. 한국에서도 30명의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들과 법무부, SIDRC 관계자들이 이 행사에 참석해 최신 경향을 공유하고 정보를 교류했다. 참석자들은 '국제중재에서 아시아 지역주의의 발달'과 '중국의 중재 경향'이란 주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박은영 김앤장 변호사(51·20기)는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경제 전면에 등장하면서 국제중재도 유럽에서 아시아로 중심축이 넘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권에서 합의만 있으면 아시아의 중재 관행을 국제표준으로 만들어 전파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간 10만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는 중국만 국제기준을 더 충실하게 따라와 준다면 아시아가 주도권을 쥐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루쑹 중국외교학원 교수는 "'중재·조정 혼합 모델'이 상당히 보편적"이라며 중국 내 경향을 소개했다. 루 교수는 "중국인들은 조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유교사상 영향으로 원만한 합의가 업무적으로는 물론 사적 관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식한다"며 "소송을 한다는 건 우호관계를 끝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한국 중재시장은 정체

중국이 상하이를 앞세워 이처럼 국제중재의 패권을 노리고 있지만 한국은 다소 정체된 인상을 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찌감치 국제중재를 산업적으로 활성화할 계획을 세우고 올해부터 관련 예산 18억9600만원을 배정했다.

법무부도 지난해 11월 '중재산업진흥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안건 통과 시기를 예상하기 어려운 처지다. 중재가 직간접적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각종 정보 교류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제안 설명도 곁들였다. 정부 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지금까지 한 차례 심사를 마쳤는데,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어 국회는 총선 이후 추가 심사 일정을 잡겠다는 입장이다.

신희택 SIDRC 이사장(64·7기)은 "중국은 이제 국제중재에 눈을 떴다고 볼 수 있고, 일본은 아직 중재에 관심을 덜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3~5년의 시기를 잘 활용해 우리가 아시아 국제중재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하이 =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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