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안 할거야, 로스쿨 고고" 먹튀 경찰대생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의 경력법관 37명을 임용했다. 이 중 장모(36)씨의 이력은 단연 눈에 띄었다. 경찰대를 수석 졸업한 그는 2003년부터 서울경찰청에서 근무했다. 교육파견으로 서울대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서울대 로스쿨도 수석으로 마쳤다. ‘엘리트 경찰’로 승승장구할 것 같던 장씨는 경찰복을 벗고 법복을 입었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하지만 학비부터 품위유지비까지 세금 들여 양성한 우수 인재의 이탈은 경찰 조직에 뼈아픈 손실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경찰대 출신 경찰관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른바 ‘경찰대 엑소더스’ 현상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로스쿨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 인력유출 우려가 더욱 커졌다. 미흡한 의무복무 규정과 경찰 지도부의 인식은 떠나는 인재를 붙잡기에 역부족이다.
그들은 왜 떠나나
국민일보가 1981년 경찰대 개교 이후 졸업생을 전수 조사한 결과 사시 합격자는 모두 137명이었다. 1990년대에는 한 해 2명 안팎이 사시에 붙었지만 2009년에는 19명으로 늘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이런 흐름에 가속도가 붙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2012년 6명이던 경찰대 출신 로스쿨 합격자는 2013년 15명, 2014년 27명, 지난해 31명 등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경찰대에 해마다 120명(지난해부터 100명)이 입학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경찰대 출신이 사시나 로스쿨에 몰리는 이유는 뭘까. 경찰대 전공과목에는 헌법과 행정법, 형사소송법 등이 포함돼 있다. 학교 공부와 사시·로스쿨 준비를 병행하기에 좋은 환경인 셈이다. 56회 사시에 합격한 A경위는 2014년 경찰대 후배와의 만남에서 “2학년 때부터 사시를 준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대 내부에는 수사나 업무에 도움이 된다며 사시와 로스쿨 준비를 독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 경찰대 졸업생은 “사시 준비와 함께 졸업 후 로스쿨 진학을 권유하는 교수가 많다”며 “재학생의 30~40%는 이를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제는 사시·로스쿨 관문을 통과한 뒤 대부분 경찰을 떠난다는 데 있다. 사시 합격자 137명 중 경찰 현업에 남아 있는 사람은 20명에 불과하다. 경찰직을 유지하면서 사법연수원 교육을 받고 있는 7명을 제외하더라도 110명이 경찰복을 벗었다.
이들이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찰직에 대한 실망’이라고 한다. 일선에 배치된 뒤 경찰 생활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승진에서 경찰대 출신이 역차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금으로 교육했는데…
경찰대생 교육은 세금으로 이뤄진다. 재학생 학비는 전액 면제이고 의복·교재·일용품 등도 국비로 지급한다. 한 달에 수십만원씩 ‘품위유지비’도 준다. 경찰대를 졸업하면 6년 동안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세금으로 공부한 뒤 직업을 바꾸는 ‘먹튀’를 막기 위해서다. 의무복무 기간을 못 채우면 국비지원액(올해 기준 4944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면 이 돈을 토해내는 게 어렵지 않다. 대형 로펌에 취업해 1~2년 정도 근무하면 갚을 수 있다. 이렇다보니 2011년 24명, 2012년 12명, 2013년 13명, 2014년 22명 등 매년 입학정원 대비 10~20%가 6년을 채우지 않고 경찰을 그만뒀다.
여기에 편법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은 규정을 어기고 로스쿨에 등록한 경찰관 32명을 적발했다. 공무원이 일정 기준에 따른 연구·교육기관에서 연수를 받을 경우 연수휴직을 낼 수 있지만 로스쿨은 대상기관에서 빠져 있다. 이들은 육아 등 다른 이유로 휴직한 뒤 로스쿨에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해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찰관들이) 규정이 없어서 편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휴직하고 로스쿨에 다닐 수 있도록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공부하려고 로스쿨 다니는 것은 정부가 권장해야 할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경찰 안팎에선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대 출신인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우수 인재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찰 내부구조의 문제가 크다”며 “의무복무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경찰대 신입생 선발에 경찰 적합성 평가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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